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해외에서 복통·설사·구토, 며칠 참을 수 있을까

변옥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증상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장 완전히 쉬게 해야
구토 멎으면 BRAT 식이로 천천히 식사 재개
프로바이오틱스와 간단한 보조 요법도 도움
온병원 소화기내과 "고열·혈변 등 위험신호 주의"

[파이낸셜뉴스] 최근 동남아를 여행하던 60대 A씨는 현지 식사 후 갑작스러운 복통과 함께 심한 설사와 구토에 시달렸다. 언어 장벽과 응급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 현지 병원을 찾지 못한 A씨는 나흘 넘게 스스로 증상을 관리하며 버텼고, 다행히 회복됐다. 이런 경험은 해외여행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일이다. 실제로 해외여행자 설사는 여행객의 20∼60%가 경험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하지만 문제는 60대 이상의 고령자에게 있다.

부산 온병원 소화기내과 황종호 과장(소화기내과전문의)은 14일 "고령자는 탈수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신부전이나 의식 저하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젊은 사람보다 훨씬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럼 해외에서 이런 증상이 생겼을 때 어떻게 단계별로 대응할 수 있는지 A씨의 사례를 바탕으로 자세히 알아보자.

복통과 설시 등 증상이 나타나면 일단 모든 음식 섭취를 중단하라.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탈수를 막는 것이다. 현지 약국에서 경구 수분 보충염(ORS)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ORS를 물에 타서 한 번에 많이 마시지 말고, 한 모금씩 자주 마시는 것이 효과적이다. 만약 ORS가 없다면, 물 1리터에 설탕 6작은술(약 18g)과 소금 반 작은술(약 3g)을 넣어 직접 만들 수 있다. 이온음료를 사용할 때는 물과 1대1로 희석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이온음료에 들어 있는 당분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설사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황종호 과장은 "가장 흔한 실수가 음료를 너무 많이 한꺼번에 마시는 것"이라며 "소량씩 자주, 적어도 5분에 한 번씩 몇 모금씩이라도 계속 보충해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현지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약물들도 증상에 따라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설사가 아주 잦고 물처럼 묽은 경우에는 로페라미드(이모디움) 성분의 지사제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체온이 38.5도 이상으로 높아지거나 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경우에는 이 약을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황 과장은 "로페라미드는 장운동을 멈추게 하여 세균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혈변이나 고열이 동반된 세균성 장염에서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만약 설사가 심하지 않고 복통이 함께 있다면 비스무트 제제(펩토비스몰)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약도 이틀 이상 계속 복용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복통이 쥐어짜는 듯이 심할 때는 부스코판 같은 진경제를 고려할 수 있다. 다만 녹내장이나 전립선비대증이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구토가 심해서 음료조차 삼키기 어려운 경우에는 돔페리돈(모틸리움) 성분의 구토 억제제를 고려해볼 수 있다.

구토가 멎고 갈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음식을 조금씩 먹어볼 수 있다. 이때 권장되는 식단을 'BRAT' 식이라고 부른다. 바나나(Banana), 흰쌀 죽(Rice), 사과소스(Applesauce), 그리고 식빵(Toast)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이 외에도 삶은 감자, 닭고기로 끓인 맑은 육수, 무가당 크래커 같은 음식도 좋다. 반면에 유제품, 커피, 술, 기름진 음식, 매운 음식, 생으로 된 채소는 최소 3∼4일 동안 반드시 피해야 한다.

특히 사카로미세스 불라디이(S. boulardii)라는 균주가 들어 있는 프로바이오틱스는 급성 설사의 지속 기간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따뜻한 물병으로 배를 따뜻하게 찜질해주면 장의 경련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가 대처를 하더라도 증상에 따라 즉시 현지 병원을 찾아야 한다. △24시간 안에 물 같은 설사를 6번 이상 하면서 수분 섭취가 거의 안 되는 경우, △변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타르처럼 검은색 변을 보는 경우, △체온이 39도 이상으로 높아지거나 38.5도 이상의 열이 이틀 동안 계속되는 경우, △12시간 이상 소변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입이 극도로 마르며 심하게 어지러운 경우, △복통이 점점 심해지면서 배의 특정 한 부위만 아픈 경우, 그리고 △의식이 흐려지거나 호흡이 가쁘고 근육이 무력해지는 경우 등이다.

황 과장은 "고령자일수록 갈증을 느끼는 능력이 떨어져 탈수가 빠르게 진행되므로, 이 같은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주저하지 말고 현지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여행지에서 돌아왔는데도 설사나 복통 증상이 5일 이상 계속된다면, 병원에서 기생충이나 세균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분변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또한 여행 중에 항생제(시프로플록사신, 아지트로마이신 등)를 의사의 처방 없이 스스로 복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을 만들거나 항생제 자체로 인한 설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주요 의약품들을 의료 키트에 넣어두는 것도 안전하고 바람직하다. 경구 수분 보충염(ORS) 포켓용, 비스무트 제제나 로페라미드(단, 사용 조건을 반드시 숙지할 것), 사카로미세스 불라디이 함유 프로바이오틱스, 진경제(부스코판), 휴대용 체온계, 그리고 현지 응급의료기관 주소와 원격의료 앱 정보다.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이명진 온병원 소화기내과 과장. 온병원 제공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이명진 온병원 소화기내과 과장. 온병원 제공

온병원 소화기내과 이명진 과장은 "해외여행자 설사의 90%는 특별한 치료 없이 3∼5일 사이에 자연히 회복되지만 노년층이나 평소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자가 대처 중에 위험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하고, "미리 준비하고, 단계별로 침착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기억해두면 건강한 여행을 마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


#복통 #설사 #구토 #로페라미드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