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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뒤에도 끝나지 않은 긴장…"우리는 24시간 북을 지켜봤다"<1950 산 자들의 기억⑤>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954년 6월 한국 도착, 3사단 15보병연대 배치
암호로 동료 확인하고 2~3명씩 순찰…"24시간 서로 지켜봤다"
93세에도 72년 전 군복 간직…"내가 그곳에 있었던 건 확실"

리오 사바스 한국전 참전 용사가 며칠 전 미국 뉴저지 자택에서 기자를 만나 한국전 당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병철특파원
리오 사바스 한국전 참전 용사가 며칠 전 미국 뉴저지 자택에서 기자를 만나 한국전 당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병철특파원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적은 바로 선 너머에 있었습니다(The enemy was just over the line)."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1954년. 당시 20대 초반의 미군 병사 리오 사바스(Leo Savas)는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북한군과 마주하고 있었다. 정전협정은 체결됐지만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총을 든 채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며칠 전 미국 뉴저지 자택에서 만난 93세 사바스의 기억은 72년이라는 세월만큼 군데군데 흐릿해져 있었다. 정확한 지명이나 날짜를 물으면 한동안 생각하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육체는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였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미군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은 세월에 희미해지지 않은 듯했다.

인터뷰 도중 한국 복무 당시 군복 이야기가 나오자 사바스는 직접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 창고까지 내려간 그는 70여년 전 입었던 군복을 찾아 들고 다시 올라왔다. 보관만 해온 옷이 아니었다. 그는 기자 앞에서 직접 군복을 입어 보였다. 20대 청년이 입었던 군복을 93세 노병이 다시 걸쳤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많아졌지만 한국에서 보낸 시간만큼은 여전히 자신의 삶 한가운데 남아 있는 듯했다.

순찰에 나설 때는 함께 근무하는 병사들끼리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암호(password)'를 사용했다. 사바스의 가족이 보관해온 복무 기록에는 당시 상황이 짧은 문장으로 남아 있다.

'He remembers the patrol using only passwords for identification with his buddies. The enemy was just over the line.'(그는 동료들과 순찰하면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암호를 사용했던 것을 기억한다. 적은 바로 선 너머에 있었다.)

사바스는 72년 전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전투가 막 끝났을 때였습니다. 그들도 멈췄고 우리도 멈췄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조심했습니다. 그들이 넘어오려고 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 당시 감정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우리가 두려웠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1955년 DMZ 퐁경.
1955년 DMZ 퐁경.

1954년 6월 한국 도착…정전 뒤에도 계속된 긴장

가족이 보관한 기록에 따르면 사바스는 1954년 6월 한국에 도착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약 11개월 뒤였다.

기록에는 그가 미 육군 제3보병사단(3rd Infantry Division)의 'Can Do Regiment'에 배치됐다고 적혀 있다. 미 육군과 3사단 관련 기록을 확인한 결과 'Can Do'는 제15보병연대(15th Infantry Regiment)를 가리킨다. 이 연대는 한국전쟁 당시 3사단 예하에서 전투를 벌였고 정전 직전에는 철원 일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아웃포스트 해리(Outpost Harry) 전투에도 투입됐다.

정전협정이 체결됐다고 한반도가 곧바로 평시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씩, 폭 4㎞의 DMZ가 설치됐지만 그 주변에서는 군사적 경계가 계속됐다.

미군 공식 부대사에서도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미8군이 공개한 유엔군사령부 경비대대-공동경비구역(UNCSB-JSA) 부대사에는 1954년 말 판문점 일대에서 유엔군 측 공동경비구역 경계와 함께 작전지역 내 '대침투 순찰'이 임무로 자리 잡았다고 기록돼 있다.

사바스가 속했던 3사단의 기록도 남아 있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소장하고 한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수집한 자료 가운데는 1954년 5월 3일부터 24일까지 작성된 제3보병사단 정보참모부(G-2) 작전일지가 있다. 15보병연대는 그해 말까지 한국에 남아 있었고 관련 부대사에는 연대가 1954년 12월 미국으로 복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사바스가 기억하는 한국 근무 기간은 약 7개월이다.

"한국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웠습니다. 어디로 보내질지 몰랐고 우리는 계속 두려웠습니다."

리오 사바스 한국전 참전 용사.
리오 사바스 한국전 참전 용사.

"24시간 지켜봤다…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사바스가 맡은 것은 DMZ 일대의 순찰과 경계였다. 밤낮이 따로 없었다.

"하루 24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밤이었고 어떤 때는 낮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며칠을 근무했느냐고 묻자 "일주일 내내 그곳에 있어야 했다"고 답했다. 휴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없었다"고 했다. 교대시간은 기억을 더듬었다.

"DMZ 선상에서는 아마 6시간 근무하고 6시간 쉬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움직이는 일도 없었다.

"우리는 절대 혼자 있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두 명이나 세 명이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가족 기록에 남은 '암호'도 이런 긴장 속에서 사용됐다. 순찰 중 마주치는 상대가 아군인지 확인하기 위해 동료들끼리 암호로 신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보고, 우리도 그들을 봤다"

선 너머에는 북한군이 있었다. 사바스는 그들과 말을 나눈 적은 없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들과 엮이지 않도록 아주 조심했습니다."
북한군과 직접 총격을 주고받았느냐고 묻자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다.

"항상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24시간이었습니다. 아주 조심해야 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은 따로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지켜봤고, 우리도 그들을 지켜봤습니다(They watch us, and we watch them)."

북한군은 외모만으로 남한군과 구분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남한 사람들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군복만 달랐어요. 하지만 그들도 똑같은 한국 사람들이었습니다."

군복이 없다면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낮은 덥고 밤은 추웠다"

가족이 간직한 기록에는 DMZ에서의 또 다른 기억도 남아 있다.

'The days were hot and the nights were cold.'(낮은 덥고 밤은 추웠다.)

사바스 자신에게 특히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겨울의 추위였다.

"겨울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주 추웠어요. 추위를 막아줄 옷도 많이 없었습니다."

두꺼운 방한복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없었다"고 답했다.

"우리에게는 군복이 있었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리오 사바스 한국전 참전 용사.
리오 사바스 한국전 참전 용사.

"한국 사람들은 우리에게 정말 친절했다"

살얼음판 같은 경계근무 속에서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한국 사람들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주, 아주 친절했습니다.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미군을 보면 인사를 건넸고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한국 군인들이 미군을 반겼다는 기억이 선명했다.

"그들은 우리를 좋아했습니다. 미군을 좋아했어요. 특히 한국 군인들이 우리에게 정말 잘해줬습니다."

한국군은 별도의 부대에 있었지만 DMZ 일대에서는 함께 임무를 수행했다고 사바스는 기억했다.

인터뷰 도중 정확히 어디에 주둔했는지를 여러 차례 물었다. 사바스는 한참 생각하다 결국 고개를 저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도움이 되고 싶은데 더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지만 이제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기억은 분명 세월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어떤 질문에는 "아마도(maybe)"라고 했고, 어떤 질문에는 "기억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한국에서 직접 총을 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어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젊은 세대가 한국전쟁에 대해 무엇을 기억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전쟁은 사바스가 한국 땅을 밟기 11개월 전 총성을 멈췄다. 하지만 1954년 한반도의 최전선에서 평화는 아직 일상이 아니었다. 사바스와 동료들은 암호로 서로의 신원을 확인했고 두세 명씩 함께 움직이며 선 너머를 밤낮으로 지켜봤다.

72년이 지나 지명과 날짜, 동료들의 이름은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하지만 지하 창고에는 그때 입었던 군복이 남아 있었고, 93세 노병은 그 군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그리고 자신이 확실히 기억하는 두 가지를 말했다.

"우리가 두려웠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하지만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email protected]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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