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의심 신고만으론 측정 거부 무죄"…단속 현장 영향은? [서초삼거리]
[파이낸셜뉴스]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음주측정 요구를 거부했더라도, 운전 당시 술에 취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정황이 부족하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됐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음주측정거부죄의 기존 법리를 재확인하면서도 경찰의 현장 판단과 증거 확보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다만, 음주측정을 거부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대전지법 형사4부(구창모 부장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측정 거부) 혐의로 기소된 A씨(58)의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앞서 A씨는 지난해 6월 20일 충청남도 아산시의 한 음식점 앞에서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측정 요구에 응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음식점에 있던 B씨가 A씨의 행동이 위협적이라며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했지만, A씨는 운전을 마친 뒤 술을 마셨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주목한 것은 운전과 측정 요구 사이의 시간 차이다. A씨는 오후 8시 12분쯤 운전을 마쳤다. 신고는 오후 10시 1분께 접수됐고, 측정 요구는 오후 10시 30분쯤 이뤄졌다. 운전 종료 후 약 2시간 18분이 흐른 시점이었다.
도로교통법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경찰이 음주측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적법한 측정 요구를 거부하면 처벌받을 수 있지만, 측정 요구 자체가 법적 요건을 갖췄는지가 먼저 문제 된다.
1심은 제3자의 추측성 신고와 운전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모습만으로는 운전 당시 음주를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주관적 의심만으로 측정 의무를 인정하면 악의적인 신고로 무고한 시민에게 측정을 강제할 위험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항소심 역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정황이 필요하다며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을 새로운 예외의 인정이 아닌 기존 법리의 재확인으로 해석한다. 음주측정거부죄를 적용하려면 거부 사실 뿐만 아닌, 경찰이 당시 음주운전을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갖고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법률사무소 해내의 강성신 대표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제3자의 주관적이고 악의적인 신고만으로 시민에게 수사기관의 측정 의무를 강제할 수 없음을 확인한 의미 있는 사례"라며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명분 아래 자칫 침해될 수 있는 시민의 방어권을 두텁게 보호하고, 경찰권 발동의 엄격한 한계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형사사법 체계의 균형을 잡아준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현장에서는 신고 내용의 구체성과 경찰이 직접 확인한 징후가 중요하다. 신고자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봤는지, 비정상적인 운전을 목격했는지, 신고와 출동 사이에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음주운전·교통사고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박순범 법무법인 JR 변호사는 "운전 직전 술 마시는 모습을 직접 봤거나 이상 운전을 목격하고 곧바로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이 술 냄새 같은 징후를 확인했다면 상당한 이유가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운전 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그 사이 술을 마셨다면 현장에서 확인한 음주 상태만으로 운전 당시 상태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 변호사는 "이번처럼 운전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실제로 술을 마신 정황이 있다면 CCTV나 결제 내역, 동석자 진술 등 운전 전 음주를 뒷받침할 추가 자료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음주운전 의심 차량을 추적해 영상을 촬영한 뒤 신고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상 촬영 자체가 측정 요구의 적법성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며, 영상에 담긴 장면과 촬영·단속 시점 사이의 간격을 함께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영상 촬영 시점과 단속 시점이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 적법성이 문제 될 수 있다"며 "경찰은 운전 종료 시각을 정확히 확인하고 신고자가 직접 본 것과 추측한 것을 구분해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측정 요구의 적법성을 다투게 될 때 당시 확보한 자료가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어서다.
결론적으로 이번 무죄 판결이 적법한 음주측정 요구까지 거부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운전 종료와 측정 요구 사이에 시간이 많이 떨어져 있는 특이한 사례"라며 "이런 판결을 가지고 음주측정을 거부해도 된다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음주 측정을 방해할 목적으로 추가로 술을 마시는 이른바 '술타기' 행위도 법률상 요건을 충족하면 처벌 대상이 되는 만큼 개별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찰 고위 간부 출신인 한 변호사는 "결국 이번 판결은 음주운전 단속의 필요성과 별개로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에도 법률상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음주운전 의심 신고가 접수된 상황에서 어떠한 객관적 정황이 측정 요구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가 향후 유사 사건에서도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mail protected] 유선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