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감기약 63만정 녹여 필로폰 42억원어치 제조.. 감방 동기들이 차린 아파트 실험실

최승한 기자
파이낸셜뉴스

감기약으로 필로폰 '4만명분' 만든 일당…약 대준 한약사까지 13명 검거

마약 제조에 사용된 감기약. 서울경찰청 제공.
마약 제조에 사용된 감기약. 서울경찰청 제공.

[파이낸셜뉴스] 감기약에 든 슈도에페드린 성분으로 필로폰을 대량 제조한 일당과 이들에게 원료를 대준 한약사 등 13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압수된 필로폰은 1.36kg이다. 감기약을 이용한 국내 필로폰 제조 사건 가운데 최대 압수량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제조 총책 A씨 등 13명을 검거하고 이 중 4명을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제조 5명(구속 3명), 방조 3명(구속 1명), 원료 판매 3명, 약국 업주 2명이다.

A씨 등 5명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 필로폰 약 1.36kg을 제조한 혐의를 받는다. 감기약에서 추출한 슈도에페드린을 황산·염산 등 화학물질과 섞는 방식이었다. 압수된 필로폰은 시가 약 42억원어치로 4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경찰은 슈도에페드린 635g과 제조도구, 유해화학물질 등도 함께 압수하고 범죄수익 1억3000만원을 환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과거 수감 생활 중 알게 된 이들을 중심으로 공범을 모아 역할을 나눴다. 범행 장소로는 유치권 분쟁으로 장기간 비어 있던 아파트를 골랐고, CCTV와 주차 차단기로 외부인 출입을 감시했다. 제조도구와 화공약품은 경기 파주의 별도 창고에 보관했다.

일당은 지난해 4~9월 시험 제조를 반복했다. 처음 섭외한 기술자가 제조에 실패하자 과거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기술자로 교체했다. 인터넷에 공개된 해외 논문과 실험 영상, 유사 범죄 판결문까지 참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께 본격 제조에 착수해 약 8개월간 범행을 이어갔다.

원료 공급책도 줄줄이 덜미를 잡혔다. 한약사 B씨는 올해 1~6월 A씨의 필로폰 제조 사실을 알면서도 6차례에 걸쳐 감기약 1만610통(63만6600정)을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약국이 아닌 자신이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약을 판 혐의도 있다. 경찰은 기소 전 추징보전으로 B씨의 감기약 판매 수익 9500만원을 전액 환수했다. 수사 과정에서 약국 2곳과 의약품 도매업체 사이의 무자료 거래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은 세금 포탈이 의심된다며 국세청에 고발을 의뢰했다.

C씨 등 2명은 A씨 지시로 B씨에게서 감기약을 대신 받아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B씨의 동료인 약국 실장 D씨는 약사 자격 없이 A씨에게 감기약을 판 혐의다. 화공약품 판매업자 E씨 등 2명은 A씨에게 황산·염산을 팔고도 관리대장에 기재하지 않은 혐의로 송치됐다. 약국 업주 F씨 등 2명은 B씨와 D씨에 대한 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혐의(약사법 위반)로 송치됐다. A씨에게 감기약을 대량·반복 판매한 다른 약사 2명은 방조 혐의까지는 인정되지 않아 관할 행정기관에 처분이 의뢰됐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해 잠복과 채증, 압수수색 끝에 올해 6월 제조 피의자들을 검거했다. 이후 통신수사와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으로 확보한 증거를 분석해 원료 공급 경로를 역추적했고, 관련자 전원을 붙잡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슈도에페드린 함유 일반의약품에 대해 판매량 제한과 구입 목적 확인 등 관리방안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경찰은 처방 없이도 살 수 있는 현행 체계로는 마약 제조 악용을 사전에 막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식약처에 해당 감기약의 전문의약품 전환 지정 등 제도 개선을 공식 요청했다. 대한약사회에도 판매 시 주의사항 안내를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앞으로도 마약류 제조에 악용될 수 있는 의약품과 유해화학물질의 유통 과정을 면밀히 추적해 불법 제조 차단에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email protected] 최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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