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붉은 X·겹겹의 옻칠·AI 모나리자…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보다

장인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부암동 갤러리 피앤알 한독 교류전
16일 개막…11월 30일까지 전시
회화·판화·조각·AI로 만나는 6인
존재와 시간, 현실의 경계에 질문

박광성의 '제우스의 초상'(2026). 종이에 먹과 오일 크레용으로 작업했다. 갤러리 P&R 제공
박광성의 '제우스의 초상'(2026). 종이에 먹과 오일 크레용으로 작업했다. 갤러리 P&R 제공

검은 화면을 가로지른 붉은 X가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콘크리트 위에는 스무 겹 넘는 옻칠이 쌓이고, 인공지능(AI)을 거친 모나리자는 낯선 색채와 형상으로 바뀐다. 한국과 독일 작가들이 익숙한 세계를 다시 보도록 이끈다.

15일 화랑업계에 따르면 갤러리 P&R(Poetry & Revolution)은 16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전시장에서 '시와 혁명, 그리고 그 너머'라는 주제로 제1회 기획전을 연다. 독일 에센의 갤러리 클로즈(Galerie Klose)와 공동기획한 첫 국제교류전으로, 박광성·한정엽·이태현과 마르쿠스 뤼퍼츠·막스 울리히·요르크 W. 쉬르머 등 6명이 참여한다.

전시 속 혁명은 익숙한 형상을 달리 보고 작은 감각의 변화를 발견하는 일이다. 피앤알은 '시와 혁명'을 매년 이어가는 대표 기획전으로 정립할 계획이다. 김현선 예술감독은 "시는 가장 조용한 혁명이며, 혁명은 세상에 쓰는 가장 큰 시라고 생각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X와 선으로 다시 보는 존재
박광성의 '소유와 존재(To Have and To Be)'는 실존적 여정에 대한 보다 인간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제우스의 초상(Portrait of Zeus)'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화면에 겹쳐 놓은 X에는 기호학적 의미와 작가의 철학적 개념이 그가 표현하는 색채처럼 담백하게 드러난다. 박광성은 제우스의 상징성에 영원성의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으로 확장했다. X의 교차점에 초대된 세상은 지금 우리의 초상을 정체성과 자유라는 관점에서 성찰하게 한다.

드레스덴 출신 막스 울리히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놓인 강렬한 회화 언어를 구사한다. 먹과 수채, 오일파스텔로 그린 종이 작품 'Frauenkopf'와 'Landschaft', 'Les Vignes III' 등을 선보인다. 그에게 선은 절대적인 표현 방식이다. 선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리듬은 격렬한 제스처에서 생겨나며, 윤곽을 거부함으로써 구상의 경계를 허문다. 울리히는 인물과 풍경의 겉모습을 내면의 소리로 대신한다. 그렇게 표현된 인물과 풍경은 하나하나의 선에서 에너지 덩어리로 뭉쳐져 인지된 기억으로 남는다.

마르쿠스 뤼퍼츠의 'Ohne Titel (Michael Engel)'(2024). 수제 종이에 석판화를 찍고 과슈로 덧칠했다. 갤러리 P&R 제공
마르쿠스 뤼퍼츠의 'Ohne Titel (Michael Engel)'(2024). 수제 종이에 석판화를 찍고 과슈로 덧칠했다. 갤러리 P&R 제공

■신화와 AI의 상상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 마르쿠스 뤼퍼츠는 신화와 역사적 형상을 회화·판화·조각의 언어로 바꿔왔다. 형태를 단순화하고 특정 부분을 강조하며 구상과 추상을 결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수제 종이에 석판화를 찍고 과슈로 덧칠한 'Ohne Titel (Michael Engel)'을 선보인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속 남성 인물을 재해석한 연작이다. 'Europa'는 채색 청동 조각과 목판화로, 'Stillleben III'는 석판화로 소개한다.

한정엽은 디지털 이미지가 인간에게 어떻게 경험되는지 묻는다. 자체 개발한 창작 시스템 'Creative AI Engine'으로 색채·형태·패턴의 관계를 탐색하고, AI 이미지와 인간의 지각이 만나는 지점을 찾는다.

작가는 예상하지 못한 형상이 생기는 AI의 '환각'과 불규칙한 무늬에서 익숙한 형상을 발견하는 인간의 '파레이돌리아'를 연결한다. 가상 이미지도 지각과 감정을 거치면 새로운 현실처럼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초 경험적 현실'이라 부른다.

영상 'Mona Lisa of Hallucination'과 디지털 프린트 'Hyper Mona Lisa' 연작은 익숙한 미술사 속 얼굴을 변환한다. 'Virtual Blossom_PG'에서는 가상 세계의 꽃을, 디지털 프린트와 회화를 결합한 'Hallucination' 연작에서는 유기적 형태와 반복되는 패턴을 펼친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갤러리 P&R에 전시된 마르쿠스 뤼퍼츠의 'Ohne Titel (Michael Engel)' 작품들. 왼쪽부터 2024년작, 2025년작이다. 갤러리 P&R 제공
서울 종로구 부암동 갤러리 P&R에 전시된 마르쿠스 뤼퍼츠의 'Ohne Titel (Michael Engel)' 작품들. 왼쪽부터 2024년작, 2025년작이다. 갤러리 P&R 제공

■낯선 변주와 옻칠의 시간
뤼퍼츠에게 수학한 요르크 W. 쉬르머는 인체의 비례와 시점을 뒤튼다. 그의 조각에서 두드러지는 커다란 발은 '개미의 눈높이'라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낮은 곳에서 몸을 올려다보는 시선을 조형에 옮겨 낯선 비례를 만들어낸다.

쉬르머는 주조한 청동에 흰색 밑칠을 하고 색을 입힌 뒤 연마와 광택 작업을 거쳐 회화와 조각을 결합한다. 채색 청동 조각 'Akrobat mittel'을 비롯해 먹 드로잉과 회화도 전시한다. 이태현의 2021년작 '무제(Untitled)'는 콘크리트에 옻을 입힌 작품이다. 옻을 바르고 굳힌 뒤 연마하는 과정을 반복해 스무 겹 넘게 쌓았다. 멀리서는 검게 보이지만 빛을 받으면 옻의 붉은 깊이가 드러난다. 도자 재료로 만든 2020년작 '무제'도 출품한다.
김현선 예술감독은 "한국과 독일의 여섯 작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익숙한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존재와 지각, 시간과 형상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개막 행사는 16일 오후 3시에 열린다. 관람 시간은 화~토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일·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email protected]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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