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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신년기획] IMF10년 한국경제 ‘현주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2.31 15:51

수정 2014.11.04 14:29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1996년 한해동안 국제자본은 국내 주식과 채권등의 매입을 통해 212억달러나 국내로 유입됐다. 당시로서의 한국경제는 7%대의 성장률을 보이는 등 양호했고 국제금융시장에서의 평가도 호의적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96년 OECD가입과 함께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대규모로 차입했다. 차입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1997년들어 국제자본은 태도를 바꿔 긴축 또는 회수기조로 돌아서게 된다. 즉 IMF 외환위기는 단기간에 대규모 외국자본이 국내에 유입되었다가 다시 유출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방만한 기업에 금융충격이 원인

1997년 1월 한보의 부도와 함께 외국자본은 철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보에 이어 그해 4월 삼미, 진로, 대농 등 대기업의 연쇄부도현상이 발생하게 되자 우리나라는 대외신인도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로인해 금융기관의 해외채무 만기연장이 거부되고, 상환압력을 받게 됐다. 제일은행, 조흥은행, 외환은행의 장기차입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됐고 제일은행의 신용도는 정크본드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7월 기아자동차의 부도유예협약이 체결되고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감이 심화됐다. 특히 그해 10월 최종부도처리된 기아자동차사례는 한국경제의 관리능력 부재를 보여줌으로써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를 또 한번 잃는 계기가 된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낮추기 시작했다.

97년 10월 한달동안 외국인은 1조원이상의 주식을 순매도했고, 일부 국책은행조차 장기차입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내외상황이 악화됐다. 급기야 민간부분에서의 대규모 단기외채 상환요구가 발생했고, 당시 가용 외환보유액 200억달러 내외를 가지고 우리나라로서는 600억달러가 넘는 단기외채를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이었다. 우리나라는 11월 들어서 해외 단기채무 상환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고, 최종적으로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외환위기는 극복됐으나…

외환위기가 한국경제에 남긴것은 1700억달러가 넘는 외채와 부실에 허덕이는 기업과 금융기관이었다. 기업들의 연쇄도산이 일어났고 실업자가 속출했다. 물가는 급격히 상승했으며 부동산, 주식도 연일 폭락했다. 사회전반에 걸친 고통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 당국은 IMF 구제금융을 통해 단기유동성을 해결했으며, 신속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부실을 정리해나갔다. 이와함께 외환위기를 ‘한국경제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로 보고 금융, 기업, 노동, 정부의 4대부문에 대한 전방위 구조개혁에 나선다.

정부당국의 이같은 조치들은 상당한 성과를 이룬다. 가장 대표적인 지표가 1인당 GDP증가율이다. 1인당 GDP 증가율은 경제의 전반적 상황을 대변하며 국민 후생수준 변화를 반영한다. 한국의 1인당 GDP 증가율의 연간 평균(산술평균)값은 위기 전 6.2%에서 위기 이듬해인 98년 -7.6%까지 급락한다. 그리고 위기 직후 2.9%로 반등한 뒤 최근 5년간(2001∼05년) 3.9%로 회복한다. 아직 위기 전 수준에는 2∼3%p 못미치지만, 97년 한국과 함께 외환위기를 겪었던 동아시아 4개국(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지사)에 비교해보면 회복 속도가 비교적 빨랐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위기 발생연도 이듬해부터 7년 동안의 1인당 GDP 증가율의 평균값을 구해 보면 한국이 5.1%로 동아시아 4개국(3.1%)보다도 높다.

물가 움직임도 안정적이었다. 한국의 위기 전 연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0%로 동아시아(5.9%)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위기 발생 직후 3년간 3.5%로 떨어져 물가관리가 잘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경제는 대외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변신해 외환위기 재발가능성이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외화유동성이 개선됐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국제기준 이상의 수준으로 높아지는 성과를 거두었다.

■과잉규제에 잃어버린 역동성

하지만 140조원이라는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등 당시 극복과정에서 치러야했던 비용은 막대한 것이었다. 1998년 수많은 기업의 부도로 한때 소재, 부품, 조립으로 연결되는 산업네트워크가 무너지면서 산업기반이 유실되어 성장잠재력이 훼손됐고 이는 이후 경제성장에 심각한 장애를 유발했다.

시스템개혁도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개혁의 핵심은 금융과 기업에 대한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금융기관에는 엄격한 BIS 자기자본비율 기준을 충족하도록 했다.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해외자본의 진입을 전면적으로 허용했다. 외국자본의 국내은행 진입과 주식시장 진입을 완전히 자유화하고 주주권을 강화함으로써 해외자본은 국내기업의 강력한 감시세력으로 등장했다.

이중삼중으로 기업감시와 견제장치가 만들어진 결과는 의도하지 않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금융기관은 기업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기 보다는 아예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회피하는 보수적 행태를 보였고 기업도 안정을 강조하는 수비적 경영으로 대응했다. 저투자현상이 고착화된것이다.

근년 들어 경제활력 저하 양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설비투자 부진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설비투자 동향에 큰 영향을 받는 유형자산 증가율은 외환위기 이전 15.4%에서 위기 직후 6.5%로 감소한 뒤 다시 최근 5년간 1.8%로 떨어졌다.

■중산층 붕괴와 소비위축

또한 초기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산층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소득불균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7년 0.28에서 1998년 0.32로 급등했다. 이후 지니계수는 0.3을 웃돌며 큰 변동이 없다. 붕괴된 중산층이 다시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시구조조정 체제가 자리잡으면서 고용이 줄었으며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는 등 고용구조가 불안정해졌고 이는 소비제약요인으로 작용했다.

민간소비는 2000년 이후 2005년까지 연평균 2.8%의 증가세를 보여 같은 기간의 경제성장률인 4.5%를 하회했다. 전문가들은 주요원인으로 카드버블로 인한 가계부채, 신용불량자 증가와 주택가격버블등이 소비심리를 위축시켰다고 보고 있다. 카드버블은 정부가 내수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권장하면서부터 시작�c다.
2002년믈 264만명이던 신용불량자는 2003년말 372만명으로 급증세를 보였다. 이 점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로서 존재하고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IMF 극복과정에서 성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질적인 도약에 실패하면서 저성장, 성장동력부재, 신용대란, 부동산 버블 붕괴 및 가계부실화 등 또 다른 형식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yscho@fnnews.com조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