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방 두 개짜리 집에 8억이라니"…서울에서 아이 키우려면 얼마나 벌어야 하나 [하우스 시그널]
비강남권 전용 59㎡ 전셋값 8억원 잇단 돌파… 마포는 10억 육박 월 300만원씩 한 푼 안 쓰고 22년 모아야 겨우 '남의 집' 보증금 5억 대출 땐 이자만 월 208만원… "아이 학원비 끊고 출퇴근 지옥 가야 하나" 통계가 증명하는 주거비 폭등… 평범한 월급쟁이들에겐 '사치'가 된 서울살이
[파이낸셜뉴스] ] 일곱 살 아이를 둔 평범한 3인 가구에게 전용면적 59㎡(약 24평) 아파트는 결코 사치스러운 공간이 아니다. 부부의 안방 하나, 아이의 작은 방 하나, 그리고 퇴근 후 온 가족이 모여 앉을 작은 거실. 누군가에게는 비좁을지 몰라도 세 식구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금자리다.
하지만 지금 서울에서 이 소박하고 평범한 공간에 2년 동안 '세 들어 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잔혹할 만큼 무겁다.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 이야기가 아니다. 은평, 성북, 동대문 등 서울 비강남권 소형 아파트 전세 시장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냉혹한 현실이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전세보증금 8억 원은 어떤 의미일까. 매월 300만 원씩 꼬박 저축한다고 가정할 때, 1년이면 3600만 원, 10년을 모아도 3억 6000만 원이다. 8억 원을 쥐기 위해서는 무려 22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이자나 투자 수익을 배제하고, 그 사이 전셋값이 단 한 푼도 오르지 않는다는 비현실적인 가정 아래 도출된 숫자다.
20대 중반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청년이 결혼, 출산, 육아, 부모님 부양 등 생애 주기에 필수적인 지출을 극단적으로 통제해야만 40대 후반에 겨우 모을 수 있는 돈이 '남의 집에 머물 권리'를 얻는 데 쓰이는 셈이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객관적인 실거래가 통계로 증명된다.
1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 증산동 'DMC센트럴자이' 전용 59㎡는 지난 7월 8억 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불과 5개월 전인 2월(7억 5000만 원)에 비해 5000만 원이 올랐다.
오름세가 더욱 가파른 곳도 있다. 성북구 길음동 '래미안길음센터피스' 전용 59㎡는 지난 1월 6억 5000만 원이던 전셋값이 7월 8억 3000만 원으로 뛰었다. 반년 만에 1억 8000만 원이 폭등한 것으로, 이를 6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3000만 원씩 전셋값이 오른 셈이다.
동대문구 용두동 'e편한세상청계센트럴포레' 동일 면적 역시 9월 8억 2000만 원에 거래되며 연초 대비 7000만 원이 상승했고, 마포구 용강동 'e편한세상마포리버파크' 전용 59㎡는 지난 8월 9억 9750만 원에 세입자를 맞으며 사실상 소형 아파트 전세 '10억 시대'를 알렸다.
자력으로 보증금을 모으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대출에 의존해야 한다. 8억 원짜리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모아둔 돈 3억 원에 5억 원을 추가로 빌린다고 가정해 보자.
연 5% 금리를 적용할 경우 1년 이자만 2500만 원, 매달 약 208만 원을 은행에 납부해야 한다. 원금은 단 한 푼도 갚지 못한 채 허공으로 사라지는 순수 이자 비용이다. 매달 208만 원이면 아이의 교육비를 충당하고, 온 가족이 주말에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며 일상의 숨통을 트일 수 있는 규모의 돈이다. 전세보증금이야 만기 시 돌려받는다지만, 은행에 낸 이자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가계의 순손실이다.
일각에서는 주거비를 줄이기 위해 외곽으로 이사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어린 자녀를 키우는 3040 맞벌이 가구에게 이사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표'를 찾아 떠나는 쇼핑이 아니다.
보증금을 낮춰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으로 밀려나는 순간, 어렵게 구축해 놓은 아이의 보육 환경과 학군이 붕괴된다. 부부의 출퇴근 시간은 길어지고, 이는 곧 퇴근 후 아이와 눈을 맞추고 숙제를 봐주는 저녁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면적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과 삶의 질 그 자체다.
전세 공급 감소와 선호 지역으로의 수요 쏠림 현상이 맞물리면서 전셋값은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안으로 꼽히는 월세 시장 역시 혹독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64만 1000원에 달한다. 전세를 택하면 천문학적인 목돈과 대출 이자의 늪에 빠지고, 월세를 택하면 매달 가처분소득의 상당 부분을 고스란히 바쳐야 하는 진퇴양난의 구조다.
물론 8억 원이 서울 전체 소형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아니다. 하지만 강남이 아닌 지역의 24평 아파트 보증금이 이처럼 비현실적인 수준까지 치솟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월급을 쪼개 저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직장인에게, 방 두 개짜리 평범한 보금자리를 지켜내는 일조차 힘겨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가족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갖는다는 것. 서울이라는 도시는 지금, 그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꿈마저 너무나 값비싼 사치재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