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동물이 자꾸 보여요" 4개월 환각 시달린 50대女…뇌 열어보니 '경악'
4개월간 두통·환각 시달리다 언어장애까지…단순 정신질환 아니었다 뇌 MRI 곳곳에 퍼진 알주머니…정체는 중추신경계 뚫고 온 '신경낭미충증' "덜 익힌 고기 탓 아냐"…오염된 물·음식으로 누구나 감염될 수 있어 '충격'
[파이낸셜뉴스] 4개월간 정체 모를 두통과 환각에 시달리던 52세 여성. 그의 뇌를 열어보니 충격적인 불청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신질환인 줄만 알았던 증상의 범인은 다름 아닌 뇌 속까지 파고든 '돼지촌충 유충'이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는 필리핀에 거주하는 50대 여성의 기막힌 희귀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이 여성은 4개월 내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동물이 나타나는 환시를 겪었다. 시간이 갈수록 증상은 악화됐다. 말을 하는 듯해도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고, 타인의 말을 이해하거나 간단한 지시조차 따르지 못하는 심각한 인지 및 언어 장애가 동반됐다.
처음엔 정신과적 질환을 의심했던 의료진은 심각한 언어 장애에 주목해 즉각 뇌 정밀검사(MRI)를 실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뇌 곳곳에 기생충 유충이 들어 있는 다수의 낭성 병변(주머니)이 발견된 것이다. 낭종 안에는 돼지촌충 유충의 머리에 해당하는 '두절(scolex)'이 선명했다.
최종 진단명은 기생충 감염 질환인 '신경낭미충증(Neurocysticercosis)'. 돼지촌충 알이 몸에 들어와 부화한 뒤, 혈류를 타고 뇌나 척수 등 중추신경계까지 뚫고 들어가 둥지를 튼 것이다. 기생충이 만든 뇌 병변이 뇌파에 비정상적인 전기 신호(발작)를 유발했고, 이것이 기괴한 환각을 만들어낸 원인이었다. 단순한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뇌가 망가지며 보내는 물리적 경고음이었던 셈이다.
흔히 '돼지촌충'이라는 이름 때문에 덜 익힌 돼지고기를 먹어서 뇌에 기생충이 생겼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감염 경로는 다르다. 신경낭미충증은 감염자의 대변을 통해 배출된 기생충 '알'이 위생 관리가 불량한 물이나 음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갈 때 발생한다. 즉, 돼지고기를 전혀 먹지 않아도 감염될 수 있다는 뜻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성은 즉각적인 항기생충 약물과 발작 억제 치료를 병행한 끝에 상태가 호전됐다. 치료 한 달 만에 두통과 환각은 완전히 사라졌고, 뇌 영상 검사에서도 낭종의 크기가 확연히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원인 모를 두통이 장기간 이어지며 환각, 발작, 언어 장애 등이 동반된다면 신속히 뇌 신경학적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4개월간 이 여성을 괴롭힌 환각의 실체는 상상이 아닌, 뇌를 갉아먹던 기생충의 소름 끼치는 장난이었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