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 시대, 중간관리자는 정말 사라질까? [김문경의 리더십테크](31)
[파이낸셜뉴스] AI 에이전트(AI Agent)가 스스로 시장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적의 판매 가격을 산정하며, 고객 맞춤형 제안서까지 작성한다. 사람의 지시를 기다리던 AI가 이제 자율적으로 업무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기술이 실무와 조정의 영역까지 깊숙이 파고들면서 경영자들의 계산기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AI가 중간관리자의 업무를 대신한다면, 굳이 그 많은 관리자를 계속 유지할 이유가 있을까?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에 실린 리카이푸(Kai-Fu Lee) 01.AI 최고경영자의 기고문은 이러한 조직 축소 움직임에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한다. AI가 정보 전달과 단순 실무 조정을 대신함에 따라 조직의 관리 계층은 얇아질 수 있지만, 최종 판단과 책임을 맡는 관리자의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진다는 것이다. 기업이 AI 도입을 명분으로 중간관리자를 섣불리 걷어낼 때, 그들이 감당했던 고도의 판단과 조정의 책임은 과연 누가 짊어질까?
한 기업이 영업 부서에 세 개의 AI 에이전트를 투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각각 시장 분석, 가격 산정, 고객 제안서 작성을 담당한다. 세 에이전트는 저마다 주어진 목표에 맞춰 놀라운 속도로 결과물을 도출한다. 문제는 AI가 틀린 답을 내놓을 때가 아니라, 각자의 목표에 최적화된 정답들이 모였을 때 발생한다. 점유율 확대를 위한 가격 인하 제안이 전사적인 수익성 방어 지침과 정면으로 충돌하거나, 파격적인 고객 혜택이 생산 라인에 치명적인 과부하를 일으킬 수 있다. AI가 실무를 연결할 수는 있어도, 상충하는 경영 목표 사이에서 무엇을 우선하고 그 결과에 누가 책임질 것인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맥킨지(McKinsey)가 올해 발표한 조직 분석은 이 거대한 간극을 정확히 보여준다. 조사 응답자의 80%가 AI를 통해 개인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답했지만, 이것이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졌다는 응답은 37%에 불과했다. 개인이 일을 빨리 끝내는 것과 기업이 실제로 돈을 버는 것은 별개라는 의미다. 이 간극을 메우고 단편적인 업무 결과를 전사적 성과로 통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 관리자만이 할 수 있는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이다.
나아가 조직의 성과는 관리자의 훌륭한 판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AI 전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직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도 핵심 변수다. 맥킨지의 또 다른 조사(2026년 7월)에 따르면 응답자의 70%는 자신이 AI를 활용할 준비가 되었다고 답했으나, 소속 조직이 AI 전환에 필요한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었다고 평가한 리더는 27%에 그쳤다. 사람은 이미 변화할 채비를 마쳤는데, 정작 조직의 시스템과 문화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맥킨지는 AI 활용의 전 과정에서 '조직에 대한 신뢰'가 기업 가치 창출과 직결되는 최우선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히 최신 AI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성원들이 변화의 이유를 납득하고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이 리스킬링(Reskilling)과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해야 한다. 기술에 대한 맹신보다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이 거대한 변화의 과정에서 직원들이 과연 회사를 믿고 따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기술 및 환경의 변화는 중간관리자를 평가하는 기준마저 근본적으로 뒤바꾸고 있다. 과거의 잣대가 몇 명의 직원을 통솔하는가를 묻는 인력 통제의 범위(Span of Control)였다면, 이제는 사람과 AI가 협업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복잡한 판단과 비즈니스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는가를 묻는 복잡성의 범위(Span of Complexity)로 진화했다. 관리자의 진정한 가치는 거느린 직원의 수가 아니라, 얼마나 무거운 의사결정과 성과를 책임질 수 있느냐로 증명된다.
하지만 현장의 관리자들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가트너(Gartner)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최고인사책임자(CHRO)의 79%가 현재 조직의 관리자들이 심각한 과부하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AI 도입으로 실무자의 단순 업무는 줄었을지 몰라도, 관리자가 처리해야 할 예외 상황과 판단의 복잡성까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트너는 AI 투자를 명분으로 중간관리자를 감축한 조직의 75%가 2028년까지 덜어냈던 관리직의 절반 이상을 결국 다시 채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리자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것과 조직의 '관리 기능'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뼈아픈 지적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중간관리자는 단순히 업무를 나누고 진척도를 확인하는 감시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들은 사람과 AI의 역할을 입체적으로 설계하고, 기계가 독자적으로 처리할 영역과 반드시 인간의 직관이 개입해야 할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지휘관이 되어야 한다. 부서 간 목표가 충돌할 때 비즈니스의 우선순위를 결단하고, AI가 잘못된 궤도로 향할 때 즉각 작동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구성원들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심리적 지지대가 되어주는 것 역시 리더의 막중한 책임이다.
단순히 남의 보고서를 취합해 결재선에 올리는 데 존재 이유를 두었던 관행적인 관리자라면 도태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경영진이 조직 슬림화라는 숫자에만 매몰되어 현장의 관리 계층을 무작정 도려내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의사결정의 권한은 증발하고 기계적인 실행만 남거나, 모든 책임의 무게가 최고경영자 한 사람에게 쏠린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조직 마비와 치명적인 병목의 시작이다.
AI는 인간의 노동을 기꺼이 대신하지만, 경영의 결과까지 책임져주지 않는다. 경영자가 지금 당장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은 중간관리자를 몇 명이나 줄일 수 있느냐가 아니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누가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부서 간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누가 조율하며, 그 성과에 최종적으로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성급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 이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 진정한 조직 혁신의 출발점이다.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