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좋은 정치'의 기준
이해람 정치부
가까운 교사, 청소년 지도사 등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화의 주제는 결국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로 향하게 된다.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는 청소년부터 자해를 시도하는 청소년도 부쩍 늘었다는 것이 이들의 경험담이다. 지난해 10대 청소년만 396명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정도면 우리 청소년들이 '집단적 우울증'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한 에밀 뒤르켐의 말을 빌리자면 청소년들은 어쩌면 '학살'을 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더 나은 삶'을 이야기해야 할 정치권은 침묵했다. 청소년 관계자들은 이번 성평등가족부 장관 검증 국면을 보며 좌절했다. 성평등부는 청소년 정책 주무부처다. 용혜인 장관 후보자의 '가족정당' '언더조직' 논란이 심각한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사검증 과정에서 청소년을 위한 구제방안 등 정책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관계자들에게서 깊은 한숨을 내뱉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2027년도 예산안에서 성평등부 '청소년 정책 및 역량강화' 예산은 약 1077억원에서 907억원으로 줄었다. 위기 징후는 속출하고 있는데, 이를 포착하고 치유할 우리의 역량은 부족하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는 300번의 경미한 징후, 29번의 사소한 사고가 발생한다고 한다. 2023년 칼부림 사건의 원인으로도 고립이 지목된 바 있다. 고립되고 우울에 빠진 이들의 왜곡된 분노가 참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청소년들의 아우성이 훗날 거대한 참사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나만 느끼는 기우일까. 만일 참사가 발생한다면, 이후 '○○방지법'만 수십 개 발의되고 상임위에는 상정되지도 않을 것이다. 당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사법입원제'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지만 지금 어떻게 됐는지 보면 안다.
좋은 정치의 기준은 여럿 있겠지만 '효능감을 느끼게 해주는 정치'가 좋은 정치라 생각한다. 우리 삶이 나아진다는 것을 체감하게 해주는 정치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더 나은 삶'을 이야기했다.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내 삶이 더 나아졌다고 체감하게 되면 정부에 대한 평가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대통령도 분명히 알 것이다. 공소취소 논란에 휘둘려서는 결코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국민들을 치유하는 정치를 해야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