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 입은 아버지이자, 공간 챙긴 어머니"…38년 경찰 인생[넘버112]
조병돈 서울중부서 경리계장 인터뷰
20년 가까이 경찰서 예산·시설·청사 증개축 담당
을지지구대·마포서 리모델링 등 근무환경 개선
"눈에 띄진 않아도 경찰이 일하도록 돕는 자리"
[파이낸셜뉴스] 경찰의 일은 사건 현장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순찰차가 움직이고 민원실 문이 열리며, 수사관들이 밤늦게까지 사무실을 지킬 수 있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살림꾼의 일'이 있다. 예산을 세우고 물품을 마련하고 낡은 청사를 고치며 경찰관들이 일할 공간을 정비하는 일이다.
올해 말 퇴직을 앞둔 조병돈 서울중부경찰서 경리계장(경감·사진)은 38년 가까운 경찰 생활 중 절반인 20년 가량을 그 자리에서 보냈다. 1989년 청와대 101경비단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송파경찰서와 강남경찰서, 중부경찰서, 마포경찰서 등을 거쳤다. 2005년 강남경찰서 경리계장을 맡은 뒤로는 경찰서 예산과 계약, 시설 관리, 청사 증·개축 업무가 그의 주된 현장이 됐다.
조 계장은 경리계를 "경찰서의 살림을 맡는 곳"이라고 했다. 수사나 순찰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경찰 조직이 멈추지 않도록 뒤에서 받치는 업무라는 뜻이다. 그는 "직접 현장에 나가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것도 경찰 업무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오래 지켜온 원칙은 투명성이다. 경리 업무는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예산을 다루는 일이다. 계약과 물품 구매, 공사 발주가 반복되는 자리인 만큼 작은 절차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중부서는 500만원 이상 공사·물품 구입 건을 서울경찰청에 보고하고, 5000만원 이상 사업은 일상감사를 거친다. 조 계장은 "내 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예산을 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조 계장의 손길이 가장 선명하게 남은 곳은 경찰서와 지역관서의 공간이다. 그에게 청사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경찰관이 하루 종일 머무는 일터이자 시민이 경찰을 처음 만나는 장소다. 그는 경찰서 공간의 변화가 경찰 조직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봤다. 과거에는 부족한 업무공간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직원들이 쉬고 재충전할 수 있는 환경까지 함께 고민하는 방향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을지지구대 리모델링은 그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중부서는 2024년 부지와 건물을 매입해 40년 된 노후 건축물을 지상 8층, 연면적 1043㎡ 규모 지역관서로 바꿨다. 남녀 휴게실과 탈의실, 캡슐침대, 힐링하우스, 스트레스 해소실 등이 들어섰다. 주취자와 난동자를 상대하고 돌아온 지역경찰관들이 잠시라도 독립된 공간에서 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포경찰서 리모델링도 그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당시에는 임시청사 이전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경찰서는 기존 청사에서 업무를 이어가야 했고, 공사도 멈출 수 없었다. 주차장에 컨테이너 사무실을 세우고 한 부서씩 옮겨가며 2년 동안 공사를 진행했다. 조 계장은 "소음과 분진 속에서도 직원들이 불편을 참고 견뎌준 것이 늘 고맙고 미안했다"며 "준공 뒤 편하게 이용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이 컸다"고 회상했다.
청사를 오래 보다 보니 습관도 생겼다. 다른 관공서에 가면 외관보다 민원실에 먼저 눈길이 간다. 의자 배치와 민원인 동선, 직원 보호시설, 칸막이 높이까지 자연스럽게 살핀다. 민원실은 시민이 경찰을 처음 만나는 공간이면서, 악성 민원으로부터 직원이 보호받아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조 계장은 "민원인도 편리해야 하지만 직원도 보호받아야 한다"며 "결국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경찰 직원들의 어머니'라고 표현한다. 집안 살림을 챙기듯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돌보는 자리라는 뜻이다. 집에서는 '경찰 아버지'이기도 하다. 큰아들도 현재 송파경찰서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조 계장은 "아들이 어릴 때부터 제복 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봤다"며 "저는 경찰관이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늘 천직이라고 말해왔다"고 했다.
퇴직을 앞둔 지금,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건물도 사업도 아니다. 그는 동료들을 먼저 떠올렸다. 2년 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생사를 오간 순간에도 곁을 지킨 것은 동료들이었다. 조 계장은 후배들에게도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승진이나 업무만 바라보기보다 가족과 동료, 주변 사람도 함께 돌아보길 바랐다.
조 계장은 자신의 경찰 생활을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맡은 자리에서 경찰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시간"이라고 정리했다.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후배들이 더 나은 공간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고 떠나는 일이 그에게는 더 의미 있는 흔적이었다.
[email protected] 최승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