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각인형에 웃은 외국인들…400년 가부키, 세계시장 다시 두드린다
'국보' 흥행에 가부키 관심 확산 신규관객 월 2000명→4000명 수준 U30 반값·영어 해설로 문턱 낮춰 20대 배우 앞세워 17년 만에 런던행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무대 위 상자가 열리자 화려한 노란색 기모노를 입은 목각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각 장인 히다리 진고로가 상자 밖으로 나온 인형의 허리띠에 거울을 꽂았다. 잠시 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인형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뻣뻣하던 팔다리를 풀더니 사람처럼 허리를 꺾고 손끝을 놀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객석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옆자리 외국인 관객들은 영어 대본과 장면 설명이 나오는 휴대용 전자기기와 무대를 번갈아 봤다. 인형이 진고로의 동작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할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고 춤이 끝나자 힘껏 박수를 쳤다.
지난 17일 오후 7시2분 도쿄 긴자 가부키자 무대에 오른 가부키 작품 '교닌교'의 한 장면이다. 조각가 진고로가 자신이 만든 인형과 벌이는 소동을 춤과 연기로 풀어낸 약 30분짜리 희극이다.
400년 넘게 이어진 일본 전통극 가부키에 새 관객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가 일본 실사영화 역대 흥행 1위에 오르며 관심이 커진 가운데 가부키 제작·흥행사 쇼치쿠는 젊은층과 외국인의 관람 문턱을 낮추고 있다. 공연 자체는 바꾸지 않으면서 가격과 언어의 장벽을 낮춰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이고 해외시장도 다시 두드리고 있다.
■'국보' 흥행 뒤 신규 관객 두 배
가부키는 노래와 춤, 연기를 결합하고 모든 배역을 남성 배우가 맡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극이다. 4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지만 옛 표현이 많은 대사와 긴 공연시간은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장벽이다.
새 관객을 불러들인 계기 중 하나가 영화 '국보'다. 지난해 6월 개봉한 '국보'는 제78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뒤 장기 흥행해 흥행 수입 200억엔(약 1728억원)을 넘으며 일본 실사영화 역대 1위에 올랐다.
지난해 7~12월 가부키자를 처음 찾은 관객은 약 2만5000명으로 이전까지 월 약 2000명이던 신규 관객은 월평균 4000명 수준으로 거의 두 배가 됐다. 다른 극장까지 합치면 같은 기간 신규 관객은 3만명을 넘어섰다.
다만 이를 모두 '국보 효과'로 볼 수는 없다. 지난해 쇼치쿠 창업 130주년을 맞아 오노에 기쿠고로 8대 습명공연과 가부키 3대 명작 공연 등 대형 흥행도 이어졌다. 센다 마나부 가부키자 지배인은 지난 3월 도요게이자이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대형 흥행으로 가부키에 관심이 모이고 있던 가운데 '국보'의 영향으로 화제가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늘어난 관심을 실제 관람으로 이어가기 위해 쇼치쿠는 가격과 언어의 장벽을 낮추고 있다. 긴 공연 중 한 작품만 골라 볼 수 있는 '히토마쿠미세키(一幕見席·한 막 관람석)'를 운영하고 지난해 10월에는 25세 이하에게 당일 잔여석을 반값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올해 6월부터는 대상을 30세 이하로 확대했다.
외국인 관객을 위한 영어 해설도 제공한다. 이날 객석에서 사용된 휴대용 전자기기에는 공연 진행에 맞춰 영어 대본과 장면 설명이 표시됐다. 가격과 언어의 문턱은 낮추되 공연 자체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내년 런던 무대에는 일본 가부키의 차세대를 이끌 20대 배우들이 선다. 이날 가부키자 4층 연습실 '다케'에서 만난 이치카와 소메고로 8대와 오노에 다쓰노스케 3대다. 각각 2005년, 2006년생인 두 사람은 내년 1월 런던에서 나란히 첫 해외무대에 오른다.
소메고로는 해외 공연에서도 가부키 자체를 바꿀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해외라고 해서 특별히 바꿀 생각은 현재로서는 없다"며 "평소 우리가 하는 가부키를 그대로 보여줬을 때 어떤 반응을 받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재미없으면 돌아오지 않는다" 17년 만의 런던
해외 관객을 직접 만나는 데 대한 기대도 크다. 다쓰노스케는 "일본 관객은 공연이 재미없다고 생각해도 계속 자리에 남아 있지만 해외 관객은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휴식시간 뒤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응이 좋을 때는 엄청난 박수로 답해준다"며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고 재미없는 것은 재미없다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배우로서는 고맙다"고 했다.
쇼치쿠는 해외 공연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파리·로마·쾰른에서 가부키를 소개하는 유럽 순회공연을 열었다.
다음 무대는 영국이다. 내년 1월 30~31일 런던 사들러스웰스극장에서 소메고로와 다쓰노스케가 '후지무스메' '유키노샤쿄' '메오토도조지' 세 작품을 선보인다. 쇼치쿠의 런던 가부키 공연은 2010년 이후 약 17년 만이다. 두 배우 모두 첫 해외무대다.
[email protected] 서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