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달러는 3일(현지시간) 유로당 1.5275달러까지 떨어지며 사상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 엔화에 대해서는 장중 한 때 달러당 102.62엔으로 3년여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03엔대가 무너지는 약세를 보였다. 이날 달러화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오는 18일 통화정책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E)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급락했다.
■ 미 제조업·건설경기 침체 계속
이날 발표된 경제지표들은 비록 예상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미 경제 둔화세가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냈다. 미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1월 건설비용 지출은 1.7%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AP는 주택시장 뿐만 아니라 신용시장 문제가 제조업에까지 영향을 미쳐 미국의 제조업 활동이 둔화세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2월 제조업 지수는 48.3으로 약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지수가 50을 밑돌면 경기수축을 의미한다.
지난주 발표된 경기관련 지표들은 미 노동시장 둔화, 주택시장 침체 가속, 2007년 성장률 5년 만에 최저라는 악재로 나타난 바 있다.
소시에테 제네랄(SG) 도쿄의 외환거래 책임자 사이토 유지는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달러 약세가 경제를 지탱하는 것에 대해 FRB가 불쾌해 하지 않는다는 것이 시장의 일반적 견해”라고 덧붙였다. 달러 약세를 돌리기 위해 FRB가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 미 정부, 약달러 용인이 원인
앞서 버냉키 FRB 의장은 지난달 28일 의회 증언에서 미 경제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 한편 달러 약세가 미국의 수출에 도움이 되고 결과적으로 노동시장, 무역적자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3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강달러’가 여전히 미국의 원칙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시장에 먹혀들지 않는 이유다.
미국의 주요 6개 교역상대국 통화에 대한 가중평균으로 구성되는 달러지수는 이날 뉴욕 ICE 전자거래에서 73.354를 기록, 사상최저치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같은 달러 약세는 국제유가를 배럴당 103.95달러로 끌어 올렸고, 인플레이션 단골 헤지 수단인 금 수요를 높여 금 가격은 사상 최고수준인 온스당 989.54달러까지 치솟았다.
도쿄 신킨중앙은행의 외환딜러 요시다 히로시는 “딜러들 상당수가 달러를 팔기 위해 안달이 나 있다”며 “미 경제가 침체돼 있는데다 노동시장 약세를 보여주는 지표가 추가로 나온다면 달러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달러가 이번주 안에 102엔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달러 추가 하락의 최대 원인으로 꼽히는 미국의 금리인하에 대한 시장전망은 갈수록 과감해지면서 0.75%포인트 인하 전망이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1주일 전만 해도 이 정도의 금리인하를 예상하는 딜러들은 없었다”면서 “그러나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서 거래되는 금리선물 추이로 보면 현재 시장에서는 FRB가 이달 중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내린 2.25%로 떨어뜨릴 확률이 74%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 일 정부, 엔화강세에 시장개입 시사
폴슨 미 재무장관을 비롯해 이날 달러 급락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시장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폴슨 장관은 “강달러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엔화 급등세로 초조해진 일본도 시장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현 상황은 엔화 강세가 아닌 달러 약세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시장 움직임을 예의주시 하겠다”며 엔 급등세를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같은 구두개입에 대해 시드니 호주커먼웰스은행(CBA)의 수석 외환시장 전략가 리처드 그레이스는 “구두개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기는 하겠지만 달리는 열차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월스트리트 저널(WSJ)지는 달러화가 시장에서 맥을 못추고 있지만 전세계 하루 외환거래량 3조2000억달러의 86%가 달러에 연동돼 있고, 전세계 중앙은행의 3분의2 정도가 외환보유액을 달러표시 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는 등 여전히 세계 금융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연일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유로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불과해 기축통화로 자리매김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저널은 덧붙였다.
/dympna@fnnews.com송경재기자