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제발 비싸게 좀 주세요"…서민들 애환 서린 전당포, 몇만원 두고 여전한 흥정 [낮은 곳의 기록자]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종로 뒷골목, 사라진줄 알았던 전당포가 있다]
업주 "예전보다 줄었지만 한 달에 서너 명은 찾아"
"가족 수술비 필요하다" 사정 털어놓는 손님들
20대들은 "전당포요? 중고앱에 물건 파는데요"

23일 오후 서울 종로3가 일대에 있는 전당포 출입구 모습. 왼쪽 전당포는 영업 중이고, 오른쪽은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전당포. 영업을 마쳐 입구가 철문으로 잠겨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23일 오후 서울 종로3가 일대에 있는 전당포 출입구 모습. 왼쪽 전당포는 영업 중이고, 오른쪽은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전당포. 영업을 마쳐 입구가 철문으로 잠겨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온라인 중고거래와 비대면 대출이 늘면서 전당포를 찾는 사람은 예전보다 줄었다. 하지만 당장 생활비나 공과금, 병원비 등이 필요한 이들은 여전히 손에 쥔 물건을 들고 전당포를 찾는다. 종로3가 일대 전당포를 돌며 달라진 이용 모습과 급전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의 사정을 들어봤다.

[파이낸셜뉴스] "어머니 수술비가 급해서요."

전당포 업주들이 지금도 손님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라고 한다. 온라인 중고거래와 비대면 대출이 일상화하면서 전당포 이용객은 크게 줄었지만, 생활비나 병원비처럼 당장 현금이 필요한 사람들은 금반지와 시계, 악기 등 손에 쥔 물건을 들고 전당포를 찾는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3가 일대. 귀금속점과 음식점, 휴대전화 판매점이 이어진 골목 사이로 '전당포' 간판이 띄엄띄엄 걸려 있었다. 대로변에 매장을 둔 곳보다 오래된 건물 2~3층에 자리한 곳이 많았다. 건물 입구에 붙은 작은 간판을 따라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영업장을 찾을 수 있었다.

한 건물에는 노란색 바탕에 '전당포 3층'이라고 적힌 간판이 붙어 있었다. 유리문을 열자 좁은 계단이 이어졌고 벽에는 다른 상점 안내판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전당포는 이른 저녁에 이미 문을 닫았다. 계단 입구에는 흰색 철문이 있었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전당포는 손님이 물건을 맡기면 해당 물건의 가치를 따져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약속한 기간 안에 원금과 이자를 갚으면 맡긴 물건을 다시 찾아갈 수 있다. 신용이나 소득보다 담보로 맡긴 물건의 가치가 대출 금액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전당포 낯선 20대…중고거래·은행 앱 먼저

젊은층에게 전당포는 익숙한 급전 마련 수단이 아니었다. 종로3가 일대에서 만난 20대 시민들은 전당포를 직접 이용해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직장인 A씨(27)는 "급하게 돈이 필요하면 중고거래 앱에 물건부터 올려볼 것 같다"며 "그래도 부족하면 은행 앱으로 소액대출이 가능한지 알아보지 전당포부터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B씨(24)도 "전당포가 지금도 있다는 건 알지만 실제로 들어가 본 적은 없다"며 "금이나 비싼 시계만 맡기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물건도 취급한다는 건 몰랐다"고 했다.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면 직접 가격을 정해 구매자를 찾을 수 있고, 중고 매입 업체에 바로 물건을 판매할 수도 있다. 소액이 필요하면 금융회사 앱을 통해 대출 가능 여부와 한도를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전당포를 찾지 않고도 물건을 현금으로 바꾸거나 돈을 빌릴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난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업주들도 손님 감소를 체감하고 있었다. 전당포를 10년째 영업 중인 한 업주는 "(물건이) 한 달에 한두 건 들어오면 그나마 있는 편"이라며 "요즘은 손님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악기 받는 곳, 금붙이 받는 곳…전당포마다 품목 달라

이 업소는 금반지나 명품 시계보다 악기를 주로 취급했다. 주변에 악기 상가가 있어 관련 물건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업주는 "우리는 악기 전문"이라며 "시계 같은 건 전문이 아니라 잘 모른다"고 말했다. 다른 물건을 맡기려면 종로3가역 주변 다른 전당포를 찾아보라고 했다.

업주의 설명과 같이 전당포마다 취급하는 품목은 달랐다. 업주가 시세를 잘 모르는 물건은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처럼 모델과 출시 시점에 따라 중고 가격을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이 있는가 하면 시계와 귀금속, 카메라, 악기처럼 상태와 거래 수요를 더 따져야 하는 품목도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전당포 업주는 전자제품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했다.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만큼 담보물로 취급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는 "전자제품은 가격이 자꾸 떨어져서 안 된다"며 "금붙이나 좀 된다"고 말했다. 순금이나 14K·18K 등 금 제품을 주로 취급한다고 했다. 카메라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업주는 "카메라 같은 것도 안 한다"며 "금붙이가 좀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방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손님이 물건을 가져오면 업주가 상태와 시세 등을 확인한 뒤 빌려줄 금액을 정한다. 고객은 약속한 기간 안에 원금과 이자를 갚고 물건을 되찾는다. 중고거래처럼 물건을 아예 파는 것이 아니라 다시 찾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당포도 대부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현행 법정 최고금리는 연 20%다. 한 업주는 "100만원을 한 달 빌리면 이자가 1만6600원 정도"라고 말했다. 연이율로 환산하면 약 19.9% 수준이다. 이 업주는 담보물 평가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물건만 보고 돈을 빌려주는 만큼 장물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며 "담보로 받을 수 있는 물건인지 신중하게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몇만원 차이에 오가는 흥정

23일 오후 서울 종로3가 일대 한 전당포 입구. 사진=한승곤 기자
23일 오후 서울 종로3가 일대 한 전당포 입구. 사진=한승곤 기자

전당포를 찾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맡긴 물건으로 얼마를 빌릴 수 있느냐다. 새 제품을 살 때 수십만~수백만원을 줬더라도 전당포에서는 현재 시세와 제품 상태, 처분 가능 가격 등을 따져 대출 금액을 정한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몇만원 차이는 작지 않다. 생활비나 공과금처럼 당장 써야 할 돈이 정해져 있으면 업주가 부른 금액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흥정하기도 한다. 물건을 아예 처분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마련한 뒤 다시 찾아갈 생각으로 맡기는 만큼 평가액에 민감하다.

업주들은 손님들에게서 "조금만 더 쳐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필요한 금액에 비해 평가액이 낮으면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지 묻거나 다른 전당포를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전당포 이용객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은행 대출이 어렵거나 중고거래 구매자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당장 생활비나 공과금 등에 쓸 현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는다. 물건을 팔아버리기는 아깝지만 며칠이나 몇 주 동안 돈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다만 돈이 급하다고 누구나 전당포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담보로 맡길 물건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업주는 "사람들이 물건이 있어야 오지 신용으로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급하니까 가지고 있던 것도 다 팔아버린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경기가 어렵다고 전당포 손님이 곧바로 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돈이 필요해도 맡길 물건이 없으면 전당포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급하면 금반지 맡겼죠"…5060의 기억

한편 젊은층과 달리 50~60대 시민들은 전당포를 과거 급전이 필요할 때 찾던 곳으로 기억했다. 60대 남성 C씨는 "예전에는 급하면 금반지나 시계를 맡기러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며칠 쓰고 돈이 생기면 다시 찾아오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50대 남성 D씨도 "은행에서 바로 돈을 빌리기 어렵거나 작은 돈이 급할 때 전당포에 물건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었다"며 "아예 파는 게 아니라 나중에 다시 찾아올 수 있으니까 급한 사람들은 이용했다"고 했다.

또 다른 60대 남성 E씨는 "예전에는 시장이나 역 주변에서도 전당포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며 "요즘은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어디 있는지 잘 모를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업주들도 비슷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전당포를 15년 넘게 운영했다는 한 업주는 "많이 폐업하고 없어졌다"며 "주변에서 문을 닫은 전당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전당포 영업을 두고 사양업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래도 업주는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한 달에 서너 명은 찾아온다"며 "돈이 급한 사람들은 지금도 물건을 가지고 온다"고 말했다.

손님들은 물건을 맡기면서 사정을 털어놓기도 한다. 업주는 "물건을 맡기면서 각종 사연도 같이 얘기한다"며 "가족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안타까운 얘기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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