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日'할머니 찻집'에서 배운 돌봄
기름이 펄펄 끓는 냄비 앞에 여든여섯살 할머니가 서 있었다. 긴 젓가락으로 돈가스를 능숙하게 뒤집었다. 건져낸 돈가스는 망 위에 올려 기름을 뺐다. 지난달 24일 찾은 일본 후쿠오카현 가스가시의 '바아찬깃사(ばあちゃん喫茶·할머니 찻집)' 주방. 후와 요코씨는 그날 판매할 점심을 만들고 있었다. 주방에 들어가 말을 걸었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그녀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조리대에는 접시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누군가는 튀기고, 누군가는 썰고, 누군가는 음식을 나눠 담았다. 식사를 대접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할머니들이 다른 사람의 한끼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친정 엄마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다. "힘드니까 쉬세요." 명절이면 "음식 하지 말고 밖에서 그냥 사 먹어요." 그런데도 엄마는 음식을 만드셨고, 손목이 아프다며 힘들어하셨다. 나는 그런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사 먹으면 편할 텐데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하실까 싶었다.
엄마를 위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계속 음식을 만드는지는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정말 쉬고 싶으신지, 누군가 거들어주면 되는지, 힘들어도 직접 만들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낯선 나라의 할머니에게는 일하는 즐거움에 대해 물으면서 정작 엄마에게는 일 좀 그만하라는 말부터 했던 셈이다.
'바아찬깃사'를 운영하는 우키하노다카라의 오쿠마 미쓰루 대표에게도 물었다. 식품을 만들어 판매하는데 굳이 찻집까지 운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식품만 만들 때는 손님을 직접 만날 일이 적지만 찻집에서는 "고맙다" "맛있다"는 말을 듣고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금전적인 가치와는 또 다른 가치"라고 했다. 음식을 만드는 수고는 같아도 그 뒤에 누가 기다리는지에 따라 일의 의미는 달라졌다. 일을 끝내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손님을 만나고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 즐거움이라면 대신해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고 엄마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가족의 기대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놓지 못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힘들어도 계속하시는 모습을 보고 '역할이 있어야 건강하다'는 것 역시 내 해석이다. 쉬라고만 하는 것과 계속하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빠뜨린 것은 엄마의 뜻이었다.
도쿄 메구로구의 치매 카페 'D카페' 취재 현장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고령자들이 전문가들과 주거와 재산, 앞으로의 돌봄을 얘기하는 모임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법서사는 이 자리를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해 두자는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고령자가 어디서 살고 어떤 도움을 받을지, 자신의 생활에 관한 결정을 미리 준비한다는 뜻이었다.
돌봄을 받는다고 결정할 권리까지 넘기는 것은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늘어날수록 무엇을 대신하고 무엇을 본인에게 맡길지 더 세심하게 물어야 한다. 가족이라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묻지 않게 되는 것들도 있다.
기업이 고령자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필요를 짐작하는 것과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다 안다고 여기는 것은 닮아 있다. 편리한 상품과 안전한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이용자가 무엇을 계속하고 싶은지부터 들어야 한다.
고령자에게 일을 권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쉬고 싶은 사람은 쉬고, 계속하고 싶은 사람은 도움을 받으며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수고를 덜어주는 일과 그 사람의 몫을 없애는 일은 같지 않다.
다음 명절에도 엄마가 음식을 하시겠다고 하면 나는 여전히 걱정할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그냥 사 먹자"는 말부터 하지 않으려 한다. 직접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도우면 좋을지 먼저 여쭤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