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받은 '기대 관리'…워시의 '침묵 전략' 시험대
우드퍼드, 미래 금리 기대의 중요성 규명해 노벨상
워시는 포워드 가이던스 축소…시장 소통 방식 논쟁
수상자도 "정책 재평가 적절"…금리 예고보다 신뢰가 관건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통화정책 소통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앙은행이 미래 금리 방향을 알리는 것만으로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론의 토대를 닦은 마이클 우드퍼드 컬럼비아대 교수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안내)를 줄이고 있는 시점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12일(현지시간) 우드퍼드 교수와 로버트 홀 스탠퍼드대 교수를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 수상 업적은 '거시경제 안정화의 미시경제적 기초'다. 가계와 기업의 선택에서 출발해 경기 안정화 정책의 효과를 따져볼 수 있게 한 새 케인스주의 모형을 정립한 공로다.
왕립과학원은 두 사람의 모형이 가계가 미래를 내다보며 소비와 저축을 결정한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정책을 어떻게 알리느냐가 사람들의 미래 전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드퍼드 교수의 연구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실제로 조정하지 않아도 향후 방향을 알리는 것만으로 소비와 투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금리를 낮게 유지하겠다고 밝히면 가계는 소비를 늘리고 기업은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
우드퍼드 교수는 수상 발표 때 전화로 기자들과 만나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이 경기 회복에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금리가 제로 수준이었다. 중앙은행들은 향후 금리 방향을 더 명시적으로 밝히는 방식을 새로 도입했다. 우드퍼드 교수는 이 방식이 경기 안정에 기여했다며 "마법처럼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기여였다"고 평가했다.
반면 워시 의장은 취임 이후 소통을 줄여왔다. 5월 취임한 그는 6월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현재 정책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며 선제안내를 성명서에서 뺐다고 밝혔다. 연준 커뮤니케이션을 검토하는 태스크포스(TF)도 출범시켰다. 시장이 성명 문구를 분석하기보다 실제 데이터에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 워시 의장의 입장이다.
문제는 중앙은행이 말을 줄인다고 시장의 기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8월 28일 와이오밍주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이 대표적이다. 워시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향해 충분히 빠르게 하락한다는 확신이 없다면 연준이 추가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구체적인 금리 경로는 제시하지 않았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당시 9월 FOMC 금리 인상 확률은 전날 35.4%에서 55.7%로 20.3%p 상승했다.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14bp(1bp=0.01%p) 오른 4.34%로 마감했고, 10년물도 장 후반 5.6bp 상승한 4.728%를 기록했다.
워시 의장이 금리 인상 시점을 밝히지 않았지만 시장은 그의 발언을 긴축 신호로 해석한 것이다.
실제로 연준은 지난달 16일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p 올려 연 3.75~4.00%로 조정했다. 2023년 7월 이후 첫 인상이었다. 시장은 회의 직전 이미 금리 인상 가능성을 90% 이상 반영하고 있었다.
이는 연준의 소통 축소가 반드시 시장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워시 의장이 구체적인 금리 경로를 제시하지 않았어도 시장은 물가 지표와 유가 상승 등을 통해 정책 방향을 예상한 것이다.
다만 한 차례 금리 결정을 예상한 것이 포워드 가이던스가 불필요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시장이 당장의 금리 결정을 맞히는 것과 향후 통화정책의 방향을 안정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연준 내부에서도 미래 금리를 미리 약속하는 것과 정책 결정 원칙을 설명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2일 전미기업경제협회(NABE) 연차총회에서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리는지 대중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책 반응함수를 설명하는 것은 미래 금리 경로를 예고하는 것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정책 반응함수란 경제 상황이 달라질 때 중앙은행이 금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 원칙을 뜻한다.
이번 수상을 워시 의장의 소통 축소 전략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노벨위원회가 인정한 것은 특정한 금리 예고 방식이 아니라 가계와 기업의 미래 기대가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성과다.
우드퍼드 교수 역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워시 의장의 새로운 소통 전략에 대해 "이러한 정책들을 주기적으로 재평가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밝혔다. 포워드 가이던스가 발전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현재의 경제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인정했다.
결국 이번 노벨경제학상은 워시의 소통 축소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정하기보다 그 전략의 성패를 가를 기준을 다시 부각한 셈이다. 미래 금리 경로를 미리 약속하지 않더라도 시장이 연준의 정책 판단 원칙을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준은 오는 27~28일 FOMC에서 다음 금리 결정을 내린다. 워시 의장이 금리 전망은 줄이면서도 시장의 기대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가 시험대에 오른다.
[email protected] 이병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