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일본 제품 수입만으론 안 돼" 韓 시니어시장에 던진 조언 [인터뷰]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베이비붐 세대 고령화로 한국 시장 변화 日은 인플레·엔저에 소비여력 압박 건강·돈·고립 문제에서 사업 기회 찾아야

무라타 히로유키 무라타어소시에이츠 대표가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에서 파이낸셜뉴스와 만나 한국의 시니어 산업에 대한 기회와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혜진 특파원
무라타 히로유키 무라타어소시에이츠 대표가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에서 파이낸셜뉴스와 만나 한국의 시니어 산업에 대한 기회와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혜진 특파원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시니어 비즈니스는 성공하기 어렵다."
무라타 히로유키 무라타어소시에이츠 대표(사진)는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에서 파이낸셜뉴스와 만나 고령인구 증가와 소득 수준 상승으로 한국 시니어시장의 사업 기회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에도 크게 성공한 사례가 있지만 실패한 사례가 아주 많다"며 시장 진입에 앞서 고객이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라타 히로유키 무라타어소시에이츠 대표는 일본 시니어 비즈니스 분야의 개척자로 꼽힌다. 중·고령층의 소비행동을 분석하고 이를 기업의 상품·서비스 개발로 연결해왔다. 미국 여성 전용 피트니스 브랜드 '커브스'의 일본 도입과 NTT도코모의 고령친화 휴대전화 '라쿠라쿠폰' 상품개발 지원이 대표적이다. 도호쿠대 특임교수로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고 성장한다는 '스마트 에이징'을 주창했다. 오는 12일 서울에서 열리는 '2026 fn 시니어산업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중장년에서 노후 소비층으로…달라진 韓 시장
무라타 대표는 저서 '시니어 비즈니스'가 한국에 번역 출간된 2005년 무렵과 지금을 비교했다. 당시에도 강연과 언론 인터뷰 요청이 이어질 만큼 관심은 높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이 '한국의 고령자들은 돈이 없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한국과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맞는 시점도 달랐다. 일본에서는 1947~1949년생인 단카이 세대가 은퇴를 앞두고 있었지만, 한국의 1차 베이비붐 세대인 1955~1963년생은 2005년 만 42~50세로 아직 중장년층이었다.

지금은 한국 베이비붐 세대도 노후를 맞고 있다. 올해 만 63~71세가 된다. 고령층의 규모도 커졌다. 통계청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05년 9.0%에서 2025년 20.3%로 높아졌다. 무라타 대표는 이러한 인구 변화에 소득 수준 상승이 더해지면서 한국에서 시니어 비즈니스가 성장할 여건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의 경험은 고령인구 증가만으로 소비 확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무라타 대표는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전환하고 엔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시니어의 소비여력이 압박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유 자산이 많다고 지출에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산과 달리 매달 쓸 수 있는 현금소득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자산이 있으니 비싼 상품도 살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 고객이 가격에 걸맞은 가치를 느끼는지 살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경제력뿐 아니라 생활방식에 따른 차이도 중요하다. 같은 나이라도 일을 계속하는 사람과 은퇴한 사람, 부모를 돌보는 사람과 혼자 사는 사람이 원하는 상품은 다르다. 그는 연령으로 고객을 묶기보다 몸 상태와 가족관계, 생활방식의 변화로 생기는 불안·불만·불편에서 사업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30분 운동·생활 할인…고객이 선택할 이유 만들어야
무라타 대표가 시니어의 주요 관심사로 꼽은 것은 건강과 돈, 고립 예방이다. 건강 분야에서는 자신이 일본 도입에 관여한 미국 여성 전용 피트니스 브랜드 '커브스'를 예로 들었다. 시니어 전용 시설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중고령 여성의 호응을 얻은 사례다.

그는 중고령 여성이 운동하려는 이유로 노후의 자립을 꼽았다. 고령의 부모를 돌보며 어려움을 겪은 여성들이 자신은 자녀에게 같은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무라타 대표는 "자녀에게는 자녀의 삶이 있다"며 자녀에게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생활하려는 인식에 주목했다.

커브스는 이런 중고령 여성이 운동시설을 이용할 때 느끼는 부담을 낮췄다. 그는 "일반적인 헬스장에서는 두 시간 정도 걸리기도 하지만 커브스는 30분이면 끝난다"며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집에서 가깝고, 일본 사업 도입 당시 일반적인 헬스장보다 이용료가 저렴했던 점도 강점으로 꼽았다.

여성 전용 공간에서는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운동하면서 이용자끼리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운영 방식이 일본 중고령 여성에게 맞았다고 평가했다. 2005년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에는 고령화로 커지는 수요와 매장 확대가 맞물렸다고 덧붙였다.

금융 분야에서는 금리 외에 고객을 끌어들일 수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일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고령층의 금융자산 운용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예금금리가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면 돈의 실질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일본 고령층에서는 예금에서 주식으로 자산을 옮기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무라타 대표는 "금리만으로 차별화하기는 어렵다. 많은 은행이 비슷한 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며 SBI신세이은행의 '브라이트60'을 소개했다.

계좌를 보유한 60세 이상 고객이 무료로 가입하는 회원제 서비스다. 별도의 고액 자산 보유 조건 없이 가입할 수 있으며 최상위 거래등급에 따른 예금금리·수수료 우대와 여행·숙박·건강검진 등 제휴사 혜택을 제공한다. 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27일 기준 이용자는 19만명을 넘었다.

무라타 대표는 여러 제휴기업을 확보해 다양한 혜택을 갖추는 데는 시간이 걸려 경쟁 은행이 곧바로 따라 하기 어렵다고 봤다. 은행에도 이익이 남느냐는 질문에는 제휴 구조를 설명했다. 제휴기업은 할인을 제공하는 대신 은행 회원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알릴 기회를 얻고, 은행은 본업인 금융업을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어려워진 부모…익숙한 TV로 가족 연결
고립 예방 분야에서는 떨어져 사는 부모와 자녀의 소통을 돕는 영상통화 서비스 '치카쿠'를 들었다. 일본 스타트업 치카쿠가 NTT도코모와 제공하는 서비스다.

무라타 대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고령자도 나이가 들면서 조작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지기능과 시청각 기능이 떨어지거나 손으로 조작하기 힘들어지면 사용을 중단할 수 있다. 일반 전화로 연락하더라도 자녀가 부모의 몸 상태를 살피기는 어렵다.

치카쿠는 부모에게 익숙한 TV를 활용했다. 자녀는 스마트폰으로, 부모는 TV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화한다. 무라타 대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아도 TV는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모에게 새로운 기기 사용법을 익히도록 요구하지 않아도 가족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딸이 영상으로 어머니의 움직임에서 이상을 발견해 병원 진료를 권한 사례도 소개했다. 어머니는 전화로 허리 통증을 호소했지만 딸은 상태를 알기 어려웠다. 이후 영상으로 오른발을 내딛는 모습이 이상한 것을 발견했고 어머니는 병원에서 척추관협착증을 진단받았다.

다만 AI가 가족의 역할까지 대신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무라타 대표는 일부 기업이 구상하는 'AI 딸'을 예로 들며 인건비를 줄이는 효과와 부모가 실제로 원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은 AI와의 대화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와 소통하는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에 사업을 도입할 때도 실제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라타 대표는 커브스를 예로 들며 같은 서비스라도 국가에 따라 고객층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고령층 여성의 호응이 두드러지는 반면 한국은 그보다 이용 연령층이 낮다는 것이다. 일본 커브스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50·60대 이용자가 가장 많다고 안내한다.

그는 "이미 잘 만들어진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더라도 한국 고객에게 맞는지 검토해야 한다"며 "일본의 좋은 제품을 그냥 수입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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