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엔 광고만 덩그러니… 시대를 비춘 흔적들[Weekend 문화]
아르코미술관 18년 만에 소장품전
작가 60인의 1970~2000년대 작품 70점
현실 향한 민중미술과 독창적 채색화까지
성능경 '신문' 기사 오려내 언론검열 표현
회화·조각 경계 '어머니 1 : 열아홉 살' 눈길
신문 지면에 빈자리가 뚫려 있다. 기사는 잘려나가고 사진과 광고만 남았다. 정보를 전해야 할 종이 위의 빈칸은 당시의 언론 검열을 돌아보게 한다. 신문을 오리는 행위가 미술이 되고, 그 결과물이 다시 시대를 증언한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개막한 특별기획전 '소장품, 시대의 장면들'은 한국 현대미술이 표현의 경계를 넓혀온 시간을 펼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운영하는 미술관의 소장품 423점 가운데 작가 60명의 작품 70점을 골랐다. 2008년 이후 18년 만에 여는 소장품전이다.
■한지의 물성, 신문의 빈자리
전시는 작품 제작 시기를 따라 1970~2000년대를 10년 단위로 나눴다. 단색화와 실험미술, 민중미술, 신세대 미술의 흐름을 짚되, 한 시대 안에서 서로 다른 작업이 함께 전개됐음을 보여준다.
빈자리가 뚫린 신문은 성능경의 '신문: 1974년 6월 1일 이후'(1974)다. 작가는 1974년 '제3회 ST전'에서 신문을 벽면에 붙이고 면도날로 기사를 오려냈다. 잘라낸 기사는 아크릴 통에 넣고, 광고와 사진만 남은 신문을 하루 동안 내걸었다. 이튿날 새 신문으로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같은 1970년대 공간에 놓인 권영우의 '작품 78-76'(1978)은 패널 위에 한지를 올린 작업이다. 권영우는 종이 자체의 물성을 탐색하고, 성능경은 신문이 정보를 전하는 방식에 개입했다. 같은 종이에서도 실험의 방향은 갈라진다. 1980년대에는 민정기의 '풍요의 거리'(1981)와 박생광의 '이조'(1980) 등이 이어진다. 현실을 향한 민중미술의 시선, 한국화의 표현을 바꾼 채색화의 움직임이 한 시기의 풍경을 이룬다. 미술관에서 1984년 열린 박생광 개인전은 그의 독창적인 채색화를 알린 계기이기도 했다.
■몸의 흔적에서 기계·영상까지
1990년대 공간에서는 이건용의 '신체드로잉 76-1-1999'(1999)가 눈길을 끈다. 나무 합판 위의 매직잉크 선은 신체의 움직임이 남긴 흔적이다. '신체드로잉 76-1'은 화면 뒤에서 앞으로 팔을 내밀어 닿는 데까지 선을 그어 완성하는 작업이다. 몸의 위치와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그림을 만드는 기준이 된다. 1970년대 시작한 실험이 이후의 작업으로 이어진 셈이다. 윤석남의 '어머니 1: 열아홉 살'(1993)은 나무에 아크릴릭으로 인물을 그린 작품이다. 두께와 부피를 지닌 인물이 전시장 안에 서면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오간다. 신학철의 '한국현대사 802'(1994)도 이 시기의 작품으로 만난다.
2000년대에 이르면 김을의 '드로잉하는 기계'(2006)가 기다린다. 목재와 혼합재료로 만든 상자 형태의 입체 작업이다. 같은 작가의 회화 '지적도 등본'(2002)도 함께 놓여 있다. 캔버스에 오일과 아크릴로 그린 그림과 기계를 닮은 사물을 오가며 한 작가가 택한 재료와 형식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함양아의 단채널 영상 '제주도의 비너스'(2004), 배종헌의 '콘크리트 농부를 위해 고안된 농기구'(2006) 등도 표현의 확장을 보여준다. 회화와 함께 영상, 드로잉, 농기구 오브제가 전시를 채운다.
전시를 기획한 차승주 큐레이터는 "이번에 선보이는 소장품이 익숙한 대표작은 아닐 수 있다"며 "작가들의 다양한 경향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소장품으로 읽는 미술관의 역사
1974년 미술회관으로 출발한 아르코미술관은 저렴한 대관료로 청년 작가와 미술단체에 발표 공간을 제공했다. 전체 소장품의 약 65%인 275점이 개관 이후 1980년대까지 수집됐다. 아르코와 그 전신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대한민국미술대전을 주최·후원하던 1982~2006년 기증받은 수상작은 전체의 약 25%를 차지한다. 2000년대 자체 기획전이 확대되면서 전시와 연계한 작품 구입이 활발해졌고, 소장품도 영상과 설치 등으로 넓어졌다.
이번 전시에는 이기봉의 '날 것-흰 수건이 있는 자리', 강애란의 '생-II' 등 미술대전 수상작 20여점이 포함됐다. 박생광의 '이조', 김구림의 '음양 99-S, 207' 등 그동안 전시 기회를 얻지 못했던 미발표작 10여점도 공개한다.
[email protected] 장인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