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담 걸린 줄 알고 안마의자 누웠는데…" 수요일 밤, 4050 가장의 심장 혈관이 찢어졌다 [몸의 오프더레코드]
"어깨 뭉쳤나" 파스 찾고 안마의자 눕는 치명적 오판
내막 찢어지며 뿜어진 피가 혈관을 반으로 가른다
시간당 사망률 1%씩 치솟는 초응급 질환
[파이낸셜뉴스] 지옥 같은 출근 첫날을 정신력으로 버텨낸 뒤 맞이한 9월 30일 수요일 밤.
아드레날린마저 바닥난 4050 가장의 육체에는 명절의 묵은 피로와 일상의 스트레스가 무자비한 이자로 얹혀 돌아온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던 중, 날갯죽지(견갑골) 사이의 등 한가운데가 뻐근해지기 시작한다.
"명절에 장거리 운전하고 어제 무리를 좀 했더니, 등에 단단히 담이 걸렸네."
대다수 중년 남성들은 아내에게 파스를 한 장 붙여달라고 부탁하거나, 거실 한편에 놓인 고가의 안마의자에 몸을 뉘며 뭉친 근육을 풀려 한다.
하지만 안마의자에 몸을 누이고 롤러가 등을 훑기 시작한 바로 그때, 뻐근했던 등 통증의 양상이 갑자기 돌변한다. 마치 도끼로 몸을 반으로 쪼개는 듯한 상상 초월의 극통이 폭발한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파스나 안마의자로 해결될 근육통이 아니었다. 당신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가장 굵고 거대한 혈관, '대동맥'이 세로로 찢어지고 있는 것이다.
'급성 대동맥 박리(Acute Aortic Dissection)'의 대표적인 증상은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극심한 가슴 또는 등 통증이다. 환자들은 이를 '찢어지는 듯하다', '칼로 베는 듯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동맥은 내막, 중막, 외막의 3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소 고혈압을 앓고 있거나 스트레스로 혈압이 극도로 치솟은 상태에서 찬 공기(가을 환절기)에 노출되면, 가장 안쪽 껍질인 내막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한다.
비극은 이 작은 균열 틈새로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압력의 피가 파도처럼 밀려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유입된 피는 대동맥의 내막과 중막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며 혈관 벽을 위아래로 찢어버린다. 환자들이 "통증이 가슴에서 시작해 등을 타고 허리 쪽으로 찢어지듯 내려간다"고 묘사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박리가 대동맥을 따라 진행하면서 통증의 위치가 가슴에서 등이나 복부 쪽으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4050 남성들의 무모한 인내심과 착각이다. 대한심장학회 통계에 따르면, 대동맥 박리는 남성 환자가 여성보다 2배 이상 많으며 40~60대에서 집중적으로 폭발한다. ACC/AHA 가이드라인은 대부분의 대동맥 박리가 50~70세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국내 연구에서도 고혈압은 환자의 63.5%에서 확인됐다.
평소 혈압 약 먹기를 찜찜해하며 고혈압을 방치해 온 중년 남성들이, 등허리가 찢어지는 통증을 단순한 디스크나 급성 근육통으로 오인해 정형외과를 가거나 안마의자에 누워 골든타임을 날려버린다.
대동맥 박리는 발생 직후부터 1시간이 경과할 때마다 사망률이 1%씩 치솟는 초응급 질환이다. 48시간 내에 수술받지 못하면 환자의 절반이 외막까지 완전히 터져 사망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안마 자체보다 이를 단순 근육통으로 오인해 안마나 찜질로 버티는 사이 응급진료가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가장들은 어깨가 무겁고 등이 굽어가는 것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버거워 통증이 온 것이라 자위하며 서랍 속 파스를 찾는다.
하지만 등과 가슴을 찢어발기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 앞에서는 그 어떤 위로나 인내도 사치다. 그것은 삶의 무게가 아니라, 당신의 심장 혈관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물리적인 파국의 소리다.
통증때문에 자신의 몸을 눕히는 대신, 당장 119 구급차에 몸을 실어야 당신의 무거운 등 허리를 내일도 가족에게 기대게 할 수 있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