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젊으면 앉으면 안 되나요?"…지하철 교통약자석 1시간 앉아서 버텨봤다 [낮은 곳의 기록자]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지하철 교통약자석 1시간 체험]
겉으로 알 수 없는 장애와 질환... 젊은이도 걸릴 수 있어
"젊다고 무조건 일어나라 하면 안 돼"... 어르신들도 배려

지난 28일 서울 지하철 7호선 전동차에서 기자(오른쪽)가 체험 취재를 위해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다. 사진은 기자와 인터뷰한 친절한 70대 승객이 직접 찍어주었다. /사진=한승곤 기자
지난 28일 서울 지하철 7호선 전동차에서 기자(오른쪽)가 체험 취재를 위해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다. 사진은 기자와 인터뷰한 친절한 70대 승객이 직접 찍어주었다. /사진=한승곤 기자

지하철 교통약자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자리를 비키라는 요구를 받거나 폭언을 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나 내부장애인처럼 겉으로 건강 상태를 알기 어려운 사람들도 교통약자석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일부 승객은 여전히 노인 전용 좌석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하철 교통약자석에 직접 앉아 한 시간 동안 승객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국내외 교통약자 배려 제도를 알아봤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젊은 사람이라고 다 건강한 건 아니잖아요. 겉으로는 아픈지 알 수 없죠."

지난 28일 서울 지하철 7호선에서 만난 60대 여성 A씨는 최근 수술을 받은 여성이 교통약자석에 앉았다가 노년 여성에게 폭행당한 사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몸이 아파서 앉아 있을 수도 있는데 나이만 보고 일어나라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최근 지하철 교통약자석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와 질환에 대한 인식도 문제가 되고 있다. 교통약자석은 고령자뿐 아니라 장애인과 임산부, 일시적으로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좌석이다. 그러나 외관상 건강해 보인다는 이유로 자리를 비키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도 있다.

기자는 이날 지하철 7호선 교통약자석에 앉아 약 1시간 동안 승객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키 177㎝, 몸무게 90㎏인 성인 남성이 교통약자석에 앉았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체험하는 동안 자리를 비켜달라는 요구는 없었다. 시비가 발생하거나 기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승객도 없었다. 다만 특정 노선에서 1시간 동안 진행한 체험인 만큼 다른 시간대나 노선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수술 후 앉았다가 폭행…'교통약자석' 누구 자리인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사진=챗GPT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사진=챗GPT

최근 지하철 2호선에서 수술을 마치고 귀가하던 여성이 교통약자석에 앉았다가 노년 여성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알려졌다.

지난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진 사연에 따르면 여성 B씨는 수술을 받은 뒤 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탑승했다. 몸이 좋지 않아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던 중 한 노년 여성이 다가와 자리를 비키라고 요구하면서 시비가 시작됐다.

노년 여성은 B씨에게 노약자나 임산부인지 물었고, 옆자리에 앉은 남편에게도 조롱하는 발언을 했다. B씨가 수술을 받고 귀가하는 길이라고 설명했지만 항의는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노년 여성이 B씨의 얼굴을 때리는 모습도 영상에 포착됐다. B씨가 휴대전화로 상황을 촬영하자 노년 여성은 촬영을 문제 삼으며 폭언을 이어갔다. 주변 승객들이 이를 제지했고, B씨는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B씨는 사건 이후 수술 부위에 통증이 심해졌고 정신적으로도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교통약자석은 고령자만 이용하는 좌석이 아니다. 수술 후 회복 중이거나 부상 등으로 오래 서 있기 어려운 승객도 이용할 수 있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과거 '노약자석'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현재는 '교통약자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나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교통약자석을 이용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신장이나 심장 등 내부기관에 장애가 있거나 만성질환으로 장시간 서 있기 어려운 경우가 대표적이다. 휠체어나 목발 등 보조기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주변 승객이 건강 상태를 알아채기 어렵다.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도 마찬가지다.

"아픈지는 모르잖아요"…노년층도 생각 달라

지하철에서 만난 고령 승객들은 교통약자석에 앉은 사람의 건강 상태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70대 남성 C씨는 "노약자석이라고 하면 나이 든 사람들이 앉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젊은 사람이 앉아 있으면 왜 앉았나 싶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무조건 일어나라고 하거나 사람을 때리는 건 잘못"이라며 "몸이 아파서 앉아 있다고 하면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60대 남성 D씨도 "겉으로 멀쩡해도 몸이 안 좋은 사람은 있을 수 있다"며 "자리가 필요하면 정중하게 물어보면 되는데 싸울 일까지는 아니다"고 말했다.

젊은 승객들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직장인 E씨(30대)는 "수술을 했거나 몸이 아프다는 걸 일일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젊다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비키라고 하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애가 있더라도 휠체어나 목발 등 보조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특히 신장이나 심장 등 내부기관에 장애가 있는 경우 겉모습만으로 건강 상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현행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2조는 장애인과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교통약자로 규정하고 있다. 수술 후 회복 중이거나 부상으로 오래 서 있기 어려운 사람도 이동에 불편을 겪을 수 있다.

교통약자석은 이처럼 대중교통 이용 과정에서 배려가 필요한 승객을 위해 마련됐다. 젊은 사람이 교통약자석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일반적인 규정은 없으며, 다른 승객이 강제로 자리에서 일으켜 세울 권한도 없다. 자리를 비우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때리면 형법상 폭행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일본은 '헬프마크'…미국과 영국도 표시 제도

지하철 1호선 전동차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 분홍색 좌석과 안내문으로 일반석과 구분돼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지하철 1호선 전동차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 분홍색 좌석과 안내문으로 일반석과 구분돼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해외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나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의 표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주변 승객에게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방식이다.

일본의 '헬프마크(Help Mark)'가 대표적이다. 도쿄도는 2012년부터 내부장애인과 난치병 환자, 인공관절 사용자, 임신 초기 여성 등 외관상 도움이 필요한지 알아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빨간색 바탕에 흰색 십자가와 하트가 그려진 표식을 배포하고 있다.

가방 등에 부착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주변 승객에게 배려를 요청할 수 있다. 도쿄도 복지국은 겉으로 건강해 보인다는 이유로 우선석에 앉았을 때 의심스러운 시선을 받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2024년 10월 기준 모든 도도부현이 헬프마크를 도입했다.

영국은 '히든 디서빌리티 선플라워(Hidden Disabilities Sunflower)' 제도를 운영한다. 녹색 바탕에 노란 해바라기가 그려진 목걸이나 카드를 착용하는 방식이다. 영국 철도 안내기관 내셔널레일에 따르면 모든 철도회사가 해당 표시를 인정하고 있으며, 역이나 열차에서 도움이 필요한 승객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서도 해바라기 목걸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자폐성 장애나 만성질환 등 겉으로 알아보기 어려운 장애가 있는 승객이 착용하면 공항 직원들이 필요한 안내와 지원을 제공한다.

싱가포르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은 2019년 '자리 양보를 부탁드립니다(May I have a seat please)' 스티커를 시범 도입한 뒤 2021년 목걸이와 카드로 확대했다.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일시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승객이 좌석 양보를 요청할 때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임신 초기 여성 등이 사용하는 임산부 배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일본의 헬프마크나 싱가포르의 표시 제도와 달리 내부장애인이나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 등 다양한 교통약자를 폭넓게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해외에서 사용하는 표식도 특정 좌석의 이용권을 보장하는 증명서는 아니다. 주변 승객이나 교통기관 직원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용도이며, 착용 여부는 개인이 결정한다.

교통약자석 1시간…시비 없이 끝난 체험

교통약자석을 둘러싼 갈등에서는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떻게 요청하는지도 중요하다. 몸이 불편해 자리가 필요한 승객은 양보를 부탁할 수 있지만, 이미 앉아 있는 사람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자리가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나 내부장애인은 겉모습만으로 건강 상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일본과 싱가포르 등에서 운영하는 배려 표식은 이러한 사람들이 자신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그러나 실제 지하철에서는 상대방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없는 만큼 자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나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만난 60대 여성 A씨는 "나이가 젊어도 아픈 사람은 있을 수 있다"며 "몸이 불편하다고 하면 그 말을 믿어야지 무조건 일어나라고 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어쨌든 기자가 노약자석에 앉아 있었던 1시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자의 덩치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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