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부탁으로 써준 사실확인서, 가볍게 서명해도 될까 [원희영 변호사의 사건이 된 일상]
[파이낸셜뉴스] "친구가 써온 대로 서명만 했는데, 저도 법원에 가야 하나요?"
친구가 소송에 필요하다며 사실확인서 한 장을 내민다. "이름만 써주면 돼. 법원에 갈 일은 없어." 서명을 부탁받은 사람은 친구의 억울한 사정을 여러 번 들었다. 문서에도 익숙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문장이 조금 단정적으로 보이지만, 법원에 내는 글이니 원래 그렇게 쓰는가 보다 싶어 서명한다.
얼마 뒤 친구가 증인으로 법원에 나와달라고 한다. 그제야 사실확인서를 다시 읽어보니 직접 보지 못한 장면까지 자신이 확인한 것처럼 적혀 있다. 얼마 뒤 법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요구서가 도착한다.
■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내 목격담이 돼서는 안 된다
술자리에 함께 있던 친구가 폭행 사건에 휘말렸다고 하자. 당시 잠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다툼의 시작을 모른다. 친구가 "상대방이 먼저 때렸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확인서에 "상대방이 먼저 친구를 때리는 것을 보았다"고 쓰면,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자신의 목격담으로 바뀐다.
이때 적을 수 있는 내용은 자리를 비운 시간과 돌아온 뒤 본 상황이다. 친구에게 들은 말도 그 출처를 밝히면 된다. "친구에게 상대방이 먼저 때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쓰는 것이다. 친구가 그 정도로는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보지 못한 장면을 봤다고 써줄 수는 없다.
친구나 대리인이 써준 초안도 서명할 사람이 읽고 고쳐야 한다. "다투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용은 알아듣지 못했다"는 설명이 "상대방이 친구에게 욕설했다"로 바뀌어 있을 수 있다. 기억나지 않는 날짜나 횟수를 문맥에 맞춰 채워 넣을 이유도 없다. 메시지나 사진으로 확인한 내용이라면 그 자료를 보고 알았다고 적으면 된다.
■ 법정에서는 서명한 사람이 답해야 한다
사실확인서의 내용이 다투어지면 법원은 서명한 사람을 증인으로 불러 확인할 수 있다. 친구가 법원에 갈 일이 없다고 장담했어도, 법원의 출석요구를 받으면 응해야 한다. 민사재판에서는 상대방이 그 사람을 증인으로 신청할 수도 있다.
민사재판에서 법원의 출석요구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나오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와 불출석으로 생긴 소송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과태료 재판을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다시 불출석하면 7일 이내로 유치장이나 구치소 등에 가두는 감치에 처해질 수 있고, 형사재판에서도 증인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같은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두 재판 모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한 증인을 강제로 데려오는 구인도 가능하다. 입원 등으로 출석이 어렵다면 증빙자료를 미리 제출하고 법원의 안내를 확인해야 한다. 사유서를 냈다고 출석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시 어디에 있었습니까." "자리를 비웠다면서 때리는 장면은 어떻게 봤습니까." 법정에서는 문서에 적힌 말과 실제 경험이 맞는지 묻는다. "친구가 써온 문서라 잘 모른다"는 답은 친구의 주장에 힘을 보태기는커녕 사실확인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사실확인서에 거짓 내용을 적은 것만으로 위증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서명한 내용과 말이 달라질까 봐 법정에서도 거짓말을 이어갈 때다. 법률에 따라 선서한 증인이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말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민사재판의 증인도 마찬가지다.
■ 거짓 고소를 도우면 나도 처벌받을 수 있다
법정에 서기 전부터 형사책임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친구가 상대방을 처벌받게 하려고 없는 일을 꾸며 고소하려는데, 그 사정을 알면서 "현장에서 봤다"는 사실확인서를 써줬다고 하자. 친구가 그 문서를 붙여 허위 고소를 했다면 서명한 사람도 무고죄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고소장에 자기 이름이 없다고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받아내려는 소송에서도 이런 부탁은 위험하다. 친구가 빌려준 적 없는 돈을 청구한다는 것을 알면서 "돈을 빌려주는 장면을 봤다"고 써줘 법원을 속이는 데 가담했다면 소송사기의 공범이 될 수 있다. 법원은 그 문서를 근거로 상대방에게 돈을 갚으라는 판결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도 확인서가 필요하다며 "그 사람도 동의할 테니 대신 서명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명의자의 허락 없이 그 사람 명의로 확인서를 만들면 사문서위조죄, 이를 진짜 문서인 것처럼 제출하면 위조사문서행사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타인의 형사사건에 제출할 확인서를 만들면 증거위조죄도 문제 될 수 있다.
이미 사실과 다른 확인서를 건넸다면 틀린 문장과 그 이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제출 전에는 수정본으로 바꾸고, 이미 제출했다면 잘못된 내용과 정정 이유를 적어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친구가 곤란해질까 봐 그대로 두면, 법정에서 자신이 설명해야 할 거짓말이 남는다.
서명 전에는 판사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친구에게 들었습니다"라고 답할 내용이라면, 확인서에도 그렇게 쓰면 된다.
[필자 소개] 원희영 변호사는 파이낸셜뉴스 기자 출신으로, 현재 법무법인 YK에서 형사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언론정보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평범한 일상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살피고, 사건의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쟁점과 실질적인 대응 방법을 전한다.
[email protected] 이환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