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삼성·SK HBM, 중국서 4000달러에 거래"…미국 수출통제 뚫은 밀수 시장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출처=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한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를 피해 중국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가 서버 프로세서와 함께 포장해 수출한 뒤 중국에서 HBM만 분리하는 방식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메모리가 부족해지면서 중국 내 밀수 시장에서는 HBM 칩 1개가 약 4000달러(약 538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2일(현지시간)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중국으로 한국산 HBM을 밀반입하는 업자들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 규정을 우회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밀수 과정에서는 HBM과 가격이 저렴한 서버 프로세서를 하나의 기판에 결합하는 패키징 기술이 사용된다. 이를 통해 제품을 HBM이 아닌 서버 프로세서로 분류해 수출통제를 피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수출통제 규정에서 패키지의 연산 성능을 판단할 때 메모리 칩보다 서버 프로세서의 성능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을 이용한 수법이다.

중국에 도착한 패키지는 현지에서 분해된다. 기술자들이 열을 가해 납땜 부분을 녹인 다음 HBM 스택을 분리해 확보하고, 함께 결합돼 있던 서버 프로세서는 버리는 방식이다.

다만 메모리를 분리하는 작업에는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가열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거나 높은 온도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내부 메모리 스택이 변형되거나 균열이 생길 수 있어 제품이 손상될 위험도 크다.

이처럼 제품이 파손될 가능성에도 밀수가 이어지는 배경에는 중국의 높은 HBM 수요가 있다. 중국 내 공급 부족으로 거래가격이 상승하면서 밀수업자들이 큰 차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밀수 HBM을 중개하는 20대 업자는 디인포메이션에 "1년 전만 해도 HBM3E 한 개가 중국에서 수백달러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약 4000달러에 거래된다"고 밝혔다.

AI 반도체 패키지 1개를 만드는 데는 일반적으로 HBM 6~8개가 사용된다. 중국 밀수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HBM 구입에만 2만4000~3만2000달러가 필요한 셈이다. AI 칩과 서버 장비, 전력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밀반입한 한국산 HBM의 주요 판매처는 중국 통신장비 및 IT 기업 화웨이의 고객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 공급망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화웨이는 최근 일부 고객사에 차세대 AI 반도체 '어센드 960DT'의 메모리 구성에 대해 설명했다. 해당 제품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이 상당한 비중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화웨이 측은 어센드 960DT의 성능이 기존 제품의 2배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 제품이 중국에서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고성능 프로세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국 반도체 업체에서 HBM을 직접 확보하기 어려워진 화웨이는 일부 AI 칩 구매 고객에게 필요한 메모리를 직접 구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기업들이 AI 프로세서 자체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제품의 성능을 뒷받침할 핵심 메모리에서는 여전히 한국산 HBM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적층해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인 메모리다. AI 프로세서의 연산 능력이 높더라도 HBM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전체 시스템의 처리 성능이 제한될 수 있다.

딥시크와 문샷을 비롯한 중국 AI 기업들도 대규모 모델 학습과 서비스 확대를 위해 고성능 프로세서와 HBM을 확보해야 한다. AI 연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려면 두 부품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HBM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며, 중국의 자체 생산량도 극히 적은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HBM 시장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중국 기업들은 한국산 제품 확보에 나서고 있다.

디인포메이션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중국 내 HBM 밀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직접 제품을 판매하지 않았더라도 자사 메모리가 중국산 AI 반도체에서 발견되면 미국 정부의 조사나 감시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2024년 TSMC가 생산한 반도체가 화웨이 제품에서 발견되자 미국 정부는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미국은 TSMC에 중국으로의 AI 반도체 수출을 전면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SK하이닉스는 관련 법규를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 측은 "미국과 한국의 수출통제 규정을 포함해 관련 법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2020년 미국의 수출 규제가 시행된 이후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HBM을 불법으로 반입하는 일부 업자들은 이러한 행위를 자국 반도체 산업에 도움이 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디인포메이션과 인터뷰한 중국의 20대 메모리 중개업자는 자신의 활동을 밀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HBM을 중국에 반입하는 일이 "조국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밀수에 참여하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기존 거래 경로가 당국에 적발될 가능성을 걱정하는 업자들도 있다.

한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구매해 중국으로 반입해 온 한 업자는 경쟁자가 크게 늘어난 상황을 고려해 관련 사업에서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당 업자는 "내가 사용하는 경로를 이제 다른 여러 업자도 함께 이용하고 있다"며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규제 당국에 발각되기도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수출통제 단속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한국과 미국의 단속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라며 "내년에는 회사 지분 대부분을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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