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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무죄·행정 패소 엇갈린 녹십자…헌재서 대법원 '심리불속행' 법리공방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헌법재판소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녹십자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AI 생성 이미지
헌법재판소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녹십자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AI 생성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동일한 백신 입찰담합 사건에서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의 결론이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이 별도의 이유를 밝히지 않고 상고를 기각한 것이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지를 놓고 헌법재판소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헌법재판소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녹십자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번 사건은 질병관리청이 지난 2017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발주한 자궁경부암 예방백신 '가다실' 구매입찰에서 비롯됐다. 녹십자는 도매상들을 들러리로 참여시켜 낙찰받은 공동행위와 관련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도 2023년 8월 해당 공동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명령을 내렸다.

형사재판에서는 서울고법이 2024년 7월 공동행위의 경쟁제한성과 녹십자 직원들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지난해 12월 상고를 기각해 무죄를 확정했다.

반면, 공정위 처분을 다툰 행정소송에서는 서울고법이 지난해 10월 경쟁제한성을 인정해 녹십자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지난 2월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면서 행정소송 패소가 확정됐다.

이날 청구인인 녹십자 측 대리인 법무법인 율촌은 같은 공동행위에 대한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의 판단이 달라졌는데도 대법원이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은 재판청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형사 무죄판결이 먼저 확정된 상황에서 대법원이 반대 결론의 행정소송 상고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한 만큼, 두 판결의 차이를 검토하고 법률적 판단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형석 율촌 변호사는 "동일 사안에서 모순된 사실관계가 각각 확정된 것은 그 자체로 어느 하나는 사실오인과 잘못된 법령 적용이 있는 것"이라며 "그게 아니라면 그 이유가 제대로 설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해관계인인 공정위 측은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의 결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법령 위반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은 증명 기준과 증거 평가가 달라 동일한 사건에서도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이 사건을 전혀 검토하지 않는 제도가 아니라, 상고이유와 원심판결 등을 살펴본 뒤 법률상 심리속행 사유가 없다고 판단하면 상고를 기각하는 절차라는 점을 강조했다.

공정위 대리인인 박시준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는 "심리불속행은 아무런 심사를 하지 않는 제도가 아니다"며 "대법원이 원심판결과 상고이유 등을 모두 살펴봤고 녹십자 측도 상고심에서 형사판결을 제출해 충분히 의견을 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형사 무죄 확정판결이 행정소송 원심 선고 49일 뒤에 나왔다는 점에 대해 "후발적으로 선고된 판결이 원심 판결에 존재하지도 않던 하자를 소급해 만들어낼 수는 없다"며 "결론의 차이만을 이유로 재판 취소를 허용한다면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또 하나의 상소심이 돼 심급 제도와 재판의 법적 안정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두 재판의 판단 차이가 사실인정의 문제인지 법률 해석의 문제인지를 놓고도 질의가 이어졌다.

재판관들은 백신 공동판매 계약의 성격과 제3자에 대한 공급확약서 발급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동일한 계약을 서로 다르게 해석한 것이 단순한 증거 평가의 차이에 해당하는지 질문했다.

형사처벌과 행정상 제재의 증명 기준이 얼마나 달라야 하는지도 쟁점으로 다뤄졌다. 재판관들은 두 절차 모두 국가가 국민에게 불이익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경쟁제한성을 인정하기 위한 증명 정도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살펴봤다.
아울러 심리불속행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법률상 심리속행 사유가 문제 되는 사건에서 대법원이 판단 이유를 어느 정도까지 제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특히 행정소송 원심판결 이후 형사 무죄가 확정됐다는 점에서, 대법원이 행정소송 상고를 기각할 당시 확정된 형사판결과의 관계를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거론됐다.

헌재는 이날 제시된 양측 주장과 참고인 의견 등을 토대로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녹십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는지 판단할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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