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약 끊으면 모발이 더 빠지는 이유 [김진오의 탈모탈출]
[파이낸셜뉴스] 탈모약을 몇 년간 복용하다가 중단했을 때 머리카락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빠지면 누구나 큰 혼란에 빠진다. 최근 국내외 탈모 커뮤니티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두고 그럴듯한 이론이 퍼지고 있다. 약으로 남성호르몬(DHT)을 억제하면 두피 모낭이 호르몬 결핍에 대응해 안드로겐 수용체(AR)를 비정상적으로 늘리고, 약을 끊으면 호르몬에 과민 반응해 머리가 녹아내리듯 빠진다는 이른바 '수용체 상향 조절'설이다. 해당 가설로 약이 모낭의 체질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불안이 커뮤니티에 팽배하다. 하지만 이는 의학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배경에는 전립선암 치료 기전이 있다. 인체 세포는 특정 호르몬 자극이 줄어들면 신호를 더 받기 위해 수용체를 늘리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전립선암 환자에게 남성호르몬을 고갈시키는 치료를 진행하면 암세포가 생존을 위해 안드로겐 수용체 유전자를 스스로 증폭시키거나 변이를 일으킨다. 일부 탈모인들이 이 중증 종양학의 메커니즘을 두피 모낭에 무리하게 대입한 것이다. 5알파 환원효소 억제제로 DHT를 낮추었으니 모유두 세포도 암세포처럼 수용체를 늘려 저항할 것이라는 논리적 비약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두피 모낭은 생존을 위해 유전자를 변이시키는 악성 종양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 가설은 대규모 장기 임상 데이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수용체 상향 조절로 모낭이 호르몬에 과민해졌다면, 약을 중단한 환자의 모발 수는 애초에 약을 먹지 않은 사람보다 곤두박질치는 초과 손실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피나스테리드 5년 임상시험에서 1년간 약을 복용하다가 위약으로 전환한 환자군을 추적한 결과를 보면, 약 중단 후 모발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는 하나 이는 정확히 2년간 약을 전혀 먹지 않은 위약 대조군의 모발 수 곡선과 일치하는 지점에서 멈춘다. 약 때문에 모낭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 약을 먹지 않았을 때 도달했어야 할 본래의 유전적 진행선으로 복귀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당사자는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빠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불안의 실체는 수용체의 폭주가 아니라 '모발 주기의 동기화'와 '시간 압축'이다. 탈모약을 먹는 동안에는 가늘어지고 빠졌어야 할 모발들이 약효 덕분에 인위적으로 두피에 붙어 있었다. 약을 끊어 DHT가 본래 수치로 돌아오면, 이 모발들이 개별 주기를 잃고 일제히 휴지기로 전환된다. 3년이나 5년에 걸쳐 서서히 빠졌어야 할 모발들이 몇 달 사이에 압축되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10년 이상 추적한 연구에서도 탈모약 복용으로 인한 수용체 내성이나 비가역적인 과민증은 확인되지 않았다. 장기 복용 중 약효가 둔화되었다고 느끼는 것 역시 수용체 변화가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진행되는 모낭 자체의 자연 노화와 유전적 압력이 약의 지탱력을 점차 앞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 중단 후 머리카락이 쏟아진다고 해서 검증되지 않은 호르몬 차단법이나 민간요법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모낭의 수용체가 망가진 것이 아니라 지연되었던 모발 주기가 일시적으로 겹쳐 빠지는 현상인 만큼, 불필요한 걱정으로 약 복용을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진오 뉴헤어모발성형외과 대표원장
[email protected] 김현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