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출 관리하는 시대… 부실 줄지만 '통계의 편견' 위험 [한미재무학회]
김회광 교수 美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상담창구 넘어 대출심사·사후관리까지
AI 많이 쓰는 은행이 부실채권 적지만
고객과 대면접촉 많을수록 효과 커져
기술이 인간 대체하기보단 보완적 관계
부실 줄었다고 대출이 공정하진 않아
알고리즘의 편견 빠지고 굳어진다면
정보 적은 '성실한 개인' 차별 가능성
데이터 부족한 한국 금융권 특히 취약
대출 거절자에 설명·재심사 기회 주고
당국은 공정성 지표 개발 등 나서야
은행권의 인공지능(AI) 도입 경쟁이 뜨겁다. AI는 상담창구를 넘어 대출심사와 사후관리 등 여신의 핵심 업무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자체 신용평가모형을 경쟁력으로 내세웠고, 시중은행들도 머신러닝 기반 심사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미국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는 2023년 연례보고서에서 금융서비스의 AI 활용을 금융시스템의 '새로운 취약요인'으로 지목했다.
■AI 도입 은행, 대출 부실 줄었다
그렇다면 AI 도입이 실제 은행 대출의 건전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필자는 공동연구자와 함께 미국 은행지주회사 105곳의 2010~2018년 자료를 분석했다. AI 도입 수준은 전체 직원 중 AI 전문인력 비중으로 측정했다. 실적이 나쁜 은행이 뒤늦게 AI에 투자하는 역인과 문제를 피하기 위해 2010년 이전 은행들이 AI 연구 역량이 뛰어난 대학에서 인력을 채용한 이력을 활용해 인과관계를 식별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AI 도입 수준이 높은 은행은 부실채권 비율이 낮았다. 기업대출, 상업용 부동산, 주택담보대출, 소비자대출 등 모든 유형에서 효과가 나타났고 실제 손실로 확정되는 순상각률도 줄었다. 미국 중소기업청(SBA) 보증대출을 개별 분석한 결과에서도 AI 도입 수준이 높은 은행의 대출은 상각 확률이 2.4%p, 평균 대비 약 37% 낮았다. AI가 대출자를 정밀하게 선별하고 부실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며 사후관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효과를 발휘하는 환경이다. 인구 대비 지점망이 촘촘하고, 고객과 대면접촉이 많은 은행일수록 부실 감소 효과가 컸다. 개별 대출에서도 은행과 대출기업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효과가 높았다. 대면거래에서 얻는 대출자의 성실성, 사업 역량, 지역 상권의 분위기 같은 '소프트 정보'는 귀중하지만 담당자의 주관과 편향에 흔들리기 쉽다. AI는 이를 데이터로 뒷받침해 판단의 일관성을 높인다. AI와 사람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 은행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은행들은 지난 10여년간 비대면 전환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점포를 줄여 왔다. 그러나 AI 도입을 인력과 점포 축소의 명분으로 삼는다면 AI의 효과를 스스로 제한할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처럼 관계형 금융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숙련된 여신 담당자와 AI가 함께 일해야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저소득·저신용 취약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2025년 1·4분기 12%를 넘어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장부에 드러나지 않는 사업의 사정을 읽는 사람의 눈과 방대한 데이터에서 위험신호를 찾는 AI의 분석력을 결합해야 할 때다.
비용 효율성과의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은행이 비용을 줄이려고 심사와 사후관리 인력을 축소하면 당장은 효율이 높아 보이지만 나중에 부실이 늘어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이를 '절약(skimping) 가설'이라고 부른다. 분석 결과 비용 효율이 높은 은행, 즉 감시비용을 아껴 온 것으로 보이는 은행에서 AI의 부실 감소 효과가 특히 컸다. AI가 적은 비용으로 촘촘한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해 비용과 건전성 사이의 상충관계를 완화한 것이다.
■건전성 높여도 공정성은 별개 문제
그러나 부실이 줄었다고 대출이 공정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연구는 은행의 건전성을 측정했을 뿐 누가 대출을 받고 거절당했는지까지 분석하지는 않았다. 부실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위험해 보이는 사람에게 아예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것이다. 건전성 개선 뒤에 금융 배제의 확대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통계적 차별'로 설명한다. 개인의 실제 상환능력을 알기 어려울 때 그가 속한 집단의 평균적 특성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거주지역이나 업종, 나이, 성별, 학력 때문에 실제보다 위험한 대출자로 분류될 수 있다. 과거 데이터에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AI는 이를 객관적인 통계적 패턴으로 학습해 대규모로 재생산한다.
성별이나 연령 같은 민감한 변수를 제외해도 문제는 남는다. 거주지와 소비패턴, 휴대폰 기종, 결제 시간대 등이 대리변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력단절 후 재취업한 여성이나 지방 소도시의 자영업자는 상환 능력이 충분해도 과거 집단의 평균 때문에 높은 금리를 요구받거나 대출 한도가 줄어들 수 있다. 개인의 성실함이 집단의 통계에 가려지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차별이 스스로 굳어진다는 점이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대출을 거절당한 사람은 상환 이력을 쌓을 기회를 잃는다. 이력이 없으니 다음에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모형은 거절된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잘 갚았을지 알 수 없고,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증거도 얻지 못한다. 사람의 편견은 다른 심사역이 바로잡을 여지라도 있지만 알고리즘의 편견은 모든 창구에서 동시에 반복된다.
■신용정보 부족한 1240만명, AI 차별 위험
한국은 이 문제에 특히 취약하다. 최근 3년간 신용카드나 대출 이용 이력이 없어 신용평가에서 불리한 이른바 '신파일러'는 약 1240만명에 이른다. 평균 신용점수는 710점 안팎이다. 사회초년생과 전업주부, 은퇴한 고령층, 초기 창업자가 여기에 많이 속한다.
정부와 금융권은 금융 소외를 줄이기 위해 통신비와 공과금 납부 이력, 온라인 쇼핑몰 매출, 마이데이터 등 비금융 정보를 활용한 대안신용평가를 장려해 왔다. 인터넷전문은행에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잔액 기준 30% 이상 유지하도록 하고, 신규 취급 기준 목표를 2028년까지 35%로 높이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방향은 옳지만 대안 데이터는 양날의 칼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금융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반면 생활방식과 거주환경, 소비습관이 신용도로 환산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미국 은행들은 공정대출 규제로 이런 데이터 활용에 신중하지만 포괄적인 차별금지 규율이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에서는 경계가 느슨하다.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20년 개정 신용정보법은 자동화된 평가 결과와 주요 기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유리한 정보를 제출하거나 재산출을 요청할 권리를 도입했다. 금융당국은 금융분야 AI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올해 1월 시행된 AI 기본법은 대출심사를 '고영향 AI' 영역으로 명시해 위험관리와 판단기준 설명, 이용자 보호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설명요구권을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고, 설명을 요구해도 '종합적인 신용평가 결과'라는 형식적인 답변에 그치기 쉽다. 법과 가이드라인이 선언에 머물지 않으려면 구체적 운영기준과 점검체계가 필요하다.
■AI 신용평가, 설명 책임과 공정성 검증 강화해야
은행부터 달라져야 한다. 대출 거절자에게 형식적인 통보 대신 실질적인 설명과 재심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어떤 요인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고 무엇을 개선하면 결과가 달라지는지 알려줘야 한다. 모형 검증도 개발 부서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내부 조직이나 외부 기관이 담당해야 한다.
경계선에 있는 신청자 일부에게 제한적으로 대출을 제공하고 상환 결과를 축적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 그래야 거절된 신청자들의 실제 상환 능력을 확인하고 모형의 편향을 교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최종 판단에는 사람이 책임을 지고 관여해야 한다. 우리 연구에서도 AI는 사람과 함께 일할 때 가장 큰 성과를 냈다.
감독당국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선 AI 신용평가모형의 사전신고 제도를 검토할 만하다. 은행이 새 모형을 도입하거나 핵심 변수를 변경할 때 학습 데이터의 출처, 민감 정보의 대리변수 사용 여부, 집단별 영향 분석 결과를 신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수년씩 걸리는 인허가식 승인 절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승인 지연으로 신용평가모형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업계 지적도 고려해야 한다. 사전신고의 목적은 출시를 막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변경 이력을 추적할 기록을 남기는 데 있다.
금융권 공통의 공정성 지표를 개발하고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은행마다 다른 기준으로 공정성을 주장하면 비교와 검증이 어렵다. 집단별 대출 승인율 격차, 동일 신용점수대의 금리 격차, 거절 후 재심사 인용률 등 표준 지표를 당국과 업계·학계가 함께 마련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금융회사가 이를 정기적으로 공시하면 은행의 자체 점검을 유도하고 소비자와 연구자의 감시도 가능해진다.
감독당국 역시 알고리즘을 직접 검증할 데이터 과학 인력과 검사 역량을 갖춰야 한다. 최근 금융권에서도 편향성 검증기준과 사람의 개입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제 논의를 선언에서 제도로 옮길 때다.
AI는 은행을 더 건전하게 만들 수 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 건전한 은행이 곧 더 공정한 금융을 뜻하지는 않는다. 효율성의 이름으로 도입된 알고리즘이 사회적 약자를 금융시스템 밖으로 밀어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AI 도입의 속도를 늦추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데이터를 쓰고 어떤 기준으로 검증하며 잘못된 판단을 누가 바로잡을지 금융당국과 은행, 학계, 소비자가 함께 정해야 한다. 그 논의가 빠를수록 AI는 한국 금융을 더 건전하고 포용적으로 만드는 도구가 될 것이다.
*한미재무학회(KAFA)는 지난 1991년 미주지역 재무 연구자들의 학술적 발전 및 상호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발족한 학술단체다. 30여년간 발전을 거듭해 현재 미주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과 유럽, 호주 지역 한인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발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2007년부터 한미재무학회의 학문적 성취를 장려하기 위해 KAFA를 후원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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