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프랑스 대선 앞두고 라가르드 ECB 총재 전격 사임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임기 8개월 앞당겨 내년 2월 퇴임
극우 집권 가능성에 후임 인선 서둘러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임기를 약 8개월 남기고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내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 세력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현 유럽연합(EU) 지도부가 차기 ECB 총재를 선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29일(현지시간) CNBC 등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영상을 통해 사임을 발표했다. 공식 퇴임일은 내년 2월 7일이다. 당초 임기는 2027년 10월 말까지였다.

라가르드 총재는 "맡은 일을 잘 해냈다는 자부심과 함께 미래에 대비할 준비가 된 ECB를 남기고 떠난다"고 밝혔다.

이번 사임의 배경에는 프랑스 대선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의 승리 가능성이 높게 나타나면서 EU 지도부가 대선 이전에 차기 ECB 총재를 선임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라가르드 총재의 사임으로 현 EU 지도부는 프랑스 대선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고 후임 인선을 마무리할 시간을 확보하게 됐다.

프랑스 재무장관과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지낸 라가르드가 정치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사임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은 로이터에 라가르드가 프랑스와 국제 정치 현안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사임했다고 전했다. 라가르드는 프랑스 대선 출마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지만 어떤 역할에서든 친유럽적 가치를 옹호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중앙은행 총재의 사임 시점이 정치 일정과 맞물렸다는 점에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독일 출신 유럽의회 의원인 마르쿠스 페르버는 외신에 "높은 인플레이션과 불안한 채권시장, 다가오는 선거를 고려하면 이번 조기 사임은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임 시점이 특정 국가의 선거에 맞춰졌다는 인상을 준다면 정치적 계산을 초월해야 하는 ECB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마르셀 프라처 독일경제연구소(DIW) 소장은 "라가르드가 조기에 물러남으로써 유럽 각국 정부는 유럽의 가치를 수호하고 ECB의 독립성을 보호할 후임자를 임명할 기회를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후임 인선 작업도 본격화됐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차기 ECB 총재 선임 절차에 즉시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유력 후보로는 클라스 크노트 전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와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 전 스페인 중앙은행 총재가 거론된다. 내년 1월 퇴임하는 이자벨 슈나벨 ECB 집행이사와 5월 임기가 끝나는 필립 레인 수석이코노미스트의 후임 인선까지 맞물리면서 ECB 지도부가 대대적으로 교체될 전망이다.

문제는 라가르드가 떠나는 시점에 ECB가 직면한 경제 환경이다. 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유럽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ECB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상품과 서비스 가격, 임금 인상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가계와 기업의 차입 비용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가부채가 많은 프랑스에서는 국채금리 상승이 재정 부담을 키우고 경제성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CB는 이날 통화정책회의에서 예금금리를 연 2.5%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르면 12월 추가 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8년 임기 종료를 9개월 앞둔 내년 2월7일 사임할 것이라고 ECB가 29일 밝혔다. 사진은 라가르드 총재가 2025년 1월3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회견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8년 임기 종료를 9개월 앞둔 내년 2월7일 사임할 것이라고 ECB가 29일 밝혔다. 사진은 라가르드 총재가 2025년 1월3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회견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email protected] 이병철 특파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