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잠자는 고객 계정에 1억씩"…13억 예치금 만들어 골드바 산 직원 [사기꾼들]

이동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고객 민원 담당하며 전산 허점 파악
'미연결 가상계좌' 예치금으로 둔갑
고객 등 23명 계정에 13억여원 생성
전화번호 바꿔 골드바 구매·계정 탈퇴
동료 계정까지 몰래 접속…징역 6년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고객 계정에 예치금을 넣으면 돈을 빼돌릴 수 있다."
고객 민원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에게 회사 전산시스템의 허점은 돈을 만들어내는 통로가 됐다. 회계 전산시스템과 자동 연결되지 않은 가상계좌 입금 내역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예치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

A씨는 지난 2013년 7월 피해 회사에 입사해 고객 민원 처리와 환불, 예치금 전환, 고객정보 처리 등을 담당했다. 올해 1월에는 해당 팀 선임실장으로 승진했다. 장기간 관련 업무를 맡으며 회사 전산시스템과 가상계좌 입금·예치금 관리 구조, 고객에게 예치금을 부여하는 권한 체계를 파악하고 있었다.

범행의 계기는 가상화폐 투자 실패였다. A씨는 투자 실패로 3억원이 넘는 채무를 지고 개인회생 상태에 놓이자 자신이 알고 있던 회사 전산시스템의 허점을 범행에 이용했다.

'미연결 데이터'로 13억 만들어
A씨가 노린 것은 회사 명의 가상계좌에 들어온 돈 가운데 회계 전산시스템과 자동 연결되지 않은 입금 내역이었다. 고객의 물품 구매대금이나 입점 협력사의 수수료·광고비 등이 입금됐지만 오입금 등의 이유로 정상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이른바 '미연결 가상계좌' 데이터다.

A씨는 데이터상의 금액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예치금으로 전환한 뒤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고객 계정에 넣었다.

지난 3월에는 서울 강동구 회사 사무실에서 상담시스템에 접속해 미연결 데이터 1억1231만3000원을 예치금으로 전환한 뒤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고객 D씨 계정에 임의로 넣었다.

이 같은 방식으로 A씨는 지난 2024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자신이 관리하는 고객 등 23명의 계정에 총 13억2693만3013원 상당의 예치금을 생성·부여했다. 법원은 A씨가 허위 정보나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권한 없이 정보를 변경해 같은 금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고 판단했다.

예치금을 실제 재산으로 바꾸는 과정에서는 고객 개인정보까지 손댔다.

A씨는 지난 3월 D씨의 휴대전화번호를 자신의 번호로 변경한 뒤 D씨 계정에 1억1231만원 상당의 예치금을 넣었다. 이후 D씨 명의로 회사 쇼핑몰에 접속해 시가 1억1230만6708원 상당의 187.5g 골드바 2개와 37.5g 골드바 1개를 구입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고객 18명의 휴대전화번호와 예치금 현황 등 개인정보를 변경했고 범행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고객 계정 12개를 탈퇴 처리하기도 했다.

특히 A씨는 지난 2월 몰래 알아낸 동료 직원 E씨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회사 상담시스템에 접속했다. 이후 E씨 계정을 이용해 고객 휴대전화번호 등을 변경하고 골드바를 구매한 뒤 고객 계정을 탈퇴시키는 방식으로 범행했다. 동료 계정을 이용한 무단 접속은 올해 4월까지 이어졌다.

法 "치밀하고 계획적 범행"
범행이 발각된 뒤의 행동도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A씨는 배우자 명의로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해 회사 연락을 피하고 무단결근했다.

수사기관으로부터 범행으로 취득한 자산을 처분해서는 안 된다는 고지를 받고도 압수수색 바로 다음 날 약 1억2000만원을 인출해 피해 변제에 사용하지 않고 소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회사는 A씨에 대한 엄벌을 탄원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고객 민원 업무를 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 회사가 부여한 권한을 범행에 악용했다고 지적했다. 장기간 회사 전산상 허점을 이용해 범행을 이어가고 편취금 대부분을 환전이 쉬운 골드바 구매에 사용한 점도 불리한 정상으로 판단했다.

특히 범행과 무관한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변경하고 일부 계정을 탈퇴시킨 데 이어 동료 직원 계정까지 무단으로 사용하면서 동료에게 범행 혐의가 돌아갈 위험까지 초래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교묘하고 죄질도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했다.

피해액 대부분이 회복되지 않은 점도 중형의 근거가 됐다. 편취금 상당 부분이 이미 소비되거나 처분됐고 A씨의 자력과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하면 피해 전부가 회복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봤다.

다만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약 3억1200만원 상당의 피해가 회복된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다. 나머지 재산에 대해서도 민사상 보전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판결은 지난 11일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번 범행을 업무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 전산상 허점을 이용한 "치밀하고 계획적인 범행"으로 규정하며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들을 참작하더라도 그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이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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