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동남아 빨래방 시장… 삼성·LG가 잡는다
도시화·고온다습 기후 맞물려
무인 세탁방 중심 B2C 급성장
삼성·LG 운영 세탁방 '입소문'
솔루션 성능·사업성 입증 나서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 "이불처럼 부피가 큰 빨래는 집에 있는 세탁기에 들어가지 않아서 주로 이곳을 찾고 있어요."
지난 12일 본지가 찾은 베트남 하노이의 '비 런드리' 매장에서 만난 20대 여성 늉 씨는 "평소 LG 가전에 대한 신뢰가 높아 집에서 20여분 떨어진 이곳을 자주 찾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늉 씨는 "최근 주변에 세탁방이 많아졌지만 구형 장비나 낙후된 세탁기 때문에 옷감이 상한 적이 종종 있었다"며 "지난 7월부터 이곳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런 일이 전혀 없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LG전자 베트남법인은 지난 7월 상업용 세탁 솔루션 운영 파트너인 WW 베트남과 협력해 하노이 빈흥 지구에 스마트 세탁소 '비 런드리' 1호점을 열었다. 매장 직원은 "주로 퇴근 시간 이후인 오후 8시께 이용객이 많이 몰린다"며 "다른 일반 세탁방보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넉넉해 세탁부터 건조까지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면 끝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탁기와 건조기가 많이 배치돼 있어 이를 차지하려고 눈치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전했다.
매장에서 세탁기를 조작하던 20대 남성 하이 씨도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빨래를 2~3일씩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하는데, 대용량 세탁기와 건조기 덕분에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도시화·1인 가구 증가에 세탁방 확산
13일 현지 업계에 따르면 과거 마당이나 좁은 베란다에 빨래를 널어 말리던 동남아시아의 생활 풍경이 바뀌고 있다. 빠른 도시화와 1인 가구 증가, 고온다습한 기후가 맞물리면서 세탁방이 새로운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가정용(B2C) 세탁기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하는 가운데 LG전자와 삼성전자, 중국 하이얼 등 글로벌 가전업체들은 상업용 세탁기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동남아 각국의 상업용 세탁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6Wresearch은 베트남 첨단 상업용 세탁 기기 시장이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6.2%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기간 아시아 전체 평균 성장률인 3.6%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현지 업계에서는 호텔·리조트 등 호스피탈리티 인프라 확충과 병원·클리닉 등 의료시설 개발, 무인 세탁방을 중심으로 한 세탁 서비스 아웃소싱 확대를 주요 성장 요인으로 꼽는다. 가정에서 직접 세탁하는 수요 뿐 아니라 숙박·의료시설과 세탁 서비스 사업자가 대형 세탁 장비를 도입하는 기업 간 거래(B2B) 시장까지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베트남보다 상업용 세탁 시장이 일찍 형성된 태국에서는 현지 세탁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태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세탁 프랜차이즈 '런드리유'의 연간 수익은 10억3164만밧(약 441억원)으로 전년보다 25% 이상 증가했다.
방콕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퇴근길 직장인들이 수강신청을 하듯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세탁기를 선점하려고 경쟁할 정도"라며 "무인 세탁방이 직장인들의 일상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LG·中하이얼 각축…기기 넘어 솔루션 경쟁도
시장이 커지면서 가전업체들의 공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LG전자의 지난해 동남아시아 상업용 세탁가전 매출은 전년보다 약 60% 증가했다. 태국 매출은 2배 이상, 필리핀 매출은 1.5배 이상 늘었다.
삼성전자는 무인 자동화와 사물인터넷(IoT),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기반 솔루션을 앞세워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은 지난달 호찌민시 떤흥동에 24시간 무인 셀프 세탁방 '티티 런드리' 1호점을 열었다. 개방형 API 솔루션을 적용해 점주가 키오스크와 모바일 결제,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필리핀에서도 지난 3월 '스마트 워시 비즈니스 솔루션'을 선보였다. 홈 사물인터넷(IoT) 생태계인 스마트싱스를 기반으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모델을 구축하는 한편, 가전 유통사 CYA 인더스트리스와 현지 통신사 디토·글로브·스마트 등과 협력해 매장 설치부터 통신 인프라까지 지원하는 사업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하이얼도 상업용 세탁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이얼의 동남아시아 세탁 사업 매출은 중고가 제품군 확대에 힘입어 최근 연간 25% 이상 성장했다. 하이얼은 인도네시아의 PT 마스트라다 등 국가별 대형 유통망을 중심으로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세탁기 판매 넘어 구독·유지보수로
가전업체들이 상업용 세탁 시장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하드웨어 판매를 넘어 서비스에서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려는 전략이 있다. 업계에서는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이 제공하는 기능과 서비스를 수익화 하는 이른바 '서비사이징(Servicizing)'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정용 가전은 교체 주기가 7~10년으로 길고 글로벌 가격 경쟁도 치열해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반면 상업용 세탁기는 장시간 반복적으로 가동되는 만큼 소모품과 유지보수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프트웨어 이용료와 솔루션 구독료, 유지보수 매출을 확보하면 하드웨어 제조사가 안정적인 반복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자로 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인 세탁방은 가전업체들이 상업용 세탁 솔루션의 성능과 사업성을 입증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실제 매장 운영을 통해 장비의 효율성과 원격 관리 기능, 운영 편의성을 보여주면 대형 병원과 호텔, 리조트 등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B2B 영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
[email protected] 김준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