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 야구르트, 야구로 가까워진 사람들 [방과 후 법조인들②]
[파이낸셜뉴스] "어느 부서 소속이세요?"보다 "어느 팀 팬이세요?"라는 인사가 더 자연스럽다.
법무법인 지평의 야구 관람 동호회 '야구르트'에서는 직급이나 부서보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먼저 대화의 소재가 된다. 변호사와 전문위원, 직원까지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구성원들이 '야구'라는 공통 관심사로 한자리에 모이면서다.
대형 로펌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조직 안에서 일한다. 하지만 업무 분야가 다르면 같은 회사에 있어도 마주칠 기회가 많지 않다. 지평은 사내 동호회를 통해 구성원들이 업무 밖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 있다.
현재 지평에는 6개의 사내 동호회가 운영 중이다. 영화·연극·공연·전시 등을 함께 즐기는 문화생활 동호회 '다감다사(多感多思)', 야구 관람 동호회 '야구르트', 꽃꽂이 동호회 '지화자'를 비롯해 지평산악회, 지평 테니스회, 축구 동호회 '지축'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야구르트에는 현재 43명의 구성원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 중 변호사가 약 40%, 전문위원과 직원 등이 약 60%다. 지평 설립 멤버인 대표변호사부터 올해 입사한 신입 직원까지 연차도 다양하다.
'야구르트'라는 이름에는 '야구로 Refresh Together(재충전 하다)'라는 의미가 담겼다. 지난 2013년 서로 응원하는 팀은 달라도 야구를 좋아하는 변호사와 직원들이 함께 경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교류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지난해부터 2년째 야구르트 총무를 맡고 있는 박아름 지평 IP·IT그룹 파트너 변호사는 대학 시절부터 15년 넘게 KBO(한국야구위원회) 리그를 지켜본 야구팬이다. 경력 변호사로 지평에 합류한 뒤 사내에 야구 동호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가입했다. 박 변호사는 "운명 같이 끌렸다고 할까. 결국 지금은 동호회 총무를 하고 있다"고 회상했다.
야구르트의 주요 활동은 KBO 리그 정규시즌 직관이다. 분기별로 한 경기를 정해 함께 관람한다. 퇴근 후 모이는 만큼, 잠실이나 고척 등 접근성이 좋은 야구장을 주로 찾는다. 국제대회가 열릴 때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스포츠펍 등에 모여 대한민국 대표팀을 함께 응원하기도 한다.
최근 KBO 리그 인기가 높아지면서 단체 직관의 최대 난관은 티켓 예매가 됐다. 참여 인원을 미리 조사한 뒤 비교적 예매 경쟁이 덜한 경기를 골라야 할 정도다.
응원팀이 제각각이라는 점은 오히려 야구르트만의 재미가 됐다. 2024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야구르트 회장을 맡았던 서영동 지평 송무2팀장은 골수 롯데 자이언츠 팬이다. 서 팀장은 과거 '엘롯기(LG·롯데·KIA)' 팬들이 서로를 응원했다면 최근에는 한화와 롯데 사이에 이른바 '조류 동맹'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KIA 타이거즈 팬인 박 변호사와 서 팀장 사이에는 경기 결과에 따라 다음 날 회사 풍경도 달라진다. KIA가 롯데를 이긴 다음 날이면 박 변호사가 엘리베이터에서 서 팀장을 만나 "어제 경기 보셨어요?"라며 먼저 말을 건다. 반대로, 롯데가 KIA를 이긴 날에는 박 변호사가 조용해지고 서 팀장이 먼저 전날 경기를 꺼낸다.
박 변호사는 "차라리 놀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며 "야구팬들은 위로받는 게 더 슬프다"고 웃었다. 이처럼 야구장에서 시작된 대화는 회사 안에서 새로운 관계로 이어진다.
박 변호사는 국내 송무 업무를 주로 담당해 평소 국제그룹과 업무상 접점이 많지 않았지만, 야구르트에서 외국변호사와 가까워지면서 국제그룹의 업무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서 팀장 역시 업무상 접점이 없던 구성원들과는 과거 엘리베이터에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지만, 야구르트 활동 이후 대화가 자연스러워졌다고 설명했다. 야구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가 일상적인 이야기로 이어지고 서로를 알아가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동호회에서 쌓인 친밀감은 업무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 팀장은 "평소에는 메일을 통해 업무 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동호회 활동을 통해 가까워진 구성원들과는 보다 편하게 전화하거나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도 송무팀과 협업할 일이 많은 만큼, 동호회에서 친해진 직원들에게 업무 요청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업무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상대방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을 소재로 자연스럽게 말문을 여는 경우가 있다.
박 변호사에게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난해 6월 잠실야구장 직관이다. 특허법인 지평 구성원까지 20명 넘게 참여한 날이었다. 먼저 야구장에 도착해 일행을 기다리던 박 변호사의 눈에 정장 차림의 동료들이 삼삼오오 야구장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박 변호사는 당시를 "'퇴근 후 야구장으로'라는 우리 동호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며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야구르트를 비롯한 지평의 사내 동호회는 구성원들이 업무 관계를 넘어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또 다른 통로가 되고 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해도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취미를 공유하면서 접점을 넓히고, 그 관계가 다시 일터의 소통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박 변호사는 "직장 안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조금 더 편해지고, 지평이라는 공간과 구성원에 대한 애정도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 팀장은 "구성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이 야구르트 활동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야구르트는 앞으로 활동 반경을 서울 밖으로 넓힐 계획이다. 그간 이동 시간 등을 고려해 서울 소재 야구장을 중심으로 직관해왔지만, 회원들과 전국 각지의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보고 지역 명소와 맛집까지 함께 둘러보는 활동도 구상하고 있다.
응원하는 팀도, 직급도, 하는 일도 다르다. 그러나 퇴근 후 야구장에 모인 순간 만큼은 모두 야구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다. 지평의 야구르트는 그렇게 야구를 매개로 회사 안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있다.
[email protected] 유선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