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에 배 띄우고 동파육 한점… 땅으로 내려온 '강남의 천당' [Weekend 레저]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7) 항주
"하늘에 천당이 있고 땅에는 항주가 있다"
백거이는 항주에 대한 그리움 시로 남겨
소동파가 쌓아올린 소제춘효는 서호십경
은일시인 임포의 매화로 뒤덮인 섬, 고산
남송 최고의 충신 악비묘도 그곳에 있어
강남이 그립구나
가장 그리운 곳은 항주
산사에 달이 뜨면 계수나무 열매를 찾고
군정 정자에 누워 전당강 조수를 보았지
어느 때나 다시 가서 노닐 수 있을까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억강남(憶江南)'이다. 항주(杭州)에서 자사로 2년을 지낸 백거이는 훗날 낙양에 살면서도 강남을 잊지 못했다. 그가 가장 그리워한 곳이 항주였다.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이다.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물산, 수많은 호수와 강이 만들어낸 풍광 덕분에 강남은 오랫동안 중국인들이 꿈꾸는 이상향이었다. 그 강남에서도 항주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은 단연 서호(西湖)다.
■소동파가 사랑한 서호(西湖)
서호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물 건너 뇌봉탑이 솟아있고, 호수 위로는 소동파가 쌓은 소제(蘇堤)와 백거이의 이름이 붙은 백제(白堤)가 길게 이어진다. 자연과 역사와 문학이 한데 어우러진 호수다. 항주에 도착한 다음 날 작은 배를 빌려 서호로 나갔다. 공교롭게도 하늘이 잔뜩 흐렸다. 산들은 물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호수 물빛도 온통 회색이다. 하지만 이 흐린 서호를 보고 있자니 오히려 소동파의 시 한 수가 절로 떠오른다.
물빛 반짝반짝 날이 개니 참 좋더니
산색이 몽롱하니 비가 와도 그만이구나
서호를 서시(西施)에 비교해볼까
옅은 화장도 짙은 화장도 늘 잘 어울리는 격이겠지
소동파의 '음호상초청후우(飮湖上初晴後雨)'다. 그는 서호를 중국 최고의 미인 서시에 비겼다. 화장을 옅게 하든 짙게 하든 아름다운 미인처럼 서호 역시 맑은 날이나 비 오는 날이나 아름답다는 것이다. '담장농말'이라는 네 글자보다 서호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소동파는 말로만 서호를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다. 항주의 태수로 부임한 그는 토사로 몸살을 앓던 서호를 대대적으로 준설했다. 파낸 흙으로 호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제방을 쌓고 다리를 놓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오늘날 '소제춘효(蘇堤春曉)'라 하여 서호십경의 으뜸으로 꼽는 소제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시인은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목민관은 그 아름다움을 가꾸었다. 천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소제를 걸으며 소동파를 기억하는 까닭이다.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배에서 내려 찾아간 곳은 서호에서 가장 큰 섬 고산(孤山)이다. 산이라지만 높이 40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언덕이다. 이곳에는 북송의 은일시인 임포(林逋)의 자취가 남아 있다. 임포는 벼슬에도 부귀에도 뜻을 두지 않고 고산에 은거했다.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매화를 심고 학을 길렀기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는 뜻의 '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렀다.
고산의 방학정(放鶴亭) 주변에는 지금도 매화나무가 많다. 이곳에 서면 임포의 유명한 '산원소매(山園小梅)' 구절이 떠오른다.
성긴 그림자 맑고 얕은 물가에 어리고
은은한 향기 달 뜨는 황혼에 떠오른다
이 구절은 역대 매화시 가운데 최고의 명구로 꼽힌다. 매화의 모습을 직접 말하지 않고 '성긴 그림자(疏影)'와 '은은한 향기(暗香)'만으로 그 자태와 향기를 그려냈다.
임포는 애초 자신의 시를 후세에 남길 생각조차 없었다. 사람들이 왜 시를 남기지 않느냐고 묻자 "당세에도 시명을 구하지 않았거늘 하물며 후세야 말해 무엇하겠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시를 몰래 기록한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고산의 매화 앞에서 천년 전 은자의 시를 읊을 수 있다.
■누각 밖에 또 누각, 누외루(樓外樓)
고산을 내려오니 시장기가 돈다. 이곳에는 150년 넘는 역사를 지닌 항주의 유명 음식점 누외루(樓外樓)가 있다. 이름은 남송 시인 임승(林升)의 시 '제임안저(題臨安邸)'에서 가져왔다.
산 밖으로 다시 청산, 누각 밖에 또 누각
서호의 춤과 노래는 어느 때나 끝이 나려나
따뜻한 바람에 유람객들 취했으니
그야말로 항주를 개봉으로 여기는구나
금나라에 북쪽 땅을 빼앗기고 항주로 내려온 남송 조정이 국토 회복은 잊은 채 서호의 풍류에 빠져 있음을 풍자한 시다. 권력자들의 향락을 꾸짖은 시구가 훗날 서호를 대표하는 음식점의 이름이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동파육(東坡肉)이다. 소동파가 황주 유배 시절 값싼 돼지고기를 맛있게 요리해 먹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항주 태수 시절 서호를 준설하자 백성들이 감사의 뜻으로 돼지고기를 가져왔고, 소동파가 그것을 요리해 다시 백성들에게 나눠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뒤 항주의 음식점에서 '동파육'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서호를 아름답게 만든 제방에도 그의 이름이 남고, 식탁의 돼지고기 한 접시에도 그의 이름이 남았다.
■청산에 묻힌 충골, 악비를 찾아서
소동파가 살았던 북송은 1127년 금나라에 멸망했다. 황실은 남쪽으로 내려와 항주에 도읍을 정하고 남송을 세웠다. 이제 서호에서 남송의 역사를 만나려면 악비(岳飛)를 찾아가야 한다.
악비는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연전연승하며 잃어버린 국토를 되찾으려 했던 남송 최고의 명장이다. 그의 작품 '만강홍(滿江紅)'은 비장한 기개로 가득하다.
분노의 머리털이 모자를 찌르는데
난간에 기대어 섰더니 소슬한 비 개었구나
삼십 년의 공명이야 진토와 같은 것
팔천리 전쟁의 길 구름과 달이 얼마였던가
수레를 길게 몰아 하란산을 밟아 부수리라
장한 기백으로 오랑캐의 고기를 씹고
담소를 나누며 흉노의 피를 마시리니
옛 산하를 남김없이 수복한 후에
대궐에 올라 천자를 뵈오리라
금나라 군대가 "산을 흔들기는 쉬워도 악가군(岳家軍)을 흔들기는 어렵다"고 했다는 말이 전할 만큼 악비의 군대는 강했다. 그러나 그는 적군과의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조정의 정치에서는 패배했다. 금나라와의 화친을 추진하던 재상 진회(秦檜) 일파에 의해 모반죄를 뒤집어쓰고 결국 죽음을 맞았다. 훗날 악비의 명예는 회복되었고 서호 서북쪽에 그의 무덤과 사당이 세워졌다. 악비묘에 들어서면 '심소천일(心昭天日)', 곧 "마음은 하늘의 해처럼 밝다"는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무덤 앞에는 악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진회와 그 아내 왕씨 등이 철제 동상으로 만들어져 무릎을 꿇고 있다.
이 철상 뒤편에 유명한 대련(對聯)이 있다. "청산은 무슨 행운으로 충신의 뼈를 묻었으며, 백철은 무슨 죄로 간신으로 빚어졌는가"라는 구절이다. 충신을 품은 청산은 행운이지만 죄 없는 쇠붙이는 간신의 모습을 하고 천년 동안 사람들의 욕을 들어야 하니 억울하다는 뜻이다. 충신과 간신에 대한 중국인들의 역사적 기억이 이보다 선명하게 표현된 곳도 드물 듯하다.
김성곤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정순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