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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이사람] "영변 핵시설 없애도 헛일… 원료 나오는 평산 광산 막아야"

송지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이춘근 KAIST 이사
하노이회담 때 해법 이젠 과거
핵무기 수보다 생산능력 주목
우라늄 공급부터 막아야 실효
美 입장만 앞선 북미합의 경계

이춘근 KAIST 이사
이춘근 KAIST 이사

"하노이 때의 비핵화 문법으로는 이제 안 됩니다. 영변 핵시설 하나를 없애는 것도 예전만큼 의미가 없습니다."

북한·중국 등 공산주의권의 국방과학과 과학기술 체계를 20년 넘게 연구해온 이춘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사진)가 4일 내린 진단이다.

이 이사는 1990년대 중국 옌볜과학기술대 교수와 부총장을 지내고 중국과학원 과학기술정책연구소에서 연구하며 사회주의권의 과학기술 체계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과 핵물질 생산능력 등을 꾸준히 추적해오며 2022년에는 영변과 강선 등의 고농축우라늄 생산량을 토대로 북한이 핵탄두 70~100개를 보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영변은 북한 핵 능력의 40~50%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이 이사 진단의 핵심이다. 영변 밖에서도 핵물질 생산능력이 커진 데다 핵탄두를 실어나르는 미사일까지 발전하면서 북핵 협상의 셈법 자체가 달라졌다고 봤다. 과거처럼 영변을 폐쇄하는 것만으로 북한의 핵 생산능력 전반을 묶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핵물질 생산량을 토대로 북한의 핵탄두 규모를 꾸준히 추계해온 이 이사가 이제 주목하는 것은 핵무기를 '몇 발 가졌느냐'보다 '얼마나 더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뿐 아니라 앞으로 핵탄두를 계속 찍어낼 수 있는 생산능력까지 협상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를 실현하려면 북한의 핵 능력이 더 커지는 것을 우선 동결한 뒤 감축을 거쳐 비핵화로 나아가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END 이니셔티브는 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발표한 신한반도 평화 구상이다.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대북 정책 기조를 말한다.

동결의 첫 단추로 꼽은 곳은 황해북도 평산 우라늄 광산이다. 핵무기는 광산에서 원료인 우라늄을 캐낸 뒤 원심분리기로 농축해 핵물질을 만들고 핵탄두를 제작한다. 풍계리는 만들어진 핵무기가 제대로 폭발하는지를 시험하는 곳이다.

북한은 지난 2018년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5개국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와 관련 시설을 폭파했다. 이는 당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풍계리가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를 시험하는 마지막 단계라면 평산은 핵무기의 원료가 나오는 출발점에 가깝다.

이 이사가 풍계리가 아닌 평산을 동결의 출발점으로 제시한 이유다. 북한 곳곳에 숨길 수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일일이 찾아 폐쇄하기 어려운 만큼 그 시설에 들어갈 원료부터 차단하자는 것이다. 핵실험장을 폐쇄하는 것만으로는 핵무기의 추가 생산능력까지 없애기 어렵다는 취지다.

아울러 북한이 이미 확보한 우라늄을 핵무기용으로 농축하는 원심분리시설도 더 늘어나지 못하도록 막고, 핵탄두를 실어나르는 미사일 능력까지 더 키우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문제는 향후 북미 협상에서 어디까지를 동결 대상으로 삼느냐다. 이 이사는 미국이 자국 본토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선시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ICBM은 동결하면서 한국을 겨냥할 단·중거리 핵전력은 남겨두는 합의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북미 협상에 앞서 한국이 우려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도 협상안에 반영되도록 미국과 충분히 조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송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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