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로 떼어냈는데 왜 또? 담도암 재발의 비밀은 '무리' [헬스체크]
[파이낸셜뉴스] 수술로 담도암을 제거해도 환자의 절반가량이 재발하는 이유가 밝혀졌다. 재발암은 몸속에 숨어 있던 암세포 하나가 다시 자란 것이 아니라, 원발암을 이루던 여러 암세포 무리가 함께 살아남아 증식한 것이다.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지원 교수와 병리과 나희영 교수 연구팀(공동 제1저자 혈액종양내과 강민수 교수, 이주현 연구원)은 담도암이 전암 단계부터 재발·전이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진화 경로를 밝혀내 네이처(Nature) 자매지인 종양학 분야 국제학술지(npj Precision Oncology)에 발표했다고 29일 밝혔다.
담도암은 담관, 담낭, 바터팽대부 등 담즙이 지나는 통로에 생기는 암으로,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 발병률이 특히 높다. 환자의 절반 이상이 수술이 불가능한 진행 단계에서 발견돼 생존 기간이 11~15개월에 그치고, 완치를 목표로 수술을 받아도 약 절반이 재발하는 대표적 난치암이다. 그러나 발생부터 재발·전이까지 전 과정을 유전체 수준에서 추적한 연구는 그간 거의 없었다.
연구팀은 담도암 환자 17명에게서 채취한 정상 조직, 전암성 병변, 원발암, 전이·재발암 등 72개 검체를 전장엑솜시퀀싱(단백질 정보가 담긴 유전체 영역 전체를 읽어 돌연변이를 확인하는 분석법)으로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암세포 무리(클론)가 생겨나고 갈라진 순서를 보여주는 가계도를 환자별로 그려 암의 진화 경로를 역추적했다.
분석 결과 전암성 병변에서 이미 TP53, KRAS, SMAD4 등 담도암의 핵심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다. 겉보기엔 암이 아니지만 유전자 수준에서는 암을 향한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암성 병변 내 여러 세포 무리 가운데 생존에 유리한 일부만 살아남아 원발암으로 자라났다. 연구팀은 다윈의 자연선택처럼 경쟁하던 세포 무리 중 증식에 유리한 무리가 병변을 장악하는 '선택적 싹쓸이' 현상이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선택적 확장은 전이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원발암에서는 소수였던 특정 세포 무리가 전이 부위에서는 주력으로 자리 잡았다. 장기마다 환경이 다른 만큼 각 부위에서 살아남기 유리한 무리가 선택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수술 후 재발한 암에서도 원발암을 구성하던 여러 세포 무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동안 암 재발은 몸 어딘가에 숨어 있던 암세포 하나가 시간이 지나 다시 자라는 현상으로 여겨져 왔다. 이번 결과는 여러 세포 무리가 한 덩어리로 함께 빠져나가 자리를 잡는 '다클론성' 방식으로 재발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항암치료가 암의 진화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확인됐다. 담도암 치료에 쓰이는 항암제가 남기는 것으로 알려진 돌연변이 패턴이 전이·재발 병변에서 증가한 것이다. 항암제 공격에서 살아남은 암세포가 그 흔적을 지닌 채 증식했다는 의미다. 다만 강민수 교수는 "항암제가 암을 악화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치료 과정 역시 암세포 진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반면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진단 당시 확인된 ERBB2 유전자 증폭, KRAS 돌연변이 등 표적치료제(특정 유전자 변이를 겨냥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약)의 대상이 되는 변이는 재발·전이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됐다.
김지원 교수는 "진단 당시의 주요 유전자 변이가 재발·전이 이후에도 유지된다는 것은 진단 시점부터 정밀 유전체 분석에 기반해 치료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며 "암의 진화 원리를 반영한 치료 전략으로 담도암 치료 성적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나희영 교수는 "담도암이 전암 단계부터 전이·재발까지 어떤 유전적 변화를 거쳐 진화하는지 하나의 흐름으로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전암성 병변에서부터 세포 무리 간 경쟁과 선택이 시작된다는 점은 담도암 발생 원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의 한국형 SGER(Small Grant for Exploratory Research) 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