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애증의 바그너… 한계 느낄 때마다 음악이 다시 일으켜요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바그너 '반지' 전막 초연 150주년
국립오페라단, 매년 4부작 차례로
첫편 '라인의 황금' 알베리히役
사무엘 윤·양준모 더블 캐스팅
"꿈에 나올 정도로 연습 매달려"

'라인의 황금'에 출연하는 성악가 사무엘 윤이 연습하고 있는 모습. 국립오페라단 제공
'라인의 황금'에 출연하는 성악가 사무엘 윤이 연습하고 있는 모습. 국립오페라단 제공

"연습 시작할 때는 건강했는데 몇 주 지나면서 점점 피폐해졌죠. 그런데 무대서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으면 '그래, 이것 때문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바그너 전문 성악가로 잘 알려진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은 바그너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고통과 희열을 이렇게 설명했다. 더블 캐스팅된 바리톤 양준모도 다르지 않다. 그는 "정말 사랑하지만 저를 너무너무 힘들게 한 애증의 작품"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번갈아 연기하는 인물은 바그너 4부작 연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제1편 '라인의 황금'의 알베리히. 절대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거대한 비극을 촉발하는 난쟁이다.

국립오페라단이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인의 황금'을 선보이며 뜻깊은 도전에 나선다. '니벨룽의 반지' 전막 초연 150주년을 맞아 시작하는 장기 프로젝트의 첫 무대로, 2029년까지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을 차례로 선보인다.

'라인의 황금'에 출연하는 성악가 양준모(오른쪽)가 연습하고 있는 모습. 국립오페라단 제공
'라인의 황금'에 출연하는 성악가 양준모(오른쪽)가 연습하고 있는 모습. 국립오페라단 제공

■알베리히는 바그너 성악가의 무덤

알베리히는 두 성악가에게 각기 다른 전환점을 안긴 배역이다. 양준모에게는 오디션에 거듭 떨어지던 시절 찾아온 기회였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극장에서 '세비야의 이발사'에 출연했을 때 연출가가 '라인의 황금' 오디션을 제안했다. 그는 "당시에는 알베리히가 어떤 역할인지도 잘 몰랐다"며 "첫 연습에서 지휘자에게 엄청 혼났다.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때 그렇게 공부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무엘 윤에게 알베리히는 바그너를 떠나고 싶던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인물이었다. 바그너 작품만을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2012년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타이틀롤을 맡은 뒤 4년간 주역으로 활약했던 그는 "계속 같은 배역을 맡게 돼 어느 순간에는 도망가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바그너를 더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알베리히를 맡고 나서 마음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오랜 경험에도 알베리히는 만만치 않다. 넓은 음역과 격렬한 감정 표현에 더해 독일어 대사를 오케스트라 위로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양준모는 "침을 뱉듯이 자음을 밖으로 보내야 한다"며 "'더 뱉어라', '안 들린다'는 지적을 받는다"고 말했다. 사무엘 윤도 바이로이트에서 "몇 시간씩 연습하고 쉬러 가는데도 음악 코치들이 붙잡고 발음을 이야기했다. 꿈에 나타날 정도였다"고 돌아봤다.

양준모는 알베리히를 '바그너 성악가의 무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알베리히는 웃을 때도 거칠게 웃고 소리를 뱉어내야 한다"며 "한 번 부르고 나면 성대를 칼로 긁은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강력한 음악의 힘"

로렌조 피오로니가 연출하는 이번 무대는 신화 속 탐욕을 현대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부동산과 대출, 계약과 노동 착취를 신들의 세계에 겹쳐놓고, 니벨룽족의 지하 세계 니벨하임을 쓰레기와 상품이 넘쳐나는 도시로 그린다. 신들의 가문에는 패밀리 드라마를, 반지 쟁탈전에는 갱스터 드라마의 문법을 끌어들인다.

알베리히의 첫 모습부터 신화 속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사무엘 윤은 "허름한 여인숙 같은 곳에 오랫동안 머무는 사람이다. 몸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털도 다듬지 않은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양준모는 "팬티에 샤워 가운만 걸치고 나온다. 털로 가려져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보탰다.

라이브 카메라는 무대 위 성악가의 모습을 생중계한다. 양준모는 "우리가 무대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일 것 같다"며 "평소에는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데 바그너를 하면 비 오듯이 흘린다"고 말했다.

그 고된 과정을 견디게 하는 것은 음악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로타 쾨닉스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양준모는 바그너 음악을 "하나의 거대한 심포니"라고 표현했다. 그는 "성악가의 목소리를 빼고 음악만 들어도 몇 시간짜리 교향곡 같다"며 "성악가는 차려진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 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숟가락이 굉장히 무겁다"고 말했다.

사무엘 윤도 "긴 시간을 노래하고 나면 성대는 너덜너덜한데 음악이 다시 그 인물의 옷을 입혀준다. 그래서 끝까지 가게 된다"며 바그너 음악의 매력을 강조했다.

두 사람이 내딛는 첫걸음은 4년에 걸친 '니벨룽의 반지'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사무엘 윤은 "바그너는 다른 오페라보다 다섯 배의 에너지가 든다고 느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선보이는 알베리히를 언제 또 보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며 "꼭 공연장을 찾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