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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88억 R&D 설계도 공개… 남는 전기 '열'로 저장·AI가 화장품 처방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과기정통부, 16개 연구단 공모
전기차 배터리 전력망 자원 활용
KAIST-제주대 공동대학원 2개 트랙
6개월 100% 국비… 10월 연구단 선정

제주시 한림읍 한림해상풍력 발전시설 전경. 제주에 배정된 88억원 규모 4극3특 지역 자율 R&D에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전력을 열로 저장하고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술 등이 포함됐다. 사진=연합뉴스
제주시 한림읍 한림해상풍력 발전시설 전경. 제주에 배정된 88억원 규모 4극3특 지역 자율 R&D에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전력을 열로 저장하고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술 등이 포함됐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에 배정된 88억원 규모 지역 자율 연구개발(R&D)의 세부 설계도가 공개됐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로 버려지는 전기를 열로 바꿔 저장하고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 안정에 활용하는 기술부터 인공지능(AI)이 제주 천연물 화장품의 배합비를 추천하는 기술까지 16개 연구과제가 공모에 들어갔다.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IRIS)에 공개된 '2026년 4극3특 제주특별자치도 과학기술혁신지원사업' 공고와 과제제안요청서(RFP)에 따르면 제주 R&D는 분산에너지와 농·축·수산 기반 바이오를 양대 축으로 설계됐다.

4극3특 과학기술혁신지원사업은 수도권 중심 연구개발 구조를 지역 주도로 바꾸기 위해 올해 처음 추진하는 권역 단위 자율 R&D다. 정부는 7개 권역에 모두 789억원을 투자하며 제주에는 분산에너지 51억8300만원, 농·축·수산 기반 바이오 36억1700만원 등 88억원을 배정했다.

이번에 공개된 제주 16개 과제의 개별 지원한도를 합치면 86억2400만원이다. 산학연 허브 구축 61억7500만원, 미래신산업 맞춤 인력양성 14억3000만원, 딥테크 지역확산 6억1400만원, 은퇴 과학기술인 활용 K-UBRC 4억500만원이다.

올해 사업은 본사업에 앞선 6개월 시범사업이다. 선정 연구단에는 연구비를 100% 국비로 지원한다. 신청은 10월 11일까지이며 같은 달 사전검토와 선정평가를 거쳐 10월 말 협약을 체결하고 내년 3월 말까지 과제를 수행한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제주가 먼저 겪고 있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문제를 실제 기술 수요로 바꾼 분산에너지 R&D다.

7억8000만원 규모 P2H 하이브리드 열저장 과제는 전력망이 받아들이지 못해 발전을 줄여야 하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열로 바꿔 저장하는 기술을 검증한다. P2H는 전력(Power)을 열(Heat)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전기를 배터리에만 저장하는 대신 냉난방이나 급탕 등에 쓸 열에너지로 보관해 전력 수요가 적은 시간대의 잉여전력을 활용한다.

제주에서는 2023년 재생에너지 출력제어가 연간 181차례 발생한 것으로 RFP에 제시됐다. 연구진은 잠열·열화학 방식의 고밀도 열저장과 히트펌프, AI 예측제어를 결합해 6개월 동안 기술성과 경제성을 검증한다.

목표도 수치로 제시됐다. 열저장 밀도는 ㎥당 60㎾h 이상, 히트펌프 성능계수는 4.0 이상, 열·전력 수요예측 정확도는 90% 이상이다.

제주 해양수산연구원 수산종자연구센터에 마련된 전기차 급속 충전시설. 제주 4극3특 R&D에서는 전기차 배터리의 전력을 전력망으로 되돌려 보내는 DC V2X 기술을 6개월 동안 검증한다. 사진=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제공
제주 해양수산연구원 수산종자연구센터에 마련된 전기차 급속 충전시설. 제주 4극3특 R&D에서는 전기차 배터리의 전력을 전력망으로 되돌려 보내는 DC V2X 기술을 6개월 동안 검증한다. 사진=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제공

전력망 자체를 더 똑똑하게 운영하는 연구에는 8억원이 투입된다.

차세대 전력망 과제는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등 각기 다른 분산자원을 표준 모듈로 연결하고 AI가 전력 흐름을 통합 관리하는 기술을 설계한다. 선로나 변전설비를 계속 증설하지 않고 기존 배전망을 보다 유연하게 쓰는 '가상선로' 기술도 포함됐다.

사업 전체 지향점으로는 기존 대비 출력제어 30% 저감, 계통수용량 18㎿ 확대, 지역 단위 에너지자립률 40%가 제시됐다. 올해는 이 목표를 향한 설계와 선행검증 단계다.

전기차도 이동수단에서 전력망 자원으로 역할을 넓힌다. 7억7000만원 규모 DC V2X 과제는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충전기를 통해 외부 전력망으로 다시 보내는 직류 기반 충·방전 기술을 검증한다. 목표 방전출력은 10㎾ 이상, 제어 응답시간은 200㎳ 이하다.

제주처럼 전기차 보급률과 재생에너지 비중이 모두 높은 지역에서는 차량이 주차돼 있는 시간에 배터리를 전력망의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실증 과제가 된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제주 천연물을 제품으로 바꾸는 과정에 AI를 투입한다. 1억3700만원 규모 '제주 천연물 특화 화장품 레시피 설계 AI' 과제는 지역 화장품 기업이 보유한 시험성적서와 연구노트, 배합 이력 등을 AI가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특히 성공한 배합뿐 아니라 제품화 과정에서 실패하거나 반려된 기록도 학습자료로 활용한다. 병풀과 동백 등 제주 천연물 1~2종을 대상으로 성분과 물성, 효능 자료를 결합해 목표 특성에 맞는 배합비를 추천하는 데모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현재 화장품 처방은 시제품 제작과 품평, 재배합을 통상 3~5차례 반복하고 처방 확정에 15~50영업일이 걸린다는 게 RFP의 진단이다. 연구진은 AI를 활용해 반복 횟수를 1~2차례 수준까지 줄일 가능성을 검증한다.

제주 해조류를 바이오소재와 에너지 자원으로 함께 활용하는 연구에는 최대 8억3800만원이 투입된다. 해조류에서 기능성 소재를 얻고 생산 과정의 부산물과 이온성분까지 에너지와 자원으로 회수하는 순환형 공정을 개발하는 내용이다.

지난 7월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뷰티 박람회 제주화장품 홍보관에서 해외 바이어들이 제주 천연 원료를 활용한 화장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R&D에는 지역기업의 시험성적서와 연구노트, 실패·반려 배합기록까지 AI가 학습해 화장품 배합비를 제안하는 기술개발도 포함됐다. 사진=제주테크노파크 제공
지난 7월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뷰티 박람회 제주화장품 홍보관에서 해외 바이어들이 제주 천연 원료를 활용한 화장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R&D에는 지역기업의 시험성적서와 연구노트, 실패·반려 배합기록까지 AI가 학습해 화장품 배합비를 제안하는 기술개발도 포함됐다. 사진=제주테크노파크 제공

제주 주요 농산물을 활용해 수입대체 바이오소재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을 바이오수소와 바이오메탄으로 전환하는 과제에도 7억6700만원이 배정됐다.

용암해수는 고령친화 산업과 연결한다. 1억1700만원 규모 과제에서는 용암해수 미네랄과 제주 자생자원을 활용해 피부와 인지, 근육, 골관절 건강에 적용할 기능성 후보소재를 발굴하고 시제품을 만든다.

수입에 의존하는 기능성 바이오원료를 발효기술로 국산화해 제품 등록과 시장출시까지 연결하는 연구에는 1억원을 지원한다.

인재양성도 연구개발과 한 묶음으로 설계됐다. KAIST와 제주대학교가 함께 운영하는 협업형 공동대학원은 분산에너지와 해양바이오 두 분야에 각각 7억1500만원씩 모두 14억3000만원이 배정됐다.

분산에너지 공동대학원은 재생에너지 발전부터 ESS·수소 저장, 전력변환, 전력망 운영과 에너지정책까지 아우르는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한다. 해양바이오 분야는 제주에 서식하는 3000여종의 해양 생물자원을 토대로 신소재와 생물공정 분야 전문인력을 키우는 구조다.

제주대학교 상징인 사슴상(왼쪽)과 KAIST 본원 정문. 제주특별자치도의 88억원 규모 ‘4극3특 지역 자율 연구개발(R&D)’ 사업에 제주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협업형 공동대학원 구상이 포함됐다. 사진=제주대학교·KAIST 제공
제주대학교 상징인 사슴상(왼쪽)과 KAIST 본원 정문. 제주특별자치도의 88억원 규모 ‘4극3특 지역 자율 연구개발(R&D)’ 사업에 제주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협업형 공동대학원 구상이 포함됐다. 사진=제주대학교·KAIST 제공

두 과정 모두 KAIST와 제주대가 별도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공동수강 교과목을 30% 이상 구성한다. 올해 시범사업에서는 분야별 공동 학위논문 연구주제를 각각 5건 이상 발굴하고 모듈형 온라인 강의도 3건 이상 개발한다.

은퇴 고급 과학기술인을 제주로 끌어들이는 실험도 포함됐다. 4억500만원 규모 K-UBRC는 제주대학과 은퇴 과학기술인을 연결해 지역기업의 기술지도와 공동연구, 창업·사업화 멘토링에 투입하는 사업이다. 제주의 워케이션과 정주환경을 활용해 제주를 '실버 실리콘밸리'로 조성한다는 구상도 담겼다.

다만 올해 88억원 투자가 곧바로 2030년까지의 장기사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2026년은 전액 국비 시범사업이며 2027년 이후에는 지방비와 기관부담금이 들어가는 본사업 구조로 바뀐다. 시범사업 점검 결과와 정부 예산 확보 상황에 따라 본사업 전환 여부와 연구기간, 연구비, 목표가 조정될 수 있고 지원 중단이나 조기 종료도 가능하다.

앞으로 6개월이 제주형 지역 자율 R&D의 성패를 가를 첫 시험대다. 출력제어와 전기차, 해조류·용암해수, 천연물처럼 제주가 가진 문제와 자원을 실제 기술과 제품으로 얼마나 구체화하느냐가 2027년 이후 본사업 전환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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