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고령층·자영업자 어떻게 하라고"… 은행 영업 단축에 '난감' [르포]

박문수 기자, 이현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영업 단축 앞둔 지점 풍경
은행 문 여는 시간 9시 30분으로
은행권 노사 내년 4월 도입 합의
노인 등 금융 취약층 우려 목소리
일각 '전국적 일원화' 두고 경계
"지역 상황 맞춰 유연한 대응을"

29일 오전 서울 은평구 KB국민은행 응암동종합금융센터 앞에서 고객들이 개점을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다. 사진=박문수 기자
29일 오전 서울 은평구 KB국민은행 응암동종합금융센터 앞에서 고객들이 개점을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다. 사진=박문수 기자

"어제 번 현금을 통장에 입금도 하고, 오늘 장사하려면 잔돈도 필요해서 은행 문 열리기만 10분째 기다리고 있다."

29일 오전 8시 50분께 서울 은평구 KB국민은행 응암동종합금융센터에서 만난 자영업자 김모씨(67)는 "9시 반부터는 (가게) 영업 준비를 해야하니까 아침 시간이 빠듯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인근 대림골목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김씨는 "이 동네는 아직 현금을 들고 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전했다.

은행권 노사가 내년 4월부터 영업 시간 단축을 잠정 합의한 가운데 고령층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은행 창구 외에 금융 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취약계층에겐 은행 문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오전 9시 정각에 문을 연 국민은행 응암동종합금융센터 앞에는 은행 업무를 보기위해 방문한 10여명의 노인들이 자연스럽게 대기줄을 형성했다. 바로 옆 자동입출금기(ATM)에서 업무를 보는 소비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고령자들은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개점을 기다렸다.

■고령층·장애인 접근성↓…포용금융 어디로

지난 28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은행 영업점 개점 시간을 오전 9시에서 9시30분으로 30분 늦추는데 잠정 합의했다. 금요일은 영업 종료 30분 전부터 마감업무를 준비하는 이른바 '라스트콜'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노조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실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반영한 합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령층의 금융 소비자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80대 김모씨는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9시면 대낮이다"며 "지금도 늦게 문을 여는 편인데 더 늦어지면 노인들은 어쩌라는 말이냐"고 따졌다. 김씨는 "핸드폰으로 돈을 보내고 받는 건 할 줄도 모른다"며 "자식들이 보이스피싱이니 어쩌니 하면서 알려주지도 않는다"고 푸념했다. 뒤에 서있던 정모씨(91)는 "전화 요금을 내야해서 나왔다"면서 "시간 많은 노인들이야 아무때나 오면 되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은 은행 문을 늦게 열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시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은행 지점 내부는 한산했다. 해당 은행 부행장은 "점포별로 붐비는 시간대가 천차만별"이라며 "고객이 거의 내방할 일이 없는 점포는 하루종일 1~2명이 오는 경우도 있어 번호표가 001이 아니라 101부터 시작하도록 조작해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업시간을 전국적으로 일원화하기 보다 금융 취약계층이 많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도심 지역 간 상황을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5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국민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이 100이라면, 고령층은 71.8, 장애인은 84.1로 집계됐다. 취약계층 전체의 접근 수준은 96.6이지만 역량 수준은 65.9, 활용 수준은 80.5에 불과했다.

60대 이상의 경우 상대적으로 현금 이용 비중이 높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지급수단·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현금 이용 비중은 지난 2013년 41.3%에 달했으나 2019년(26.4%)과 2021년(21.6%) 조사에서 20%대로 하락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60대 이상의 경우 타연령층에 비해 현금 이용 비중이 높다"며 "은퇴 후 정기 소득이 줄어 신용카드 발급에 제약이 있는 것도 이유"라고 지적했다.

■4.5일제 '징검다리'…은행원 '환영'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행원들은 이번 합의안을 '출근 정상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원은 "오전 9시 개점에 맞추려고 30분 이상 일찍 출근하는데, 개점 시간이 9시30분으로 늦춰지면 9시에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요일 라스트콜 도입을 두고는 향후 주 4.5일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왔다. 잠정합의안에는 금요일은 영업 종료 30분 전부터 영업점이 마감업무를 준비할 수 있도록 라스트콜 제도를 운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단, 영업 종료시간은 오후 4시로 유지되며, 오후 3시30분부터 신규 고객 접수를 일률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시중은행 행원은 "이번 노조 요구안 중 주 4.5일제 도입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이 포함돼 있었다"며 "당장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주 4.5일제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합의안은) 유의미하다"고 전했다.

[email protected] 박문수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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