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영화엔 기억 왜곡에 대한 책임 있어… 암살자(들)도 마찬가지"

장인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이재훈 한미동맹협의회 역사위원장
지난 7월 '박정희는 역사이다' 펴내
"독립군 토벌설 입증할 별도 사료 없어"
20년간 자료·증언 추적해 쟁점 검증

신간 '박정희는 역사이다'를 펴낸 이재훈 한미동맹협의회 역사위원장이 지난 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장인서 기자
신간 '박정희는 역사이다'를 펴낸 이재훈 한미동맹협의회 역사위원장이 지난 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장인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기록이 존재해도 사람들이 찾아 읽지 않으면, 훨씬 자극적인 한 문장의 주장과 이미지가 역사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는 역사이다'(지우출판)를 펴낸 이재훈 한미동맹협의회 역사위원장은 우리가 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20년간 사료와 증언을 추적한 과정을 돌아보며 통념의 출처와 원문 확인을 강조했다. 지난 7월 출간한 책은 박정희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온 14개 쟁점을 원자료를 통해 추적·검증한다.

■기억과 통념, 그리고 1차 사료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EBS 강사로 활동한 그의 연구는 어린 시절 접한 박정희에 대한 기억과 훗날 형성된 사회적 통념 사이의 간극에서 출발했다. 경북 구미(선산)의 외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그 지역 어른들에게서 박정희가 인간적이고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지만, 이후 방송과 교과서 등에서 접한 박정희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그 기억과 크게 달랐다.

그러던 중 가야산에서 박정희를 보좌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노인을 우연히 만나면서, 자신이 들어온 이야기와 실제 기록이 어디까지 일치하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역사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그분의 증언이 다른 기록과 부합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문·회고록에서 외교문서·판결문·미국 정부 자료로 추적 범위를 넓혔다.

책의 분석 틀은 그람시의 '진지전'이다. 교육·언론·문화에서 반복된 이야기가 상식으로 굳어지는 과정에 주목한 그는 "이 진지전의 무기는 다름 아닌 검증 가능한 1차 사료와 논리적 인과관계"라고 말했다.

■독립군 토벌설과 경제개발
독립군 토벌설에서는 박정희의 만주군 장교 복무라는 확인된 사실과 그가 독립군을 직접 토벌했다는 후대의 주장을 사료적으로 구분했다. 그는 "독립군 토벌을 역사적 사실로 말하려면 만주군 장교였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제 토벌 행위를 입증하는 별도의 사료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1973년 북한 '로동신문'에 등장하는 '오까모도 중위', '토벌 110여 회' 등의 표현을 확인한 뒤 원고의 구조 자체를 다시 짰다고 했다. 그 주장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뿐 아니라, 어떤 경로를 거쳐 국내로 유입되고 확산돼 하나의 통설처럼 굳어졌는지까지 직접 추적하는 방식으로 글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어 관련 자료와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 박정희의 복무 지역과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박정희가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이른바 '독립군 토벌설'은 이를 뒷받침할 사료적 근거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전체 맥락을 읽어야 하는 사례로 들었다. 한국 정부가 제3차·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사실상 미국의 자문 없이 수립했다는 대목을 짚으며 경제개발을 미국의 지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영화엔 기억 왜곡에 대한 책임 있어… 암살자(들)도 마찬가지"

부마항쟁 당시 이재천 소령의 현장 일기도 살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실탄과 공포탄을 장전하지 말라고 지시한 내용이 명시돼 있다. 그는 이 현장 기록을 김재규의 법정 진술과 대조해 당시 상황의 실체를 검증했다고 밝혔다. 회고록과 구술은 당대 문서와 교차 검증하고, 공식 문서 역시 작성자의 관점과 한계를 따져 읽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저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말했다'가 아니라 '그 말을 당시의 기록이 뒷받침하느냐'였다"고 설명했다. 5·16과 유신에 대해서도 행위의 성격과 시대적 조건, 역사적 결과를 함께 봐야 한다면서 "절차적 정당성의 결여와 권위주의적 억압이라는 그림자를 덮어 두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역사영화와 기록의 무게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도 같은 관점에서 봤다. 그는 확인된 사실과 가설·해석, 창작적 상상력을 구분해야 한다며 "허구를 만들 자유가 있다면, 그 허구가 현실의 기억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책임 역시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화가 박정희의 자작극을 연상시켜 역사 인식을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가설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지도 않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한민국역사바로알기연구원 부원장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11월 중순 경북도청 출간기념회와 내년 봄 한미동맹협의회 주최 미국 출간기념회를 계획 중이다. 다큐멘터리 제작도 추진한다.
새 자료가 나오면 책을 수정·보완하겠다며 "역사책이 저자가 마지막 판결문을 쓰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자료 검색 통로로 한국사데이터베이스와 국가기록원,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집(FRUS)을 꼽았다.

그는 "제 책도 의심해 보십시오"라며 "각주를 따라가 원자료를 직접 읽어 보시고, 제 해석이 그 자료에 비추어 타당한지도 스스로 판단해 보셨으면 한다"고 권했다.

[email protected]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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