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를 놓지 못하는 팀장에게…삼성맨 36년의 조언 [직장인의 주말 서재]
조상호 전 삼성전자 부사장의 현장 기록
위임·신뢰와 공정·책임의 기준을 조명
실적 압박 속 사람을 키우는 리더십 강조
#1. 직원의 보고서를 밤마다 빨간 펜으로 고치던 리더가 있었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호텔 방에서 그는 자신이 조직의 병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을 더 꼼꼼히 챙기려던 사람이 정작 조직의 흐름을 막고 있었던 셈이다.
#2. 채용 면접에서 한 지원자가 면접관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나를 성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까?" 회사가 사람을 고르는 자리에서, 지원자는 자신을 성장시킬 리더인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삼성전자에서 36년을 보낸 조상호 전 부사장의 신간 '삼성맨 36년, 일보다 사람이 어려웠다'(휴먼앤북스)에 담긴 장면들이다. 유럽·동남아 총괄을 지낸 그는 리더가 일을 얼마나 많이 해내는지에 앞서, 함께 일하는 사람의 역량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묻는다. 그의 경험은 일을 맡길 범위와 사람을 평가할 기준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팀원의 성장을 위한 권한 위임
팀원이 가져온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직접 고치는 편이 빠를 수 있다. 당장의 완성도는 높아져도 매번 리더가 고쳐줘야 한다면 팀의 역량이 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고서를 붙든 리더의 일화는 성실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조직의 문제를 보여준다.
저자는 단기 실적을 독촉하기보다 성과를 지속해서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구성원의 역량을 키우는 데 무게를 둔다. 현장을 아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자원을 나누는 것이 리더의 일이라는 설명이다. 동료에게 일을 맡겨야 자신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생기고, 그 시간을 다음 사업과 조직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면접장에서 지원자가 던진 질문도 이 대목과 연결된다. 상사는 성과를 기대하고, 직원은 그 조직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묻는다. 일을 잘 맡긴다는 것은 결과를 요구하는 데 더해 그 결과를 낼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물론 결정권 없이 업무만 넘기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방식까지 위임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무엇을 맡기고 어디까지 지원할지 정하지 않은 신뢰는 직원에게 막연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성과와 원칙을 살피는 공정한 평가
일을 맡긴 뒤에는 그 결과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가 남는다. 책에는 성과가 좋은 직원을 내보낸 일과 원칙을 지키다 부적응자로 몰린 직원을 보호한 경험이 나온다. 사람을 평가하고 조직의 원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저자가 마주한 선택들이다.
'사람들은 기준보다 예외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장 제목은 이런 판단이 조직에 남기는 영향을 짚는다. 실적이 좋은 직원에게만 예외를 허용하면 팀원들은 원칙이 누구에게 적용되는지 의심하게 된다. 원칙을 따른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다면 다음에도 같은 선택을 하기는 어렵다. 리더의 인사 판단은 당사자의 거취를 넘어 다른 팀원들의 일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인사권의 범위에 따라 적용 방식은 달라진다. 직원의 거취를 결정할 수 없는 팀장이라도 업무를 배분하고 성과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누구의 기여를 인정하는지, 같은 문제에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지, 원칙에 따른 팀원의 판단을 상부에 설명하고 뒷받침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책 속 경영자의 경험을 자신의 일에 비춰볼 지점도 여기에 있다.
[email protected] 장인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