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필레이 "노벨평화상, 국제범죄 생존자에 바친다"…역사적 전범 법정서 일갈(종합)
[파이낸셜뉴스] "우리는 국제법과 인권이 심각한 정치적 공격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인권을 보호하고 전쟁을 자제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나바네템 나비 필레이 국제사법재판소(ICJ) 임시 재판관(85)이 9일(현지시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 지도부 전범 재판이 열렸던 독일 뉘른베르크 역사 법정에서 전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묵직한 일침을 가했다.
이날 뉘른베르크 포럼 행사 참석 중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한 그는 기자회견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이 역사적인 법정에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며 감회를 밝혔다. 그는 "이 상을 국제범죄의 모든 생존자들에게 바치고 싶다"며 참혹한 분쟁의 피해자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평생을 국제 사법 체계 확립에 헌신해 온 필레이 재판관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흔들리는 국제법의 현주소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악화하는 현실은 최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한 공격에서 특히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우려를 표명하며, 법치를 지키기 위해 세계가 연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ICC를 "불량 기관"이라 칭하며 회원국들의 탈퇴를 종용하는 등 노골적인 압박을 가한 상황을 정면으로 꼬집은 것이다. 필레이 재판관은 세계 지도자들에게 국제 사법기관을 존중할 것과 전쟁 자제라는 본연의 법적 의무를 이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필레이 재판관은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정권 시절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반인종차별 운동가들을 변호한 인권 변호사 출신이다. 이후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와 ICC 재판관,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역임하며 전쟁범죄와 집단학살(제노사이드) 책임 규명에 평생을 헌신했다. 최근에는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독립국제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가자지구 전쟁의 인권침해와 국제법 위반 여부를 조사했으며, 현재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집단학살 사건의 ICJ 특별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특유의 재치와 소신을 잃지 않았다. 앞서 동료들의 축하 박수 속에 처음 수상 소식을 접한 그는 "여러분이 박수를 조금만 더 치면 트럼프 대통령과 이 상을 나눠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며 평화상 수상을 끈질기게 갈망해 온 트럼프 대통령을 비꼬는 유머를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그는 가자지구 사태를 집단학살로 규정한 자신의 보고서와 관련해 쏟아진 '용기에 대한 헌사'를 언급하며 "진실을 말하는 데 왜 용기가 필요한지 놀라웠다"고 일갈했다. 이어 "법률을 해석하고 사실들을 검토해 공정한 의사결정을 하면 될 뿐"이라며 "85세가 됐지만 훌륭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고 단단한 의지를 드러냈다.
[email protected] 박지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