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사채에 수수료 적용 방침 ‘약발’ 먹혀
#1. 지난해 중견기업 L사장은 은행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설비투자를 위해서 회사채 발행을 고민하고 있던 L사장에게 회사가 사모사채를 발행하면 낮은 금리에 모두 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L사장은 사모사채를 발행할 경우 유가증권 발행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데다 발행금리까지 낮아지는 효과가 있어 이를 수락했다. 사모사채는 은행이 모두 인수했다.
#2.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H사 A전무는 지금도 지난해 생각만 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기업들이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는 대신 사모사채를 발행하고 모두 은행에 넘기는 사례가 증가해 평가시장 자체가 축소됐기 때문이다. A전무는 "은행이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를 사모로 인수하게 되면 회사채에 대해 신용평가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난해 회사채 평가시장이 2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지난 2월 정부가 사모사채에 대한 규제방침을 밝히면서 채권 및 평가시장이 정상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위축된 회사채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있고 발행 물량을 받쳐줄 수 있는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유동성 부족을 겪던 회사채 시장이 공급과 수요에서 균형을 맞춰가며 '자금조달 창구'라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해 회사채 시장을 크게 왜곡시켰던 은행의 무차별적인 사모사채 인수에 대해 감독당국이 오는 7월부터 사모사채에도 발행부담금을 부과키로 결정, 은행 사모사채 규모는 앞으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재정경제부는 은행 사모사채 발행부담금 부과 시행령 시기 및 내용을 놓고 법제처와 협의중이다.
또 사모사채 대부분의 만기가 2∼3년인 것을 고려할 때 향후 회사채 시장은 발행물량 품귀현상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이 사모사채 차환상환을 위해 회사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 발행 물량이 증가하면서 채권가격도 하락(채권금리 상승)하고 있다. 회사채(무보증3년)AA- 수익률은 지난달 2일 5.24%에서 이날 5.38%로 0.14%포인트 상승했다. 회사채(무보증3년)BBB- 수익률도 같은 기간 8.04%에서 8.13%로 0.09%포인트 올랐다.
■자금시장 왜곡시킨 사모사채
지난해 회사채 시장은 은행권이 회사채 물량을 싹쓸이하면서 물량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은행과 협의해 사모사채를 발행하고 은행들이 이 사모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이는 은행권의 사모사채 규모가 2005년 13조5892억원에서 2006년에는 27조3376억원으로 14조원가량 급증한 데서 잘 드러난다.
기업들이 이처럼 사모사채를 선호한 가장 큰 이유는 조달 금리가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 공모사채를 발행할 경우 유가증권 발행신고서를 금감원에 제출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겪어야 하지만 이를 모두 피할 수 있는 것도 사모사채로 몰리게 된 큰 이유다.
17일 채권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사모사채를 발행하게 되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면 물어야 하는 기술신용보증기금수수료와 신용보증기금 수수료 등 40bp(0.4%)정도의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또 공모 회사채를 발행할 때 내야 하는 주간사 수수료, 평가 수수료, 발행수수료 등 40bp정도의 수수료도 낼 필요가 없어진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보다는 은행권의 사모사채를 더욱 선호하게 돼 회사채 시장은 발행물량 부족이라는 유동성 문제를 겪게 됐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사모사채가 사실상 대출과 다름없었음에도 대출이냐 유가증권 발행이냐의 기준이 없어 문제가 됐다"며 "기업들은 수수료만큼 할인된 대출 금리를 적용받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은행들도 사모사채 인수를 통해 짭짤하게 재미를 봤다. 신용등급이 트리플 A급인 은행들은 은행채 발행을 통해 낮은 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사모사채 인수에 활용, 무위험 이자차익을 챙길수 있었다.
■채권 가격 급등 등 시장 부작용 발생
은행이 지난해 사모사채 시장을 독식하면서 시장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나타났다. 회사채 시장에 채권이 공급되지 않자 채권 품귀현상이 지속되면서 채권 가격이 급등(수익률 하락)했다.
실제 지난해 1월 5.49% 기록했던 회사채(무보증3년)AA- 수익률은 지난해 말 5.18%까지 하락했고 같은 기간 9.19%였던 회사채(무보증3년)BBB-의 수익률은 무려 7.97%까지 떨어졌다.
시장 리스크도 커졌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 나간 '사실상 대출금'의 리스크를 사모사채를 전액 인수한 은행이 지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평가시장도 줄어 들었다. 회사채를 공모 발행할 경우에는 신평사로부터 평가를 받게 돼있지만 사모사채의 경우 평가등급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평가시장 자체가 위축됐다.
■회사채 시장 다시 살아나나
27조원이 넘는 은행 사모사채를 공모 회사채 시장이 대체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월 발표한 공모사채 육성방안에서 사모사채를 발행할 때도 대출과 같은 수수료를 적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수수료 만큼의 메리트가 있었던 사모사채 발행을 줄이고 회사채 공모발행을 유도하겠다는 것.
동양종합금융증권 류승화 연구원은 "사모사채 발행에도 대출 수수료를 적용하면서 사모사채 발행 메리트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회사채 시장이 은행권 사모사채를 급격하게 대체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모사채가 시장으로 흘러나와야 하는데 본격적으로는 내년부터나 만기가 돌아오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또 은행권 역시 자산확대의 방법으로 사모사채를 계속 이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채권업계 관계자는 "사모사채가 메리트가 없어졌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공모가 사모에 비해서 드는 비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사모사채는 출연금 40bp 정도가 들지만 공모는 대략 50bp 내외가 들어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조달금리 측면에서는 사모사채가 아직도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회사채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법으로 8bp 정도인 발행분담금을 축소시켜 사모사채와 공모사채 조달금리를 비슷한 규모로 만들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grammi@fnnews.com 안만호 김재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