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과 고통을 마주하는 대학로 [엄현희의 생각하는 극장]
수치심은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감정 중 하나이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는 수치심이 종종 자아를 무너뜨리고 무가치함을 경험하게 해 가장 참혹한 고통과 연결된다고 짚어낸다. 연극 '전락'은 이러한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때로는 이야기와 장면 속에 겹겹이 쪼개어 1인극으로 표현한다.
'전락'은 알베르 카뮈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파리의 전도유망한 변호사였던 클라망스는 어떤 사건을 겪은 후 네덜란드로 이사해 전혀 다른 삶을 산다. 그는 자신의 죄를 고해하고,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는 '고해 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연극은 클라망스가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며 극 전체에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설계로 만들어져 있다.
끝없이 스스로에 대해 고백하는 클라망스. 클라망스는 왜 이러한 욕망에 사로잡힌 것일까. 과거에 그는 스스로를 높은 미덕의 소유자처럼 포장하고 싶어 한 동시에,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사회적 가면에 능숙하게 행동한다. 자신의 이중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이러한 자신을 '맡은 역할을 해내는 배우'라 표현한다. 이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만한 감정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이중성에 대해 쉼 없이 질책하는 시선과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면? 과연 인간은 어떠한 상태에 이르게 될까?
'전락'은 그러한 질문을 객석과 나눈다. 클라망스는 어느 날 우연히 자살하는 사람을 무심하게 지나친 후 이 사건에 사로잡힌다. '전락'은 미묘하게 죄책감과 수치심을 구분한다. 그는 과거의 행동을 단순히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부정하고 싶어 한다. 스스로를 수치스러워 하는 것이다. 무대 뒷벽 높은 곳에는 클라망스의 허물인 듯 옷이 축 늘어져 걸려있다.
대학로 연극에서 많은 비중으로 올라가는 1인극 혹은 2인극들 중 다수가 정신 병리학적 내면 및 고통과 '존재의 발버둥'을 포착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압박과 긴장감, 스트레스가 강박적으로 심해지는 현실이다. 전쟁 위기와 사회적 위협과 변화의 두려움이 변동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한편, 안정감의 가치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무대는 그러한 현실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윤나무 배우가 연기한 '전락'은 언뜻 전작 '온 더 비트'를 떠오르게도 한다. 섬세한 표현으로 인물의 기이한 내면을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서사의 진행 속 갑자기 멈춰 선채 내면에 몰입된 배우가 수치심을 전할 때, 객석에서는 부서진 자아를 감싸며 스스로의 죄가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엄현희 공연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