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형사 고소와 민사 청구, 뭐부터 하는 게 좋을까 [원희영 변호사의 사건이 된 일상]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원희영 변호사.
원희영 변호사.

[파이낸셜뉴스] "고소부터 하고, 돈은 형사사건이 끝나면 받으면 되지 않을까요?"
고소를 준비하는 피해자에게는 상대방의 처벌만큼 피해를 금전적으로나마 보상받는 일도 중요하다. 그런데 어쩐지 형사사건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배상도 한결 수월할 것 같다. 비용을 들여 민사소송까지 함께 진행하기는 부담스럽다. 형사 고소만 일단 해볼까.

범죄가 명확하고 시효나 재산 처분 문제가 급하지 않다면 형사 고소부터 진행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반면 범죄 성립은 불확실해도 손해배상이나 반환을 청구할 민사상 근거가 있다면, 두 절차를 함께 진행하는 편이 낫다.

유죄판결은 민사소송에서 도움이 된다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힌 범죄로 유죄판결이 확정됐다면, 대개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도 진다.

민사소송에서는 원칙적으로 피해자가 상대방의 고의나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 손해의 발생,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상해 피해자가 치료비와 일을 하지 못한 기간의 손해를 청구한다면, 진료기록과 영수증으로 부상과 치료비를 입증하고 급여명세서나 소득신고자료로 잃은 수입을 산정하는 식이다.

확정된 유죄판결은 가해행위를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다. 민사법원이 형사판결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그 판결에서 인정한 사실과 반대되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인정받으려면 불법행위의 존재부터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유죄판결이 확정됐다면 범죄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다시 입증할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피해자로서는 손해의 범위와 배상액을 입증하는 데 보다 집중할 수 있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도 민사소송에 활용할 수 있다.

폭행 장면이 영상에 남아 있거나 맡겨둔 돈을 무단으로 빼돌린 내역이 확인됐다면 범죄 성립을 뒷받침할 물증이 있는 사건이다. 수사기관은 관련자를 조사하고 계좌 흐름 등을 확인해 범행 경위를 밝힌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알지 못했던 추가 피해가 드러나기도 한다.

횡령 사건에서 피해자 대리인은 이미 확인한 거래와 추가 확인이 필요한 거래를 구분해 수사관에게 설명한다. 수사기관이 확보한 금융거래 내역 등은 열람·복사가 허용되는 범위에서 민사소송에도 증거로 제출한다. 피해자 혼자서는 구하기 어려웠던 자료가 수사기관을 통해 확보되니, 피해 규모를 입증하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유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민사 청구권은 살아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기죄다. 사기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

사기죄는 돈을 빌릴 당시 상대방을 속였는지가 쟁점이다. 당시 돈을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었고 차용 과정에서도 속인 일이 없다면, 나중에 돈을 갚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빌린 돈을 갚을 의무는 남는다. 대여금 반환 청구에서는 돈을 빌려줬다는 사실과 변제기 등이 문제 된다. 처음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다는 점까지 증명할 필요는 없다.

불송치 결정서나 불기소이유서에 차용 사실은 인정되지만 사기로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가 적혀 있다면, 그 문서도 대여금 청구의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수사기관의 판단이 민사법원을 구속하지는 않지만, 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상대방의 차용 인정 진술이나 금융거래 자료는 피해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계약에 따른 반환 청구가 가능하다면 사기 고소와 민사소송을 병행할 실익이 크다. 계약상 청구 근거가 없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만을 청구하는 사건이라면, 민사에서도 위법행위와 손해를 입증해야 한다.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인정될 수 있다. 형법은 원칙적으로 고의범을 처벌하고, 과실범은 별도의 처벌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한다. 반면 민법은 고의뿐 아니라 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도 배상책임을 인정한다.

재물손괴가 대표적이다. 형법에는 과실로 타인의 재물을 손괴한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고의 없이 물건을 망가뜨렸다면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없지만, 부주의로 타인의 물건을 훼손했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질 수 있다.

민사와 형사가 서로의 결과를 기다리기도 한다

두 절차를 함께 시작했다고 해서 나란히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민사재판부는 형사사건의 결과를 보겠다며 다음 기일을 추후 지정하기로 하고, 수사기관은 민사판결을 가져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양쪽이 서로의 결론을 기다리면 당사자는 어느 쪽에서도 답을 받지 못한다.

대리인으로서도 가장 답답한 상황이다. 두 절차를 같은 대리인이 맡으면 양쪽의 진행 상황과 지연 사유를 함께 파악하기가 수월하다. 이를 바탕으로 각 절차에서 먼저 판단할 수 있는 쟁점과 필요한 증거를 정리하고, 신속한 진행을 촉구할 수 있다.

수사기관에는 민사재판이 형사사건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정을 알리고, 신속한 수사와 처분을 요청한다. 상대방이 돈을 빌릴 당시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이를 확인하려면 누구를 조사하고 어떤 자료를 확보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민사판결을 기다리는 이유가 특정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그 사실을 밝힐 다른 자료를 제출해 수사의 진행을 촉구할 수도 있다.

형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시효는 흐른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한 날부터 10년이다. 형사판결이 나와야 비로소 시효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형사 고소만으로 민사상 소멸시효가 중단되지도 않는다. 법원도 고소하거나 형사재판이 시작됐다는 사정만으로는 시효를 중단시키는 재판상 청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형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시효가 완성되고 상대방의 소멸시효 항변이 받아들여지면 민사 청구는 기각될 수 있다.

지연손해금도 소송 시기를 정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은 원칙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성립하고, 그때부터 지연손해금이 붙는다.

청구가 전부 인용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소장 부본이 상대방에게 송달된 다음 날부터 연 12%가 적용된다. 일부만 인용되더라도 통상적으로 판결 선고 다음 날부터 인정된 금액의 연 12%의 지연손해금이 붙는다.

요즘 세상에 연 12% '고리'가 붙는 채권이 어디 흔한가. 청구할 근거와 증거가 갖춰졌다면 하루라도 빨리 청구할 필요가 있다.

승소하고도 '명예로운 채권자'에 그칠 수 있다

필자는 민사소송에서 이기고도 돈을 받지 못하면 '명예로운 채권자'가 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상대방이 판결에 따른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예금채권을 압류해 추심하거나 부동산에 강제경매를 신청하는 절차가 남는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드는 것은 물론이고, 집행할 재산이 없거나 선순위 채권자에게 배당하고 남는 돈이 없다면 강제집행으로도 배상금을 받지 못한다.

돈을 받는 일이 최우선이라면 형사절차에서 합의해 일시금으로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구속이나 실형을 걱정하며 선처를 구하는 사람은 피해자와의 합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곤 한다. 신병의 자유가 걸린 상황에서는 사람의 마음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상대방이 선처를 구하는 시기에 합의금을 지급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피해 회복 방법일 수 있다.

[필자 소개] 원희영 변호사는 파이낸셜뉴스 기자 출신으로, 현재 법무법인 YK에서 형사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언론정보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평범한 일상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살피고, 사건의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쟁점과 실질적인 대응 방법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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