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18번 언급한 개인 채무… '빚 탕감' 정책 드라이브 [조은효의 스페셜리스트]
작년 신용불량자 100만·폐업 100만건
서민경제 적신호에 국책기관 역할론 커져
신복위, 개인 채무조정·불법사금융상담
지부 한 곳에서만 월평균 2000건 처리
정부, 지난해 역대 최대규모 신용 사면
내년 서민금융 지원 예산은 세배 늘려
"금리인상기 개인빚 적극 감면책 필요"
"버티면 정부가 해결" 학습효과 우려도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인 것 같다.", "연체 채권을 악착같이 받는 게 정의는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들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취임 후 약 1년 4개월간 개인의 금융부채 문제와 관련 날선 발언들을 쏟아냈다. 취임 20일 만에 이뤄진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113만명의 장기 연체 채권 소각 계획(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 채무, '새도약기금' 그 해 10월 출범)을 밝혔다. 그러면서 "도덕적 해이라고? 빚탕감 기대하고 신용불량자로 7년 살 수 있나. 정부가 정리해주는 게 맞다"라고 하거나, 신한카드의 민간 배드뱅크인 상록수 연체 추심에 대해선 "아직도 원시적 약탈금융이 버젓이 살아남아 서민들 목줄을 죄고 있는 줄 몰랐다"고 직격했다.
18일 본지 취재 결과 이 대통령이 취임 후 개인 부채 감면, 불법사금융 등 일련의 서민금융·포용적 금융과 관련해 국무회의 및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X계정(옛 트위터)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총 18회로 집계됐다.
취임 16개월 간 최소 한 달에 한 번 꼴로는 이 문제에 대해 보고와 지시가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의 '확실한 관심사업'이자, 이재명 정부의 대표정책 중 하나가 서민층에 대한 금융 안전망 확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된 가운데 이미 지난해 신용불량자 100만명 육박, 폐업 100만건 돌파 등 서민경제 지표는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 기획예산처를 비롯해 서민금융의 최일선에 선 신용회복위원회·서민금융진흥원, 한국자산관리공사, 나아가 5대 시중은행과 국책금융기관 등의 역할론도 커지는 분위기다. 동시에 일률적으로 국가가 나서서 개인 빚을 탕감해주는 게 맞지 않다는 논란도 함께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14일과 15일 신용회복위원회 서울 중앙본부와 관악지부를 찾았다.
채무 상담은 크게 두 축으로 이뤄졌다. △연체 90일 이상(신용불량자)을 대상으로 한 '개인워크아웃' △연체 31~89일 '사전채무조정' △연체우려가 있거나 30일 이하인 '신속채무조정제도'라는 3개 채무조정 상담과 불법사금융상담이다.
지난 14일 신용회복위 서울 중앙본부. 경기도 의정부에서 온 A씨(남·37, 직장인)는 "코로나19 확산기였던 2020년 개인적인 일로 합의금 마련이 필요해 1000만원을 대출받았는데, 이후에 급여도 줄고, 회사도 그만두는 등 계속 안좋은 일이 생기면서 빚이 4000만원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개인워크아웃제도로 빚을 감면 받고, 11개월을 분납해서 갚던 중 다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채무상환을 중단했다가 다시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한 경우다. 현재 미혼인 A씨의 월 소득은 약 200만원 수준이고, 월세로 40만원을 내고 있다. A씨는 4000만원 중 대략 60% 안팎을 감면받아 향후 월 15만원씩 갚아나갈 예정이다. 신용회복위 서울중앙본부 관계자는 "다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직접 워크아웃을 하러 다시 찾아온 케이스"라고 말했다.
2030대 젊은층과 6070대 고령층의 상담이 증가하는 추세다.때로는 빚 상환을 포기하고 주저앉는 경우도 있다. 1700만원의 금융 채무를 이미 조정받아 400만원 정도만 남은 B씨(75)는 이날 잠정적으로 상환 중단 의사를 내비쳤다. B씨는 "이대로 안갚고 죽으면 자식들에게 상속되느냐"고 물었다. B씨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다.
지난 15일 찾은 서울 신용회복위 관악지부에선 이런 내용의 불법 사금융 신고가 접수돼 상담이 진행됐다. 각종 욕설과 협박에 못견디다 찾은 현역 군인 등의 사연이 접수됐다.
2~3주일이 넘으면 또 다른 사채업자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다. 불법사금융업체들끼리 채권을 주고 받는 경우들이다. 신용담보로 지인 전화번호, 얼굴 사진 등 개인 신상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우에 따라선 전신사진을 요구받기도 한다. 김경숙 신용회복위 관악지부장은 "현장에선 6000%가 넘는 불법 사금융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며 "대개는 텔레그램을 통해 김실장, 박실장, 이대리 등 불법사금융업체 직원들과 비대면으로 대출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상담사 7명이 하루 110건의 개인워크아웃 등의 상담과 불법사금융 관련 상담을 진행한다. 불법사금융상담은 건당 길게는 3~4시간 까지 소요되며, 일련의 절차를 거쳐 금융감독원 신고로 진행된다.
정부는 지난해 292만8000명에 대한 신용사면을 실시했다. 5000만원 이하 7년 이상의 연체 기록을 지워 준 것이다. 역대 최대규모다. 지난해 10월에는 총 8400억원 규모로 113만명을 대상으로 새도약기금을 출범시켰다.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이라는 이 대통령의 직격 이후, 불법사금융예방대출 금리도 15.9%에서 절반 이하로 낮춰졌다. 이 대통령이 적극적 부채 감면 기조를 앞세우면서 기획예산처는 서민금융 지원 예산을 올해 5000억원에서 내년도 1조6000억원으로 세 배 이상 확대했다.
금리 인상기, 취약계층이 신용불량자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 빚에 대한 적극적 감면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역대 정권마다 관행적으로 개인 빚을 탕감해주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인사는 "'버티면 정부가 해결해 준다'는 식의 잘못된 메시지가 각인될 수 있다"며 "해외 선진국처럼 민간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부채를 줄이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규복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획일적으로 감면정책을 적용하는 이상 도덕적 해이가 없다고 말할 순 없기에, 정책적 판단을 기반으로 서민금융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정책목표와 체계에 대해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조은효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