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닥터X" vs "TV 껐다"…5·18 다룬 6회 '닥터X' 논란
"5·18의 현재적 의미, 대중에게 환기한 뜻깊은 시도" 호평
[파이낸셜뉴스]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가 5·18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뒤 후폭풍에 휩싸였다. 의학드라마에 정치적 메시지를 무리하게 삽입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국가폭력 피해자의 상처를 환기했다는 호평이 뜨겁다.
논란이 된 6회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총격으로 형을 잃고 자신도 머리에 총탄이 박힌 채 살아온 오상범(하성광 분)의 사연을 그렸다. 방송 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드라마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이 등장했고, 촬영을 위해 설치한 가상의 버스정류장 표지가 도로법을 위반했는지 조사해 달라는 민원이 제기됐다.
반면 제작사 스튜디오S의 이옥규 책임프로듀서(CP)는 자신의 SNS에 드라마 포스터와 함께 'No fear(두려움 없다)'라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상 반응을 살펴보면, 문호철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드라마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닥터X' 6회를 보다가 TV를 꺼버렸다"며 "갑자기 5·18이 등장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전직 대통령 '지두석'까지 나오자 이후 전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문 수석부위원장은 "드라마와 영화가 진영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 모습을 시청자와 관객이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느냐"며 "의학드라마라면 의학드라마답게 만들어 달라"고 주장했다. 이어 "의사를 '강자이자 악인', 환자를 '약자이자 선인'으로 나누는 조악한 이분법도 지양해야 한다"며 "시청자는 의학드라마를 보려고 TV를 켰지, 제작진의 정치적 신념을 교육받으려고 TV 앞에 앉은 것이 아니다. 잘 보던 드라마에 찬물을 끼얹어 시청자가 TV를 꺼버리게 만들지 말라"고 지적했다.
한 영화감독은 5·18을 다룬 것 자체보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와 전개 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닥터X'가 처음부터 큰 인기를 얻은 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유쾌함과 통쾌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나 역시 드라마가 재미있다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나 드라마가 5·18민주화운동이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등을 다루는 데 거부감은 없다. 역사 왜곡 여부는 그다음에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갑자기 5·18이 소재로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전개까지 늘어지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그는 "5·18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는 이를 기성세대와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며 "유쾌하고 통쾌하게 이끌어온 작품을 갑자기 역사드라마처럼 무겁게 몰고 가니 당황스럽고 작가와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다음 회차를 계속 봐야 할지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5·18의 현재적 의미를 대중에게 환기한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시청률이 20%에 육박한 순간 작가가 6회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분명해 보인다"며 "5·18을 부정하고 폄훼하는 이들에게 'No BS(허튼소리 마라)'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옥규 CP가 남긴 'No fear' 역시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5·18을 다룬 것이 불편하다는 사람들에게 제작진은 '우리는 오히려 당신들이 더 불편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일본 원작이 일본을 대표하는 인기 드라마였다면 한국판은 넷플릭스를 통해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개인적인 기억도 털어놨다. 그는 "나 역시 그날 광주에 있지는 않았지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그곳에서 상처를 입었고 결국 일찍 세상을 떠났다"며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을 처단하라'고 외쳤다는 이유로 유언비어 유포죄가 적용돼 넉 달 동안 독방에 수감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 감정이 교차해 방송을 한 번에 끝까지 보지 못했지만 마지막 장면까지 본 뒤 한마디를 남기고 싶다. '고마워요, 닥터X'"라고 했다.
또 다른 페이스북 이용자는 논란을 계기로 '닥터X' 6회를 따로 찾아봤다고 밝혔다. 그는 "한때 의학드라마를 즐겨 봤지만 소재만 다를 뿐 비슷한 전개와 뻔한 결말이 반복돼 몇 년 전부터 거의 보지 않았다"며 "이번 회차는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의 아픔을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상투적인 의학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 장르의 지평을 넓힌 새로운 시도"라며 "역사적·법적으로 확인된 사실에 기반한 내용이 왜 이토록 논란을 일으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퇴행적인 행태가 아쉽다"고 밝혔다.
헬기 사격을 극의 중심 소재로 삼은 점에 주목한 반응도 나왔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5·18민주화운동 전반을 다룬 기존 작품들과 달리 '닥터X'는 계엄군 헬기 사격의 직접적인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며 "시청률 선두권의 메디컬 드라마가 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까지 38년이 걸렸다"며 "사격 사실은 확인됐지만 누가 지시했고 어떤 지휘·명령 체계를 통해 실행됐는지, 그 결과 누구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5·18은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도 '닥터X' 제작진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박 장관 역시 "'닥터X'가 그동안 창작 미디어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계엄군의 헬기 사격 문제를 핵심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5·18은 이념과 진영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비극이자 민주주의의 위대한 기록"이라며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다룬 작품의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편협한 정략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북한 개입설과 시민 간 총격설, 계엄군을 향한 선제 발포설 등을 대표적인 왜곡 사례로 거론하며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일을 막으면 그 자리는 왜곡과 날조로 채워질 수 있다. 결국 진실이 전복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독재를 꿈꾸는 이들에게 오히려 용기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장관은 "대한민국은 광주시민의 희생 위에 번영을 일궈왔다"며 "5·18의 진실을 제대로 기억하고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그 책임을 다시 일깨워준 드라마 제작진에게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닥터X' 6회는 전국 가구 기준 19.5%, 순간 최고 21.3%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