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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빙에 갇혀 해 뜨기만 기다렸다"… 북극항로 첫 시범운항 50일의 기록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해수부, 승선자 간담회… 선사 "5000~6000TEU급도 가능, 연 1회 운항도 정기 스케줄"

"유빙에 갇혀 해 뜨기만 기다렸다"… 북극항로 첫 시범운항 50일의 기록

[파이낸셜뉴스]"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나라 첫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50일간 승선한 박지정 팬스타 1등항해사(부장)는 유빙에 갇혔던 밤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해양수산부는 22일 북극항로 시범운항 참여자 기자간담회를 열고 준비 과정과 운항 현장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간담회에는 오행록 해수부 북극항로추진본부 부본부장과 박 부장, 김정달 팬스타그룹 해운기획사업부 이사, 손무성 한국선급 책임검사원, 권영태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가 참석했다.

2758TEU급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는 지난 8월 22일 부산을 출항해 북극해를 지나 영국 펠릭스토우, 네덜란드 로테르담, 폴란드 그단스크에 기항한 뒤 다시 북극해를 거쳐 이달 11일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해수부는 이번 운항으로 쇄빙선 없이 북극항로를 통항할 수 있음을 실증하고, 기존 항로보다 운항거리는 약 35%, 운항기간은 약 10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고비는 8월 31일 밤부터 9월 1일 새벽 사이였다. 많은 유빙이 떠내려와 길을 막은 상황에서 날이 저물자 레이더에만 의존해야 했다. 박 부장은 "유빙은 겉에 보이는 것보다 물 밑에 있는 게 더 크다"며 "선장님, 기관장님과 상의해 좀 더 두고 보자고 결정했고, 새벽 2시쯤 해가 뜨자 보이지 않던 바닷길이 열려 천천히 헤쳐 나갔다"고 말했다. 이후 빌키츠키 해협에서는 부딪히면 큰일 날 만큼 큰 유빙을 만나 북위 80도까지 우회하는 방안까지 고민하다 유빙 밀집도가 낮은 구간으로 돌아갔다.

극지의 추위는 배도 괴롭혔다. 아크로호는 극지 운항 규정에 따라 중질유 대신 경유 계열인 마린가스오일을 썼지만, 낮은 온도에 윤활유가 굳으면서 엔진 순환계통 곳곳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기관부는 배관을 따로 보온하고 히터로 실내 온도를 높이며 버텼다. 돌아오는 길에는 10도 이상 기우는 롤링이 오래 이어졌고, 비가 눈으로 바뀌며 외부 갑판이 얼어붙어 갑판 작업을 통제하기도 했다. 북극해를 빠져나온 뒤에는 북상하는 태풍을 피해 쿠릴열도 안쪽으로 급히 우회했다.

승선자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의외로 시차였다. 고위도에서는 경도 사이 거리가 짧아 시간대가 순식간에 바뀌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돌아올 때는 매일 1시간씩 시계를 당겼는데도 오후 3시에 해가 지고 새벽 2시에 해가 떠 시차를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고 전했다. 통신은 저궤도위성과 스타링크까지 2~3중으로 대비해 일시적 단절에도 비상연락이 끊기지 않았고, 고위도에서 나침반·위성항법장치(GPS) 오차가 생겼지만 오가는 배가 적어 위험한 순간은 많지 않았다고 했다.

선사는 정기 운항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김 이사는 "5000~6000TEU급 선박도 다닐 수 있다고 본다"며 "매주가 아니더라도 매년 8월 20일 만에 가는 배가 있다면 그것도 정기 스케줄"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극항로를 수에즈운하 항로의 대체재가 아니라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등 대륙횡단철도와 기존 해상 항로 사이의 새로운 모델로 보고, 정시성만 인정받으면 수에즈 항로보다 높은 운임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운송기간이 줄면 화주는 재고 부담을 덜 수 있어서다. 이번 운항의 적하보험료는 일반 항로보다 10~20% 정도 더 붙어, 화물가액 1억원 기준 15만원 안팎이었다.

다만 이번 운항의 채산성은 아직 집계 중이다. 김 이사는 "마린가스오일 가격이 이란 전쟁 전 t당 800~900달러에서 지금은 1300달러 이상으로 올랐다"며 "빨리 간다고 운임을 더 받지도 않아 채산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한국선급 손 책임검사원은 "투입 선박은 내빙선 중 가장 낮은 등급으로 사실상 일반 선박"이라고 설명했다.
해수부는 다음 달 경제성 분석 결과를 별도로 발표하고, 내년에는 선종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운항 선사는 공모로 정한다. 박 부장은 "극지 경험을 가진 선원은 구하기 어렵다"며 "우리 선원들이 '5대양 6대주에 북극까지 가봤다'고 말할 수 있도록 운항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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