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걷어낸 자리에 드러난 산의 능선…우병윤의 '들떠 있는 풍경' [fn 아트스냅]
석고·과슈로 빚은 풍경…선과 표면의 중첩 선화랑서 회화 32점 선보여…11월 3일까지
[파이낸셜뉴스] 희끗한 산의 능선을 가느다란 선들이 빼곡하게 채운다. 풍경의 윤곽을 따라가던 시선은 이내 긁힌 자국으로 옮겨간다. 우병윤의 회화에서 산은 석고 위에 입힌 색을 걷어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 종로구 선화랑 1·2전시실에서 선보이는 우병윤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은 '중첩' 연작과 신작 '들떠 있는 풍경' 등 회화 32점으로 구성됐다. 1988년생인 작가가 2024년 선화랑 기획전 '자연회귀적 열망'에 참여한 데 이어 이곳에서 처음 여는 개인전이다.
■쌓은 표면에서 덜어낸 풍경으로
'중첩' 연작은 나무 패널에 석고를 올려 울퉁불퉁한 바탕을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이랑과 고랑처럼 높낮이가 생긴 표면을 채색한 뒤 긁는다. 재료를 쌓는 손길과 색을 지우는 손길이 겹치며 선들은 파도나 산을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이어진다.
푸른 바탕의 '중첩 26-01-301'(2026)에서는 비스듬하게 엇갈린 결이 잔물결처럼 번진다. 산의 윤곽이 읽히는 신작과 비교하면, 같은 긁기의 반복이 물결의 움직임과 산의 덩어리라는 다른 인상을 만든다는 점이 보인다.
오브제후드 갤러리가 공개한 기존 작업 소개에는 바탕 작업, 표면 조형, 채색, 긁어내기 등 네 단계가 제시돼 있다. 석고를 과슈로 채색하고 조각칼로 긁는 방식이다. 회화의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 표면을 깎는 조각의 행위가 맞물린다.
신작에서는 미리 요철을 만들던 단계를 바꿨다. 바탕의 굴곡이 산의 덩어리와 깊이를 표현할 선을 방해할 수 있어서다. 석고를 평평하게 펴고 색면을 만든 다음 한 방향으로 긁어 흰 바탕을 드러낸다. 남은 색과 노출된 석고가 대비를 이루며 화면의 밝고 어두운 부분을 나눈다.
짧고 긴 선의 차이, 촘촘하거나 성긴 밀도가 산의 밝기와 부피를 결정한다. 기존 작업에서 재료의 결을 부각하던 선은 이제 풍경을 조직하는 요소가 된다. 산을 알아보는 일과 산이 만들어진 흔적을 읽는 일이 함께 일어난다.
세 화면으로 구성된 '들떠 있는 풍경 26-09-330'(2026)은 산세를 옆으로 길게 펼친다. 능선은 화면을 가로질러 이어지지만 패널 사이의 이음새는 경계를 남긴다. 풍경의 연속성과 그것을 나누는 틀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산의 깊이와 화면의 평면 사이
산의 흐름 위에는 일정한 간격의 수평선이나 수직선이 놓인다. 풍경으로 빠져들던 눈을 다시 화면의 표면으로 돌려놓는 장치다. 자연을 닮은 곡선과 인위적인 직선이 겹치며 산의 입체감과 회화의 평면성이 함께 읽힌다.
전시 제목의 '들떠 있다'는 단순히 산이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풍경과 추상, 깊이와 평면의 관계가 한쪽으로 굳어지지 않는 상태다. 산의 형상은 분명하지만 선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재료의 흔적으로 읽힌다.
작가가 겨냥하는 것도 자연의 닮은꼴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해석하거나 소유하는 대상 대신, 인간의 시선과 무관하게 이어지는 세계로 자연을 바라본다. 재료와 손의 움직임이 만나 풍경을 만드는 작업에는 그 태도가 배어 있다.
우병윤은 작가노트에서 "자연을 내가 해석하고 소유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무관하게 계속되는 세계로 바라보고 싶었다"며 "나 또한 그 안에 잠시 포함된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이어진다. 관람 시간은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은 오후 5시30분에 마감한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email protected] 장인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