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지역 ‘라부안’ 더이상 피난처 아니다
외국인이나 외국계펀드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국적을 두는 '조세회피지역' 중심지가 바뀌고 있다. 조세회피지역이더라도 외국 자본을 규제하는 지역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세회피지역(Tax haven)은 이자와 배당소득세, 법인세가 면제되는 지역을 말한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한국에서 관심을 끌었던 말레이시아의 작은 섬 '라부안'. 이머징 마켓(아시아 시장)에 투자하는 헤지펀드 등 투자자들이 이름 뿐인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여기에 두고 국내주식 투자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한국에서 론스타 등 외국계 펀드의 탈세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정부가 지난해 6월 라부안 소속 법인에도 세금을 원천징수(원천징수절차 특례 적용지역 지정)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지역에 대한 메리트가 뚝 떨어졌다.
라부안에 소재지를 두고 있는 외국 법인이나 비거주자가 국내에서 이자·배당 소득을 올리거나 주식매각 차익을 얻으면 세금을 부과키로 한 것이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현재 국적별 상장 보유주식 시가총액 대비 보유현황(코스닥시장 기준)은 말레이시아 라부안 비중이 전체의 0.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라부안 보유비중은 지난 2005년·2006년 말 현재 각각 2.2%, 2.3%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가 조세회피 특례지역으로 지정해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힌 이후 이 지역 펀드들의 한국내 투자 비중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반면, 다른 조세회피지역인 케이만아일랜드 국적의 한국증시 투자 비중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만아일랜드의 국내 주식 보유비중은 지난 2005년 10.1%에서 지난해 말 14.4%, 지난 2월 말 현재 15.6%로 증가했다.
2월 말 현재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외국인투자가 가운데 국적이 케이만아일랜드인 투자가는 모두 1367명(법인포함)으로 미국(7762명), 일본(1719명), 영국(1635명)에 이어 네번째로 많다.
실제로 본지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외국계펀드들의 국내 상장사 지분변동 현황 조사결과 미국 국적 펀드의 매매건수는 50여건에 달했다. 이어 케이먼아일랜드 국적 펀드들의 매매건수는 20건, 홍콩 18건, 룩셈부르크 8건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라부안이 있는 말레이시아 국적 펀드의 매매 건수는 1건에 불과했다.
코스피시장에서의 순매수 규모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케이만아일랜드는 지난 2월에만 5000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밖에 룩셈부르크, 싱가폴 투자가들도 각각 3000억원을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돈세탁과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지역도 국가별 규제 여부에 따라 중심지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정부가 다른 조세회피지역에 대해 추가 규제를 할 경우 동북아 금융허브를 꿈꾸는 한국에 필수적인 외국인 투자가들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국제조사과 관계자는 "조세회피 특례지역은 현재로선 라부안 말고는 지정된 곳이 없다"며 "당분간 지정 계획이 없으며 국세청의 건의가 있을 경우에 검토해볼 수 있는데 국세청으로부터 들어온 건의가 없다"고 말했다.
조세회피특례지역으로 지정 하기 위해서는 라부안의 경우처럼 국세청이 재경부로 공문을 보내와 협조를 요청하거나 지정을 건의해야만 한다. 하지만 국가간에 서로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인 만큼 외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까지 국세청으로부터 재경부에 요청된 건의도 없는 상태다.
/sdpark@fnnews.com 박승덕 김문호 김재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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