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된 환자 간에 '낙서'한 의사..."긴장 풀려고" 황당 변명 뒤 벌어진 일 [헬스톡]
[파이낸셜뉴스] 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에서 집도의가 환자의 간 표면에 자신의 이니셜을 새긴 장면이 방영되며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극적 연출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실제로 2013년 영국에서 발생했던 실화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당시 간·담도·췌장 외과 전문의 사이먼 브램홀은 간 이식 수술 도중 환자 2명의 간 표면에 자신의 이니셜 'SB'를 약 4cm 크기로 남겨 의사 면허가 영구 박탈됐다.
드라마를 계기로 주목받은 '장기 낙서'의 의학적 배경과 실제 신체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의료 윤리적 문제를 짚어봤다.
실제 사건에서 환자의 장기에 글씨를 남기는 데 쓰인 기구는 외과 수술에서 널리 활용되는 '아르곤 빔 코아귤레이터(ABC)'다. 이는 불활성 기체인 아르곤 가스를 분사하는 동시에 고주파 전류를 통과시켜 플라즈마 상태의 불꽃(빔)을 만들어내는 장비다. 기구가 조직에 직접 닿지 않고도 표면을 얕고 균일하게 태워 지혈할 수 있어, 간이나 비장처럼 혈류량이 많고 표면적이 넓은 장기의 출혈을 잡을 때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아르곤 빔이 닿은 부위의 단백질은 순간적으로 열변성을 일으키며 응고 괴사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옅은 갈색이나 회백색의 자국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위가 장기 기능에 직접적인 손상을 줄 수 있을까. 아르곤 빔은 본래 주변 정상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직 침투 깊이를 1~3mm 안팎으로 얕게 설계한 기기다. 따라서 간 표면에 얕은 응고 괴사를 남긴 정도라면 대사나 해독과 같은 간세포 고유의 기능을 크게 떨어뜨릴 가능성은 낮다. 특히 간은 재생 능력이 뛰어난 장기여서 표면의 경미한 손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섬유화되거나 정상 세포의 증식으로 점차 옅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안전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수술 부위가 아닌 정상 표면에 불필요한 열을 가할 경우 미세 담관 손상이나 지연성 출혈, 장기 유착 등 예측하기 힘든 합병증 위험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 사건에서도 이식된 간의 기능 저하가 이니셜 표식 때문이라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환자에게 잠재적 위험을 초래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웠다.
영국 의료개업심판원(MPTS)과 사법부가 브램홀에게 폭행죄 유죄 판결과 면허 박탈 처분을 내린 핵심은 '신체 손상의 유무'가 아닌 '환자의 존엄성과 동의권 침해'였다.
환자는 마취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를 전적으로 의료진에게 위임한다. 의학적 목적이나 환자의 사전 동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의료기기를 사적인 표식이나 유희를 위해 사용한 행위는 치료의 범주를 명백히 벗어난 신체 침해(폭행)에 해당한다.
실제로 해당 피해 환자 중 한 명은 장기 자체의 손상과 무관하게 자신이 모르는 사이 신체가 훼손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고됐다.
[email protected] 문영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