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이 약이 된다고? 성장호르몬을 깨우는 다섯 가지 습관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나이가 들어 성장호르몬이 줄어드는 것을 넋 놓고 바라만 보라는 뜻은 아니다. 인위적인 성장호르몬 주입은 좋은 효과를 보장할 수 없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장호르몬 분비를 높이는 것은 확실한 효과가 있다. 게다가 부작용 걱정도 거의 없다. 오히려 성장호르몬뿐만 아니라 다른 호르몬의 분비도 촉진하고 규칙적인 생활과 균형 잡힌 식생활로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성장호르몬 분비를 높이는 방법은 1장 '성장' 편에서도 소개했지만 주로 성장기 아동의 관점에서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노년기 성인의 관점에서 도움이 되는 방법을 소개한다.
성장호르몬은 잠자는 동안 가장 많이 분비된다. 특히 꿈을 꾸지 않는 깊은 비렘수면 상태일 때 성장호르몬 분비가 치솟는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면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면서 잠을 깊게 오래 자지 못하게 된다. 여러 질환이 생기면서 신체적 불편함이나 통증, 복용하는 약물의 영향으로 깊은 잠에 빠지기가 더욱 어렵다. 이렇게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것이 성장호르몬 감소의 큰 원인일 수 있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태양의 일주기에 맞춰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는 **서캐디언 리듬(circadian rhythm)**을 회복해야 한다. 일찍 일어나서 햇볕을 보고 운동과 걷기 등의 활동을 열심히 하고 밤 10~12시 사이에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잠자기 직전까지 환한 조명 아래서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는 것은 멜라토닌 분비를 감소시킨다. 특히 스마트폰은 자외선과 가까운 블루라이트가 많이 나와서 서캐디언 리듬을 망치게 된다. 저녁 8시 이후에는 되도록 스마트폰을 보지 말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블루라이트 필터를 적용하거나 화면 밝기를 줄이는 것이 좋겠다.
잠들기가 어렵다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10~20분 정도 반신욕, 족욕, 마사지 등으로 몸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반신욕, 마사지를 마친 후에는 조명을 낮추고 느긋하게 쉬면서 곧바로 잠을 청해야 한다. 만약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면장애가 심하다면 의사와 상담하여 멜라토닌을 처방받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성장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면 지방분해가 활발히 일어나 체지방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준다. 젊은 시절에 충분히 먹으면서도 날씬한 복부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성장호르몬의 이런 효과 덕분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성장호르몬이 줄어들면서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게 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면 된다. 즉, 성장호르몬이 줄어서 살이 찌는 것이니 살을 빼서 성장호르몬을 늘리자!
성장호르몬은 지방의 양에 매우 민감하다. 직접 지방 분해를 촉진하기도 하지만, 지방이 늘면 분비가 줄어들기도 한다. 예컨대, 아동이 비만이 되면 성장호르몬 분비가 줄어들어 키가 잘 자라지 않고 성조숙증 위험도 높아진다. 비만으로 인한 다량의 인슐린 분비, 높은 렙틴(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식욕억제 호르몬), 낮은 아디포넥틴(지방세포에서 분비되며 포도당과 지방산 대사에 관여하는 호르몬), 낮은 그렐린(ghrelin, 위에서 배고플 때 분비되는 식욕 촉진 호르몬) 등 여러 호르몬이 관여하여 성장호르몬 분비를 저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칼로리를 제한하여 살을 빼게 하면 성장호르몬 수치가 올라간다. 실제로 아동을 대상으로 24시간 칼로리를 제한하는 실험을 했을 때 정상 체중과 비만 아동 모두에서 성장호르몬 수치가 올라가는 것이 확인되었다. 특히 수면 중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치솟았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칼로리 제한만으로는 성장호르몬이 크게 높아지지 않았으나 칼로리 제한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체중관리를 한 경우는 성장호르몬 수치가 40%나 높아졌다.
살을 빼려면 하루 먹는 양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 걸까? 젊은 시절에는 활동량에 따라 여성은 하루 2,000~2,400kcal, 남성은 2,400~3,000kcal를 섭취해야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여성은 1,600~2,000kcal면 족하고 남성은 2,000~2,600kcal 정도면 충분하다. 젊은 시절 먹던 양보다 20% 정도를 덜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은 원래의 체중을 유지할 때의 이야기고 살을 빼려면 이보다도 덜 먹어야 한다. 보통 매일 500kcal를 덜 먹으면 일주일에 0.5kg 정도를 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오렌지주스나 시럽이 첨가된 달달한 음료, 생크림을 올린 커피 등 당분이 많은 음료를 끊는 것이다. 중간중간 먹는 과자와 빵, 감자칩, 떡 등의 간식도 삼가야 한다. 한국인의 경우 무엇보다 술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알코올 자체가 칼로리가 높은 데다 한국인이 즐기는 대부분의 안주가 기름기와 염분이 많은 음식이라서 칼로리도 많고 과식을 하기 쉽다. 비만은 성장호르몬 저하뿐만 아니라 모든 병의 근원이다. 소식으로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성장호르몬은 몸이 약간의 스트레스 상태일 때 분비가 촉진된다.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하는 것도 그런 스트레스 중의 하나다. 단, 여러 연구에 따르면 운동을 통한 성장호르몬 분비 자극은 젊은 나이에는 효과가 크지만 노년에는 효과가 4~7배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¹⁴ 아무래도 노인들은 강도 높은 근력 운동을 하기 어렵고 이미 성장호르몬 분비가 많이 줄어든 상태라 운동으로도 분비량을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다만 운동은 체중을 관리하고 근육을 유지해 준다는 점에서 성장호르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살이 찌기 쉬운 복부와 옆구리, 근육을 잃어버리기 쉬운 등과 허리를 강화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복부, 옆구리, 등, 허리 등 몸의 중심이 되는 부위를 **'코어(core)'**라고 하는데 코어를 강화하는 데에는 **플랭크(plank)**가 가장 좋은 운동이다. 플랭크는 필라테스(Pilates) 등에서 널리 쓰이는 운동으로 엎드린 상태에서 양팔 팔꿈치와 발가락으로 몸을 들어 올려 지탱하는 운동이다. 몸이 처지거나 바닥에 닿지 않고 어깨부터 발목까지 일직선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으로 허리와 복부, 등 부위에 자연스럽게 힘이 몰려 코어를 강화하게 된다. 이 운동은 코어 근육과 균형감각을 키우면서 다칠 위험이 거의 없고 몸에 미치는 충격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노인에게 적극 권장된다.
하루 30분 이상 러닝머신이나 자전거로 유산소 운동을 하고 또 30분 이상 근육운동과 스트레칭을 하고, 여기에 플랭크를 추가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플랭크는 처음에는 10~20초부터 시작해서 점차 1분, 2분으로 늘려간다. 너무 오래 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1~2분 정도를 하루에 여러 번 하는 것이 몸에 무리가 없고 효과도 더 좋다.
성장호르몬은 수면 중, 운동 중,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불쑥 분비되는데 배가 고플 때도 많이 분비된다. 배가 고프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간헐적 단식이다. 보통 단식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 상태를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간헐적 단식은 매일 식사와 단식을 일정 비율로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하루 24시간 중 16시간을 단식하고 나머지 8시간 동안 두 끼를 먹는 16:8 단식이 있고, 23시간을 단식하고 1시간 동안 한 끼를 먹는 23:1 단식이 있다.
간헐적 단식이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단식으로 배를 비우면 혈당이 낮아지는데 이때 성장호르몬 분비가 상승한다. 또 배가 고프면 위에서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인 그렐린이 분비되고 이 호르몬이 시상하부에 포지티브 되먹임되어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위를 비우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데 이것은 그렐린이 위와 장을 수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꼬르륵 소리가 들리면 곧 성장호르몬 분비가 늘어난다는 신호이므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곧바로 뭔가를 먹지 말고 한두 시간 꼬르륵 소리를 더 즐긴 후 식사를 하면 성장호르몬 분비에 더욱 도움이 된다.
본격적으로 간헐적 단식을 하고자 한다면 노년층에는 16:8 단식이 가장 권장된다. 기력을 충분히 유지하면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단, 폭식을 하지 않고 평소에 먹던 대로 적당한 양을 먹어야 하며 살을 빼기 위해서는 섭취량을 더 줄여야 한다.
간헐적 단식은 공복기를 늘려 혈당이 적당히 낮은 상태가 되면서 성장호르몬도 더 분비되고 인슐린 저항성도 좋아져서 당뇨 환자에게도 권장된다. 하지만 인슐린 주사로 당뇨 관리를 하거나 혈당강하제를 복용하는 환자는 저혈당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함부로 시도해서는 안 된다. 당뇨나 그 밖의 질환이 있다면 간헐적 단식을 시도하기 전에 의사와 반드시 상의하기 바란다.
성장호르몬은 아미노산 191개로 이루어진 단백질 호르몬이다. 단백질 호르몬인 만큼 충분한 아미노산이 공급되어야 체내에서 합성될 수 있다. 특히 아르기닌, 리신, 류신, 오르니틴 등은 성장호르몬 분비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가운데 아르기닌·리신·류신은 콩류와 육류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 성장호르몬의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어릴 때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단백질 섭취를 충분히 해야 한다.
2020년 한국영양학회가 발표한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에 따르면 50세 이상 여성은 하루 50g, 남성은 60g의 단백질 섭취가 권장된다. 현재 우리나라 노년층은 남성은 60~80g, 여성은 40~60g 수준으로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75세 이상 노인들은 권장량보다 조금 덜 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므로 의도적으로 많이 먹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식사로 직접 먹는 것이 어렵다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단백질 셰이크나 단백질바 등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백질을 많이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영양학회가 제시하는 탄수화물 권장 섭취량은 전 연령에서 하루 130g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하루 평균 탄수화물 섭취량은 307.8g이다. 권장량의 약 2.4배를 먹는다는 뜻이다. 탄수화물 과잉 섭취는 비만을 부르는 것은 물론 혈당을 올리고 함께 먹은 단백질과 지방을 살이 되게 만든다. 전체 식사에서 잡곡, 채소, 과일 등 탄수화물을 약 50~60%로 제한하고 단백질을 20%까지 끌어올리고 나머지를 지방으로 섭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