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원숭이의 셈법/김대래 신라대 국제비즈니스학부 교수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13 14:20

수정 2014.11.07 00:04



조삼모사라는 말이 있다. 원숭이의 어리석음에 빗대어 잔꾀와 변덕을 질책하는 말이다. 아침에 세개, 저녁에 네개의 도토리를 주겠다는 제안에 화를 내던 원숭이들이 아침에 네개, 저녁에 세개를 주겠다는 말에 모두 기뻐했다는 중국 송나라 시대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하루에 받는 개수는 똑같은 데도 눈앞의 이익에 집착한 원숭이의 행동을 자신있게 비난할 수 있을까. 경제분석의 주요한 요소의 하나인 시간이라는 개념을 넣어보면 사람들의 행동도 원숭이의 셈법에서 크게 자유로울 것 같지 않다. 아침에 받는 것은 확실하지만 저녁은 아침에 비해 확실함이 떨어진다. 위험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아침에 받을 수 있는 개수를 저녁으로 기꺼이 미루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의 이득보다는 일단 현찰을 챙기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사회 전체적으로도 역시 유효하다. 지금 고생을 하면 미래에 더 큰 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당장에 닥쳐올 현재의 고통에 대해 더 민감하다. 반대로 뒷날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도 현재에 이득이 되는 것이면 환영을 받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다.

18년 동안 미국 경제를 주물러온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달 말 퇴임했다. 재임기간 낮은 실업률과 물가안정, 그리고 높은 성장을 동시에 달성한 그린스펀의 공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랫동안의 고성장으로 마치 경기변동도 없애버린 것 같이 보였던 ‘신경제’의 신화를 누가 함부로 비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그린스펀의 성공은 미래에 대한,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담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신경제가 회자되는 동안 미국에서는 기록적인 가계부채와 무역적자, 그리고 재정적자가 지속됐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700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저축률은 대공황기인 지난 1933년 이후 72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그리고 가계부채는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그것은 미래의 부채다. 저금리에서 촉발된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의 활황, 낙관적인 전망에 기초한 소비지출의 증가추세가 거꾸로 방향을 잡을 때, 그러한 부담들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린스펀의 성공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이러한 미래의 부담이 얼마나 부드럽게 해결되는가를 기다려야 정확하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저출산과 고령화는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나타나고 있는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것은 인류가 일찍이 겪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심각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저출산을 극복, 일을 할 수 있는 노동력을 확보하고 노인들에게 노년의 소득을 마련해 주는 것은 이 시대의 핵심적인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의 연금체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자신이 넣는 금액보다 더 많이 타가도록 되어 있는 한 연기금의 고갈은 피할 수 없다. 해결방법은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타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낳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해 줘야 한다.

문제는 돈이다. 대통령의 시정 연설 이후 새해부터 사람들이 모이면 세금 얘기다. 세금폭탄이 터진다 해도 전혀 손해볼 것 없는 사람들까지 호들갑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자. 언제까지 문제를 덮어만 둘 것인가. 지난해 11월 타계한 피터 드러커의 어법을 빌린다면 부모세대들이 충분한 연기금을 축적하지 않는 것은 자식세대에 대한 중대한 ‘약탈’이다.

더욱이 커오는 세대들이 활발한 생산활동으로 연기금을 지속적으로 키워주지 않는다면 지금의 저축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받아들이자는 제안들은 봇물 터지듯 하는 비난 속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원숭이의 셈법을 사람들은 비웃고 있지만 사실 요사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 모습이 원숭이의 셈법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아침에 3개를 받고 저녁에 4개를 받아도 좋다는 현명함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이것만이 미래에 다가올 아버지와 아들의 한판 싸움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데도 말이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