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속도전의 역설…자치구 권한 확대 추진에 사업 지연 우려
종로구, 정비사업 자문단 조례 입법예고 자문 범위·처리 기한 제한 없어 비공개 자문 결과 행정 반영 논란 추가 심의 절차에 사업 지연 우려
[파이낸셜뉴스]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겠다며 서울 자치구들이 권한 확대에 나선 가운데, 종로구의 정비사업 자문단 조례를 둘러싸고 행정 개입에 따른 사업 지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권한 확대가 오히려 추가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종로구에 따르면 구는 지난 8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비사업 자문단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 기간은 오는 28일까지다.
쟁점은 자문 결과의 행정 반영과 비공개 원칙을 함께 규정한 제6조다. 조례안 제6조 제5항은 자문단 회의 및 회의 결과를 비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또한 제6항은 자문 결과를 소관 부서에 통보하고, 해당 부서가 법령에 저촉되는 등의 사유가 없는 한 자문 결과를 최대한 반영하도록 했다. 자문 결과가 주민이나 사업 주체에게 공개되지 않더라도 정비사업 관련 행정 판단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자문 대상도 폭넓게 규정됐다. 제2조 제4호는 '그 밖에 정비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구청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을 자문 대상으로 포함했다. 구청장의 판단에 따라 자문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자문 횟수와 처리 기한에 대한 별도의 제한 규정도 없다. 제6조 제1항은 구청장이나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회의를 소집할 수 있도록 했으며, 사안에 따라 분과자문단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자문이 반복되더라도 이를 제한하거나 일정 기간 내 마무리하도록 하는 기준이 조례안에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앞서 종로구는 지난 9월 9일 전문가 18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러나 위원 명단과 첫 회의 회의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구는 개인정보 보호와 공정한 의사결정을 이유로 들었다. 조례 제정 전부터 자문단을 운영하면서도 위원 구성과 회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최근 서울 자치구들은 정비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며 행정 권한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지난 14일 서울시가 행사하는 정비구역 지정 권한 가운데 3만㎡ 이하 구역의 지정권을 자치구에 이양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 건의안을 가결했다. 서울시와 자치구 간 협의·심의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여 정비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자치구의 권한이 커질수록 행정절차에 대한 관리와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안을 폭넓게 자문 대상으로 정하고, 그 결과를 담당 부서가 최대한 반영하도록 한 만큼 자문단이 구청의 정책적 판단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자문이 반복되거나 기존 심의와 중복될 경우 사업 일정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구청장협의회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기 강남구청장은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와 시민 의견을 수렴해 충분히 숙고하자고 의견을 냈다"면서도 "강남·서초·송파·강동 등은 부동의 의견을 제출했지만 다수가 찬성하면서 의결됐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자치구의 권한을 확대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자체의 자문 범위와 행정 개입이 확대되면 오히려 사업 추진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권한 이양에 앞서 기존 심의와의 중복을 막고 행정절차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최아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